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정희 May 16. 2023

아주 사적인 104호 실기실

도예가를 꿈꾸던 시절

  살면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을 고르라면 주저 없이 대학원 다닐 때라고 말할 것이다.

 학부 졸업하고 1년 반 만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다르게 말하면 1년 반 가까이 백수였다. 연남동 작은 원룸에서 혼자 자취를 했는데, 눈 뜨면 밥 먹고 하루종일 누워서 드라마 스페셜 보는 게 일이었다. 오후 3시쯤 홍제천 산책을 갔는데, 내 또래는 아무도 없고 한량처럼 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어찌나 초라하던지. 그때 처음으로 내 입으로 들어가는 밥이 아까웠다.

 2013년 2월 잠시 병원에 왔다 갔다 할 일이 있었고, 서울 생활을 정리할 생각으로 양산에 내려갔다. 병원에 며칠 있으면서 다양한 상황 사람들을 맞닥뜨리고 나니,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사람답게 살고 싶어졌다.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정신적으로 의지했던 교수님을 찾아뵀다. 교수님 말씀에 내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


  "정희야, 너는 표현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


 힘들어하던 나에게 본인을 서울에 있는 삼촌쯤으로 생각하라는 말과 함께 묵묵히 내 얘기를 다 들어주셨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날의 분위기와 교수님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마음이 터질 것 같던 나에게 그 말은 컴컴한 방에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고, 무작정 대학원 준비를 시작했다.

 '도예'라는 분야에 큰 뜻이 없었는데 도예 작업을 시작하게 된 건 학교 교수님 영향이었다. 외롭고 서러웠던 서울살이에 이렇게 멋있는 어른에게 배움을 받는다면 뭘 배워도 배울 것 같았다.


 창피하지 4.3만점에 3점이 안 되는 학점으로 졸업을 했고, 준비된 작품도 물론 없었다. 두 달안에 포트폴리오를 완성해야 했고, 결국 가을 학기에 입학하게 되었다.

 실기실은 나에게 자유의 공간이었고, 이곳에서는 어떠한 행위도 용인될 거라 생각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잔잔했지만 그 안에서 맺었던 관계들, 교수님들과의 얘기들이 지금까지 작업할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되어주었다.




104호 실기실


 이곳을 정말 애정했다.

 104호를 거쳐간 이들이라면 이곳을 애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른 학교에 비해 대학원생 수도 적고 실기실도 작은 편이라 보기 싫어도 항상 마주쳐야 했고, 뭔가 공동체? 가족?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었다.

 사실, 처음엔 다 같이 밥 먹으러 가고 다 같이 커피를 마시고, 끝나고 회식도 함께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걸 먹고 마시고 싶었다. 동갑 친구도 없고 가을 학기에(2학기) 덜렁 혼자 들어와서 적응을 잘 못했던 것 같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말이 있듯이, 내 밑으로 후배들도 생기고 선배 언니들과도 서서히 친해지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단체 생활이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사진에 있는 도구들 중 아직도 사용하고 있는 것도 있다


 지금은 노란색을 가장 좋아하는 정도지만, 그땐 '왂!!!!! 노란색!!!!!!!!'이었다.

 노란색에 대해 글을 쓸 일이 생길지 모르겠지만, 노란색은 나의 애정과 집착의 대상이다. 작업 의자도 노란색으로 맞추고 싶어 사비로 구매할 정도로 노란색 쳐돌이 었다. 저 의자를 너무 좋아해서 졸업하고 처음 차렸던 작업실에까지 챙겨 왔었다. 너무 낡아서 똑같은 걸 다시 사려고 찾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노란색은 없었다. 저 의자가 뭐라고 그렇게까지 집착했을까 싶지만, 그땐 나의 대학원 생활이 녹아있는 물건이라 여겼던 것 같다.


그때 가장 좋아했던 술과 커피


 예전이 그리워지면 사진첩을 찾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오랜만에 예전 사진들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때가 많이 그립기도 하고, 그때에 반짝거렸던 내 모습이 다시 보고 싶기도 하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했고, 즐길 수 있을 만큼 즐거웠기 때문이다. 물론 힘들고 고민 많던 시기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참, 행복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회용의 진중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