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 할 때 가끔 말동무도 되어주고, 주말엔 같이 일광욕도 즐기는 다정한 사이였다. '페페야~'라고 불렀는데, 그럴 때마다 뭔가 모를 책임감이 생기곤 했다.
오랜 시간 자취를 하면서 외로웠던 것 같다. 나밖에 없는 작은 집에 함께 호흡하고 있는 다른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 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도봉구로 이사 준비하면서 페페가 시들어버렸지만, 노란색 화분과 앙증맞게 꽂혀있던 하트 장식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식물에게 응원과 위안을 받았던 이가 나 말고도 또 있었나 보다.
작업에 쪄들어있던 대학원 실기실에서 은규가(투다리 친구)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개인의 취향민트
민트를 너무 좋아해서 종류별로 사다 키웠다. 개인적으로 스피아민트를 가장 좋아했는데, 톡 쏘는 페퍼민트나 달큰한 애플민트만큼 임팩트는 없지만 은은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게 마음에 들었다.
사 먹는 민트티도 맛있는데 직접 키워 먹는 민트티는 얼마나 맛있을까? 단순한 생각에 물꽂이를 하면서까지 열심히 키웠다. 한잔의 민트티를 마시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양의 잎이 필요했고, 잎을 덖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생잎을 바짝 말려 티백으로 만들어 마셔본 적이 있는데 생 풀맛이었다.
홀랑 다 뜯어 먹은게 미안해서 인지 학교 졸업 후 다시는 민트를 키우지 않았다.
유행처럼 번진 식물 키우기
도예과의 장점이 무엇이겠나? 내가 사용하고 싶은 도자기를 직접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것 때문에 일부러 작정하고 무언가를 만들진 않았지만, 작업이 안되거나 하기 싫을 때 이따금씩 화분을 만들어 식물을 심곤 했다. 몇 명 되지 않는 실기실에서 식물 키우기는 유행처럼 번져갔고, 단체로 양재동 화훼공판장으로 나들이를 가기도 했다.
직접 만든 노란색 화분과 노란색 선인장
공룡과 함께 분갈이를 기다리는 식물
나는 주로 민트와 선인장을 키웠고, 각자 취향에 맞게 이름 모를 식물들을 키웠다. 멋있어 보인다며 소나무 분재를 키운 이도 있었다. 한 교수님께서는 우리들을 한심하게 생각하시기도 했다. 작업해야 될 시간에 화분을 만들고, 때마다 화분들을 밖으로 가져가 물을 주고 광합성까지 시켜줬으니 시간을 허비한다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래도 나름 우리들의 힐링타임이었다.
그중 특히 은규는 식물을 너무 사랑했다. 지금 그녀의 집은 농원에 버금갈 정도로 희귀하고 다양한 식물들이 있다. 2014년인가 2015년쯤 양산 본가에서 키우던 군자란 한뿌리를 은규에서 준 적이 있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결혼식 전날 은규에게 사진을 받았다. 군자란에 꽃이 피었다고!
주거지가 바뀌었는데도 군자란을 가져가 계속 키웠던 것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며칠 뒤 군자란 꽃이 만개한 사진을 보내주었다. 군자란은 꽃이 자주 피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걸 참고 기다린 은규가 대단했다. 기다렸던 만큼 꽃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군자란을 소중히 아껴준 은규에게도 귀한 일이 생기길 바란다.
충북 음성에서 자라고 있는 은규의 군자란
나는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공방을 오픈하면서 식물을 키우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1층으로 올라왔지만 얼마 전까지 지하 공방에 있었다. 처음엔 음지에서 잘 자라는 식물을 키우기도 했는데, 최소한의 볕은 필요했나 보다. 키우는 줄줄이 시들어 갔고, 식물을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은 햇빛에 잘 자라는 인도 고무나무와 작은 홍페페를 키우고 있다. 손이 많이 타지 않는 종이라 느긋하게 잘 키우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청상추, 적상추를 그득그득 심은 텃밭을 가꾸는게 꿈이었지만, 식물 키우는데 생각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