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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쏨 Apr 01. 2023

3. 반지 고르기

반지를 선택하는 기준 



3. 반지 고르기 



반지를 선택하는 기준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반지가 있을까. 

귀는 두 개, 코는 하나, 발목도 두 개, 손목도 두 개인데 손가락은 무려 열 개다. 거치대가 많을수록 많은 반짝이를 걸칠 수 있으니, 다른 반짝이들에 비해 손가락지가 무려 다섯 배는 많지 않을까? 이런 싱거운 상상만 해도 기분이 붕붕 뜨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쩌릿쩌릿해진다. 


반짝이의 세계에 들어오기 전, 지금의 반지만큼 좋아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단연코 과일이다. 매 끼니 밥 대신 과일 한 박스를 먹을 정도여서 어릴 적 우리 집엔 베란다에 과일박스가 떨어지지 않았다. (과일박스를 베란다에 두었던 것은 냉장고에 들어가기도 전에 과일 한 박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 집 과일 담당은 아빠였다. 퇴근하는 아빠의 양손에는 온갖 과일이 들려있었는데 매일 저녁 오늘은 어떤 과일을 사 오셨을까 기대됐다. 아빠가 사 온 과일은 종류를 막론하고 달았기에 ‘과일은 무조건 다 맛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트에서 카트에 골라 담기만 하던 시절을 벗어나 계산대 앞 최종 결제자가 되었을 때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것은 밥보다 자주 접했던 과일이었다. ‘원래 과일이 이렇게 비싼 디저트였나?’가 그 첫 번째.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떠올리기 전에 아빠의 사랑이 먼저 떠오르며 생각보다 쉽게 혼란을 멈출 수 있었다. 하지만 딸기 하나에도 설향, 킹스베리, 금실딸기, 만년설딸기, 죽향딸기, 설희딸기로 이어지는 딸기의 향연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심지어 허여멀건한 딸기까지 나와서 나를 흔들어대는 통에 정신과 함께 손이 멈추고 말았다. 



문득 언제나 맛있는 아빠의 과일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받은 것인지 궁금해졌다. 

‘아빠 과일 어떤 게 맛있는 거야? 종류가 많아서 뭘 사야 할지 모르겠어. 게다가 껍질이 있는 건 과일 맛이 어떨지 감이 안 와서 매번 실패해.’ 궁금한 게 많은 딸의 질문에 아빠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이 말했다.


 ‘과일은 비싼 거. 무조건 비싼 건 다 맛있어’ 


그러고 보니 아빠는 무언가를 살 때 ‘이게 제일 비싼 거예요?’라고 물었다. 이 질문은 과일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었다.  물건을 고를 때마다 매번 아빠의 선택기준이 되는 이 질문 때문에 아빠는 자주 엄마의 눈초리를 받았다.   


모든 선택에는 자기만의 기준이 존재한다. 기준이 생기면 실패 없는 선택을 빠르게 할 수 있다. 아빠에게 과일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면, 나에겐 반지가 그렇다. 아빠의 과일을 맛보며 아빠를 마치 과일감별사처럼 느꼈던 것처럼, 수 천 개의 반지 속에서도 내 손에 어울리는 반지를 빠르게 고르는 반지감별사가 되는 기준. (지극히 사적인 기준임을 밝힙니다.) 



1. 실버 92.5  : 은반지는 금반지에 비해 잃어버려도 크게 속이 쓰리지 않다. 


2. 민무늬 : 어떤 복장에도 어울리고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3. 아주 얇거나 아주 두꺼운 : 보석이나 큐빅 없이 민무늬가 돋보이려면 두꺼워야 한다. 이 반지가 더 극적인 존재를 뽐내려면 다른 반지는 아주 얇아야 한다. 



나름 까다로운 기준으로 선발되어 현재 나의 열 손가락에는 문신 같은 8개의 반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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