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업을 준비하는 시간

Daily Project #10

by 서정희

Daily Project #10

2023년 10월 23일 월요일


그동안 작업을 안 한 건 아니다.

그저 해변가에 널브러져 있는 해초들처럼 늘어지고 아주 살랑한 일상을 보냈다.


초심으로 돌아가 내 마음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뭘 하고 싶은 건데?'

이 나이에 이런 철없는 고민이나 하고 있는 게 창피한 일일수 있겠지만, 나에겐 중요한 이슈였다.


나는 아주아주 무명의 도예가이다.

이제는 정말 객관적으로 현실을 직면해야 했다. 좋은 작업들은 너무 많고, 멋있는 작가들도 넘쳐난다. 난 이 시장에서 더 이상 경쟁력이 없어진 것이다. 처음 꼬는 작업을 시작하고 사람들 앞에 선보였을 땐, 한눈에 들어오는 색과 독특한 질감에 다들 신기해했다. 내 작업을 보고 이죽거리며 낄낄거리는 이도 있었고, 한참을 뚫어져다 쳐다보며 사색에 잠긴 이도 있었다. 내가 살면서 언제 이렇게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의 응원과 관심을 받아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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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 작업하느라 원 없이 사다리도 타보고 시멘트로 지지대도 직접 만들어봤다. 손목이 나갈 정도로 나를 갉아먹어가며 작업을 하기도 했고, 해냈다는 성취감에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이 정도면 인생에서 꽤 재미난 경험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원했던 건, 그저 나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전부였다.

흙을 만지고 작업하는 그 시간만큼은 나는 오로지 나로서 존재하고, 나의 모든 것은 모두 내 것이 되었다.


몇 해 전, 코로나로 대면 수업이 중단되었을 때 할 수 없이 비대면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실기 위주였던 수업은 내가 흥미 있어하는 작가나 장르를 소개하는 예술 인문학 수업으로 바뀌었고,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항상 실기에 자신 없어 강의할 땐 뒤에서 보조역할만 했었는데, 드디어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게 된 것이다. 일단 지금은 사진 에세이 위주의 내용이지만, 더 많은 경험과 노력으로 나만이 소화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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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6.JPG 참여자분들의 사진에세이와 자화상 작품들


나를 표현하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도 굉장히 멋있다고 느껴졌다.

내 인생을 크게 봤을 때, 이 또한 근사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작업 과정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