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아주 어릴 땐 내가 진짜 공주인 줄 알고 핑크핑크한 걸 좋아했다. 유치원 때 처음 내 방이 생겼는데 분위기와 어울리지도 않는 핑크색 책상을 골랐다. 7살 때 샀던 핑크색 책상을 고3 때까지 쓸 줄은 몰랐지. 중학생땐 노란색 종이에 검정 펜으로 편지 쓰는 것에 매료되어 지금까지도 노란색과 노랑+검정 조합이 나의 최애 색상이 되었다.
얼마 전부터 뜬금없이 초록색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초록색 물건을 구입하고, 엄마가 선물해 준 초록색 큐빅 박힌 반지를 매일 끼고 다닌다. 한동안 노랑, 파랑 작업을 해서 그 둘의 혼합색인 초록을 좋아하게 되었나?
초록색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심란하다. 특히 짙은 초록색은 색 안으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평온하고 안전해 보이지만 그 속에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이 있다. 상쾌하고 싱그러워 보이지만, 괜스레 울적한 마음이 보이기도 한다.
요즘 내 마음은 초록에 가깝다. 얄궂은 감정에 더 이상 호들갑 떨지 않게 되었다.
내 상태가 예전과 다르게 많이 안정되어졌고, 부정적인 감정들을 내 안에서 소화시킬 수 있는 힘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자꾸만 울창한 초록 속에 파묻혀있는 내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