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정희 May 17. 2023

노란색 덕후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다.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사춘기였던 나에게는 내가 겪는 모든 상황이 버겁고 무겁게 느껴졌다. 그 당시엔 의연한척 하는 것이 어른스러운 행동이라 생각했다. 그럴 때 마다 어릴 적부터 정신적 지주였던 오빠에게 편지를 썼다. 군인이었던 오빠는 답장을 거의 하지 못했지만, 내 감정을 글로 표현했다는 사실만으로 후련했다. 편지지를 사기 위해 문구점에 들어갔을 때 가장 눈에 띄는 편지지를 골랐다.  

    

샛 노란색의 편지지였다.    

 

 그때부터 노란색 편지를 오빠에게 부치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의 기억 속 집착적 행위의 첫 시작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을 남에게 주거나 내가 가졌을 때 타인이 나를 더 쉽게 기억해 줄 수 있을 거라는 단순한 기대감에 노란색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몇 년째 울궈먹는 작가 노트 시작 페이지다.

 지금봐도 마음에 드는 글이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냥 노란색을 좋아하고, 노란색이 있다면 굳이 다른 색을 고르지 않는 정도의 사람이었다. 노란색 작업을 시작 한 뒤로는 노란색에 대한 애정을 숨길수가 없었다. 막 너무 좋았다. 길가다 예쁜 노란색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친구들이 나눠주는 선물도 노란색은 무조건 내 차지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노란색 덕후가 되어갔다.

 

지금도 노란색 케이스를 사용한다.


 내가 생활하는 공간에는 노란색들로 채워져갔고, 그럴수록 나는 활기를 얻게 되었다. 자취방에는 노란색 이불이 깔려있고, 노란 블라인드가 설치되어 있었다. 햇빛이 쨍하는 들어오는 날이면 방 안으로 노란빛이 우두두둑 쏟아져 내렸다. 노란색에 둘러 쌓여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왠지 나를 위로해주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은 노란색을 보면 점점 내 생각을 하게 되었고,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거나 작은 선물을 주는 사람들도 생기게 되었다. 내 존재를 각인시키고 확인 받고자 하는 노력이 성공한 셈이다. 노란색 모나미 볼펜이 처음 나왔을 때 한 박스를 구입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다니기도 했다. 참 관종이었지.







 

 넬 노래 중에 '백색왜성'이라는 노래가 있다. 내가 고등학생 때 나온 노래인데, 아직도 좋아하는 노래이다. 중간에 나오는 가사가 머리 속에 장면을 상상하게 하고, 그 공간에 빠져들게 만든다.


초록비가 내리고
파란 달이 빛나던
온통 보라빛으로
물든 나의 시간에 입을 맞추던 그곳


 작업할 때 이 노래를 자주 들었는데, 노란 비가 내리고 노란 달이 떠있고 노란 빛으로 물들어 있는 공간에 내가 행복해하는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노래에서는 그 곳은 결국 퇴색되고 돌아갈 수 없는 곳이 되지만, 여전히 나를 꿈꾸게 하는 노래이다.

 노란색은 그늘진 내가 가질 수 없는 빛이며, 내가 동경하는 밝음이 아닐까?



https://www.youtube.com/watch?v=JhugbZyj1bE




매거진의 이전글 아주 사적인 104호 실기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