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토마토는 함께 익지 않는다.
세상의 속도가 아닌 각자의 속도에 맞춰서 !
# 방울토마토는 함께 익지 않는다.
‘아이가 잘 걷지 않아요.’ 걸음마를 시작해야 할 시기가 한참이 지나도 아이는 안아달라고 할 뿐 발을 내딛지 않았다. 3천 번을 넘어져야 걸음마를 뗀다던데 우리 아이가 3천 번을 겨우겨우 채웠을 때 또래 아이들은 줄을 넘을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싶어 소아정형외과를 찾아갔다. 엑스레이 상 이상소견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안심이 되지 않았다. 아이가 발을 떼기 시작하자마자 넘어지는 것을 대비했다. 얼른 3천 번의 고비를 따라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조바심과 달리 아이는 잘 걷게 되기까지 일백 번도 넘어지지 않았다.
‘앞니 두 개로 족발을 뜯더니 부정교합이 생겼어요.’ 정확히는 앞니가 나오기도 전이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족발로 돌진해 뼈를 쟁취하던 아이는 본격적으로 아랫니 두 개가 올라오자 아래턱을 한껏 앞으로 끌어당겨 모든 음식을 잘라먹기 시작했다. 소아교정치과에 방문했다. 선생님은 엄마 아빠의 치아를 먼저 확인하셨다. 집안에 아래턱 부정교합의 치열이 있는지 가족력도 체크하셨다. 이 아이는 양가를 통틀어 부정교합의 첫 번째 사례자가 되었다. 선생님은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텃밭에 작물을 심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열매를 맺은 것은 방울토마토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열매가 맺힌 모종이 우리 집에 왔다. 거봉만 한 연두색 방울토마토 열매에 방울토마토를 먹지 않는 아이들도 열광했다. 하루가 다르게 열매가 늘어났다. 서로 다른 시기에 맺힌 앵두만 한 열매들은 어느 순간 크기가 똑같아졌다. 어느새 토마토 줄기가 휘어질 정도로 한 줄기에 많은 열매가 맺혔다. 이제 익기만 하면 되었다. 점점 색이 주황빛을 띄더니 드디어 하나의 방울토마토가 익었다. 양보하고 싶지 않은 우리 집 텃밭에서 자란 첫 열매 시식권이었다. 가족 구성원은 넷. 익은 방울토마토는 하나. 양보를 하느니 같이 먹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다른 열매가 익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하루에도 서너 개씩 열매를 터뜨리며 한껏 기대감을 심어주고선, 익어가는 시간은 답답할 정도로 너무 느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다른 열매가 익지 않았다. 이러다간 처음에 익었던 열매가 물러 터져 못 먹게 될 지경이었다. 어쩔 수 없이 먼저 익은 열매를 따 먹기로 했다. 첫 번째 방울토마토는 첫째 아이에게 돌아갔다. 채소는 입에도 안 대던 아이가 우리 집 텃밭에서 난 방울토마토는 먹어보고 싶다고 하는 바람에 양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방울토마토가 이렇게 맛있었어? 진짜 달아.’ 세상에. 아이의 말에 나는 더 발을 동동 굴렀다. 얼른 익어라. 다음에 내 차례야.
며칠이 지나 토마토 한 알이 다시 주황색으로 변했다. 이번에도 하나다. 아이는 며칠 전 먹었던 방울토마토 맛이 기억났는지 한 알을 똑 떼어 상의도 없이 입에 쏙 넣었다. 맙소사. 방울토마토는 이렇게 여섯 번이나 아이의 입으로 들어갔다. 아니 마트에서 보았던 한 통 그득한 방울토마토들은 모두 어떻게 생긴 걸까. 방울토마토는 이렇게 한 알씩 익는데. 그렇게 한 알씩 한 알씩 방울토마토는 익어갔다. 온 가족이 함께 양껏 먹으며 열매 맛을 논할 수는 없었지만 결국 모든 방울토마토는 익었다. 그리고 모두에게 달았다.
방울토마토가 익기 시작하자, 꽃을 떨구고 열매가 맺히길 기다리던 설렘과 앵두만 한 초록의 열매가 맺혀있을 때의 환호를 잊게 됐다. 왜 같은 속도로 익지 않는지에 대한 불만만 쌓여갔다. 나의 불만을 알턱 없는 방울토마토는 끝까지 내가 원하는 속도로 자라나지 않았다. 뜨거운 여름 내내 각자의 속도로 익어가는 방울토마토를 한 알씩 따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오늘은 나의 두 아이를 위해 다짐한다. 세상의 속도에 기대지 말고 아이들의 속도를 기다려주자고. 이미 탄생만으로도 내게 환호를 준 아이들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