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시절에 투다리를 빼놓으면 얘기가 안 될 정도로 투다리에 자주 갔다. 지금 남편도 투다리에서 꼬셨다. 투다리 조명이 내 얼굴톤에 잘 맞는지, 내가 참 예뻤다고 한다. 정말 감사한 투다리!
은규(사진에 등장하는)는 투다리 김치우동과 아스파라거스 꼬치를 처음 알려준 귀인이다. 김치우동과 아스파라거스 꼬치를 안 먹어봤냐며, 나를 모지리 취급하며 아주 건방지게 투다리에 데려갔다. 그 뒤로 매일 은규에게 투다리에 가자고 꼬심질을 했고, 소주를 안 마시던 은규는 나 때문에 참이슬 후레쉬를 뻔질나게 마시게 되었다. 김치우동과 시원한 소주는 작업에 지친 심신을 정화시켜 줬고, 내일 다시 작업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자양강장제가 되었다. 20대 중후반 대부분의 낭만이 이곳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김치우동이 나오기 전, 단무지에 벌써 첫 잔이 시작된다.
은규랑 막차 시간 알람을 맞춰놓고 항상 '딱 한 병씩만'을 약속했지만, 서로 눈이 마주치면 결국엔 '딱 한 병만 더'가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일회용 카메라를, 은규는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일상을 기록하기 바빴다. 성향도 성격도 달랐지만 '작업'이라는 공동 관심사가 있었기에 같은 고민을 나누고 가끔 서로를 물어 뜯기도 하면서 그렇게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퉁퉁거리지만 누구보다 따뜻하고 다정하다. 나보다 키는 크지만 손발은 작은 귀여운 동생이다.
내가 잘 움직이지 않는 걸 아는 친한 친구들은 고맙게도 숙대까지 와주었고, 약속 장소는 늘 투다리였다. 졸업 후에도 대학교 친구들과 종종 이곳에서 만났고, 이모님과는 만나면 너무 반가운 사이가 되었다. 여전히 친하게 지내고 있는 친구와 언니에게 결혼 소식을 처음 말할 때도 투다리와 함께였다. 늦은 나이에 시집가는 게 대견한지 그날 울음바다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투다리는 나에게 향수 그 자체다.
이곳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풀자면 이틀밤을 세도 모자란다.
과일이나 은행꼬치를 서비스로 주시던 이모님도 그립고, 취하면 실없이 이상한 말들을 읊어대던 내 모습도 그립고, 혀 꼬부라진 나와 함께 술잔을 부딪혀준 모든 이들이 그리워진다.
은규가 찍어준 나
지금 남편이나 우리 부모님께서 이 글을 본다면 어이없어하겠지만, 여기저기 장소를 옮겨가며 즐겁게도 마셨다. 그냥 길을 걸어갈 때도 신경이 곤두서있어서 인상을 쓰고 걸을 정도로 밖에선 거의 표정이 없는데, 알딸딸하게 취하면 온 세상 표정이 내 얼굴에 들어온다.
술냄새나는, 취할 것 같은 사진이다. 장소는 모두 다르지만 상태는 똑같을 듯싶다. 오랜만에 보는 나의 20대 모습이다. 지금은 아줌마가 되었지만 저땐 내가 유명한 도예 작가가 되리라 생각했지. 허허
한동안 필름 사진을 안 찍고 있었는데,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일회용 카메라를 주문했다. 처음 써보는 흑백 일회용 카메라도 주문했는데 벌써 떨린다. 오랜만에 투다리에서 사진을 좀 찍어봐야겠다.
항상 투다리에서 만나는 멤버들이(결혼 얘기에 울음이 터졌다는 친구와 언니) 있는데, 만나기 전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오늘은 내가 먼저 이 말을 꺼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