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엔 호기심이 많았던 것 같은데, 요즘엔 뭐라 해도 안전이 제일이다. 혼밥도 잘 못하는 소심인인데, 일주일 동안 부산 기장에 혼자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2015년 석사청구전을 위해 한참 작업을 하던 중, 전시 방향과 컨셉이 도저히 잡히지 않았다. 무의미한 작업물만 늘어갔고, 지도 교수님을 피해 다니기 일쑤였다. 이렇게 불안 속에서 작업을 억지로 이어갈 바엔 시원하게 잠수를 타야겠다 생각했다.
내 자리를 김장 비닐로 꽁꽁 싸놓고 그다음 날 바로 양산으로 내려갔다.
엄마가 해준 밥은 꿀맛이었고, 아빠와 마시는 커피는 목구멍에 향수를 들이붓는 것처럼 향기로웠다. 본가에서 며칠을 보낸 뒤, 기장 작은 집에 일주일 간 머무르기로 했다. 집 안엔 작은 냉장고와 TV, 딸랑 이불 한채 밖에 없었지만 그런 것들은 전혀 중요치 않았다.
멀리 보이는 기장 고리원자력발전소
첫날부터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어여쁜 노란색들이 내 눈에 쏙쏙 들어왔고, 그저 평화롭기만 할 줄 알았다.
비 오는 날 꽃밭에서
엄마의 추천으로 '정훈희와 김태화의 꽃밭에서' 카페를 갔다. 처음 나왔을 땐 비가 별로 오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걷기 시작했다. 점점 빗발이 굵어지면서 바람이 불었다. 인도도 없는 길을 비를 쫄딱 맞으며 걸었다. 내가 위험해 보였는지 차를 멈춰 나를 확인하는 분도 계셨다.
시간이 맞지 않아 공연은 못 봤지만 카페 구석구석 열심히 구경했다. 혼자 앉아 커피를 거의 다 마셔갈 때쯤 슬리퍼에 편한 차림의 머리 긴 아저씨가 들어오는 걸 봤는데, 아마 그분이 김태화님이 아니었나 싶다.
속옷까지 홀딱 젖었지만 그만큼 낭만으로 흠뻑 젖었던 날이었다.
다시 일상으로
솔직히, 기장에서 보낸 일주일은 그리 유쾌하지 만은 않았다.
4일차부턴 밖에 아예 나가지도 않았다. 지금은 기장에 큰 카페도 생기고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만, 그때만 해도 다소 폐쇄적인 분위기의 마을이었다. 누런 머리의 젊은 여자가 혼자 돌아다니니 어딜 가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어느 카페 어느 가게를 가도 '어디서 왔냐? 몇 살이냐? 어디에 살고 있냐?' 이런 질문들을 듣게 되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동네 누렁이도 나를 계속 따라올 정도였다. 큰 개를 무서워하는데, 계속 따라오는 개를 울면서 도망쳤던 기억이 난다.
외출을 삼가게 되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떤 아저씨가 말도 안 되는 요상한 말을 하면서 계속 따라왔다. 상기된 얼굴로 "어차피 다시 만나게 될 거예요!"라고 외쳤다. 순간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고, 그게 기장에서의 마지막 외출이었다.
나는 그저 이방인이었고, 그 덕에 철저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혼자 집안에서 지내는 며칠 동안 전시 컨셉이 정해졌고, 어느 정도 전체적인 윤곽이 잡히게 되었다. 그렇게 보면 집 안에서 머물던 시간이 억울하진 않은 것 같다. 꽤 발전적인 시간이었다.
홀딱 벗고 생활하기도 하고, 대낮에 맥주를 마시며 반신욕을 하기도 했다. 아, 혼자 삼겹살에 소주도 마셨다! 그날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월내역에서 물금역으로 가면 양산으로 갈 수 있다.
부모님과 얼마간의 시간을 더 보낸 뒤, 얌전히 학교로 복귀해서 작업만 했다.
기장에 있을 때 우연히 지원했던 전시 공모에 당선이 돼서, 얼떨결에 좋은 장소에서 멋있는 사람들과 전시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