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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희 May 12. 2023

일회용의 진중함

일회용 카메라

  첫 시작을 정확하게 기억한다.

 일회용 카메라를 사용하기 시작했던 건 2015년 석사청구전을 준비하면서 부터이다. 청구전 컨셉은 내가 생활하는 공간을 전시장으로 그대로 옮겨오는 것이었다.


 '나'로 가득한 공간을 연출하고, 가구나 사물에 도자기 유닛 작업들을 설치하는 방식이다. <YellowSymptom>이라는 전시 제목답게 내 눈에 보이는 노란색들을 수집하고 전시하고 싶었다. 노란 간판, 노란 표지판, 노란 보도블록, 노란 티를 입은 소녀의 모습까지.

 이를 기록하기 위해 지금은 찾기도 어려운 '코니 일회용 카메라'를 여러 개 구입했다. 휴대폰이나 일반 카메라 말고 굳이 왜 일회용 카메라를 사용하냐는 질문이 많았다. 일일이 대답하진 않았지만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2016년 전시 전경
내가 좋아하는 책들과 사진들


 일단 내가 찍은 사진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일회용 카메라는 애지중지하지 않아도 되고, 호들갑스러운 느낌도 없어서 예민한 나에게 잘 맞을 것 같았다. 한 가지에 빠지면 집착하는 성격상 마음에 들 때까지 찍어댈 것이고 시간 날 때마다 사진 생각만 할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 내 모습을 원치 않았다.

 찰칵하고 1초면 끝나버리는 촬영인데 사진으로 나오기까지는 며칠 혹은 몇 달까지 걸리는 것도 꽤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기다리는 시간도 즐겁고 사진을 받았을 때의 설렘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마지막으로, 27장이 끝나면  쓸모없어지는 게 나 사는 것 같고 사람 사는 것 같았다.


갈겨 찍는 게 맛이지만 그 와중에 피사체 선택은 진중해야 한다.


 찍고 싶은 장면은 많지만 소모할 수 있는 필름의 수는 한정적이다. 자연스럽게 렌즈 안 장면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차게 되었다.


지금은 구하기도 어려운 코니의 포토피아




 예전에 찍었던 사진들을 정리했다. 초점도 안 맞고 부산스럽고 정신없었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의미 없는 사진도 있었고, 찰나의 내 마음이 스쳐간 사진도 있었다. 부끄러운 사진들도 있었지만 생기 넘쳐 보였다. 치기 어린 시기였고 오만 것들이 나에겐 자극이었다. 적어도 20대의 나는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의 시선이 의식되고 서서히 소심해져 갔다. 문득 그때가 그리워졌고 다시 일회용 카메라를 찾게 되었다.



 '아라키 노부요시의 애정사진'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는 내키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찍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찍은 애정의 대상은 무엇이었을까?

 뒤죽박죽 섞여있는 일회용 카메라 사진들을 꺼내보려 한다.


 애정 듬뿍 담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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