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ure, Ralph Waldo Emerson
"어떤 여행을 하고 싶어?" 다정했던 사람이 묻는다.
"자연, 그리고 탐험!" 내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많은 곳을 갔다. 장엄한 바다, 아슬한 협곡, 웅장한 산, 영원의 강, 초록의 숲...
언제나 압도되었고, 매료되었다.
"우와........너무 멋있어!!! 저것좀 봐! "
사진기를 들이댄다, 가슴도 들이대 본다.
"Let us interrogate the great apparition that shines so peacefully around us,
Let us inquire, to what end is nature.(주석1)"
"우리 곁에서 고요히 빛을 쏘고 있는 섬광같이 번뜩이는 영감을 집요하게 추궁하여
자연이 존재하는 궁극의 목적을 스스로에게 끝까지 묻게하라.(주석2)"
거의 두달이 넘게 같은 책에 머물고 있다. Ralph Waldo Emerson의 '자기신뢰'.
이 책에는 에머슨의 몇가지 에세이가 들어있다. '자기신뢰'와 다른 부분을 다 읽고
몇 주 동안 계속 머물고 있는 부분은 '자연'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책은 추천받은 책 중 가장 읽고 싶지 않았다.
제목만 봐도 답이 있는 책들이 주로 그러하다.
읽고 싶지 않았던 이유가 또 있다. 책을 훑어보니 월든에 이은 또 다른 자장가 북이다.
게다가 이 책의 번역은 때로는 모호하고 주관적이고, 대부분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이며, 가끔은 오역이다. 그래서 더욱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이었다.
그런데, 거짓말 같지만 어느 순간 활자로는 이해되지 않은 내용이 섬광같은 영감으로 읽혀질 때가 있다. 그 흐름을 타면, 갑자기 꽉 막힌 국도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한 기분이다. 하지만, 그 뻥 뚫린 구간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내 집중이 흩어져서 꽉 막힌 국도가 되고, 다시 그 영감의 기운을 받아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 국도를 돌아가야 한다.
언제나 떠나기를 원했다. 여행은 숨통이었고, 미지의 세상은 나를 불렀다.
스톡홀롬에서 딸은 친구네 집에 머물고 나는 시내 호텔에 머물렀다.
창을 못여는 최신식 호텔은 나에게 감옥이었다. 너무도 모던하고 세련되고 배려심있게, 온도와 습도와 공기 질이 조절되고, 시간마다 차양이 요쪽 조쪽을 돌아가며 전자동으로 작동되어 태양을 막았다.
바람과 태양으로부터 차단되자, 나는 돌아버렸다.
급히 트레킹할 장소를 모색해서 바람과 태양을 찾아 나섰다.
비건 식사를 제공하고 블루베리를 마음껏 따먹을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정한 스톡홀롬 근교 트레킹.
가이드 청년이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서 길이 아닌 길을 한참을 걸어야했다.
걷고 걷다 배가 고파져서 "도대체 블루베리는 언제나와요?" 하고 가이드 뒤로 바짝 쫓아가 캐물었다.
"네가 밟고 온 길, 네가 서 있는 바로 여기!"
"뭐라고????"
그제서 내 발바닥에서 이질어지고 있는 블루베리가 보였다. 슈퍼에서 사먹던 염소똥 만한 블루베리가 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있을 줄 알았지, 잘못 든 눅진한 진흙길 덤풀 사이에 쥐똥 만한 블루베리가 깔려있울 줄 알았나? 발바닥 밑을 확인하니 신발에 진보랏빛 블루베리가 으꺠져있었다.
나만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함께 트레킹했던 사람들도 "이게 블루베리라고?" 하면서 그제서야 허리를 숙여서 베리를 따기 시작했다. 이 산신령같이 생긴 가이드는 왜 우리에게 블루베리가 있다고 말을 안해주고 다 짖이기고 걷기만 하게 했을지 투정이 솓구쳤다.
길을 잃었던 가이드는 다시 정신을 차려 원했던 장소로 우리를 안내해 저녁을 준비했다. 테이블도 러너도 제대로 된 식기도 없이 넓찍한 바위 위였다. 그는 커다란 베낭에서 꺼낸 버너로 콩고기를 굽고, 삶은 감자와 비트에 코코넛 요거트를 뿌려 식사를 준비했다. 사람들은 아무 바위 위에 걸터 앉아서 식사를 했다. 노루가 나타났다. 모두들 숨죽이고 노루를 보느라 스톱모션이 되었다. 먼 하늘에 무지개가 떳다. 블루베리를 발견했을 떄 처럼 사람들이 다시 웅성거렸다. '노루가 저기도 었어! 저 산 뒷편에도 무지개가 있어! 아! 쌍무지개!!!' 사람들이 무언가 하나씩을 발견을 하고 사진기에 담느라 분주한 가운데, 태양이 서서히 이불을 깔았다.
장엄한 태양의 잠자리가 준비된다. 오렌지 빛, 잿빛, 보랏 빛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이불보가 산 전체에 깔리더니 태양은 화려한 이불을 덮고 잠자리로 사라졌다.
몰타는 바다가 아니면 답이 없다. 사람들은 퇴근하는 길 버스에서 내려 바다에 풍덩 들어가서 몸을 식히고 집으로 간다. 사람들이 바다 한가운데에 동그랗게 동동 떠서 한참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반상회를 저런 식으로 하나보다' 싶기도 하다. 나와 딸도 너무 더워 바다에서 몇시간을 동동 떠있으며 시간을 보낸 적이 많다. 물을 무서워했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을 바다에 있자니, 저절로 자맥질도 하게되고 스스로 돌고래 쇼도 하게된다. 딸이 해마를 발견한 적이 있다. 수초를 갉아먹고 있었다. 우리는 해마를 놀래키고 싶지 않아서 거리를 유지하고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순간, 온 세상이 고요한데, 그것은 숨막힌 적막이 아니고, 영롱한 빛의 고요였다.
그런데, 그 고요 속에서 해마가 풀을 갉아먹는 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그 소리는 해마의 식사소리가 아니고, 다른 바다생물의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영원의 고요함 속에서 삶을 들었다.
숨을 참기가 힘들어서 푸억!하고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세상의 소음이 단박에 밀려왔다. 딱히 누가 떠들어서가 아니었는데, 그 바닷 속의 고요함이 너무도 대단하여, 불현듯 물 밖의 세상의 잡음이 견디기 힘들어졌다. 또 머리를 바닷 속에 쳐박는다.
영원의 고요함을 알아 차린 후에는 세상의 잡음 속에 오래 있기가 힘들어진다.
어느 덧, 머리를 물 밖에 내 놓는 시간 보다 물 속에 처박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그렇게 몰타의 여름을 났다.
토요일, 레스토랑 만석. 내 몸은 화강석.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는 순간, 하루 종일 재게 움직였던 몸은 바위가 된다.
집에 도착해 대문을 여는 시간은 자정을 넘는다. 정원등의 타이머도 할일이 끝난 시간.
깜깜한 암흑속 별 신호등이 내 몸을 정지시킨다. STOP.
어느날 밤, 집에 들어왔는데, 하늘에서 별이 집으로 쏟아졌다.
무서울 정도로 와르륵 쏟아 부어 발걸음을 딱 멈추었다. 멈추지 않으면 별에 얻어 맞을 것 같았다. 뭔 느낌인지 모르겠고, 그 떄는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는데,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압도적인 별빛이었다.
매주 주말,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올 때면 화강석 같은 굳은 몸이 잠시 환희에 찬다.
대문을 열어젖히고 지친 몸을 딱 세운 뒤. 별을 본다.
나의 퇴근 의식이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 고독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그에게 별을 바라보게 하라. 한없는 천체에서 오는 빛은, 그와 그 맞닿아 있는 세계를 분리시킬 것이다. 사람은 대기가 이런 의도로써 투명하게 되었다고 생각해도 좋다. 다시 말해 저 한없는 천체를 빌려 숭고한 아름다움의 영원한 실재를 인간에게 주고자 함이라고......(중략).... 이러한 아름다움의 사절은 저녁마다 나타나 무엇인가 설교할 듯한 미소로써 우주를 비추고 있다.(주석3)"
나는 고독으로 들어간 적도 없고, 들어가고자 한 적도 없다.
감사하게도 인생에서 많은 다정한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언제나 사랑을 받았고, 사랑을 했다.
돌아보니, 넘치도록 받은 사랑이 멀어지게 한 것이 있었다.
자연이었다.
자연은 나에게 배경이고 추임새였다.
나와,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인공 역할로 바빠서, 자연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느끼지 못했다.
자연은 사진의 배경이었고, 자연에 대한 나의 언어는 부끄럽게도 "우와! 대박! 죽여!" 였다.
발밑에 이지러진 블루베리도, 놀란 새끼 노루도, 무지개도, 바다도, 해마도, 태양의 이불도, 별빛도, 나에게 주고 싶은 설교가 있었다는 것을 그 자리에 멀뚱히 서서 몰랐다. 나에게 무엇인가 알려줄 듯한 미소 조차 눈치 채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징징댈 떄마다 누군가 그랬다. '너는 따지고, 추궁하는 것을 좋아하니 형사를 하거나, 변호사를 해야 한다' 그래서 정말 심각하게 늦은 나이에 law school을 알아본 적도 있었다. 이제, 나는 그 따지고 추궁하는 능력의 쓰임을 알았다.
"우리 곁에서 고요히 빛을 쏘고 있는 섬광같이 번뜩이는 영감을 집요하게 추궁하여
자연이 존재하는 궁극의 목적을 스스로에게 끝까지 묻게하라."
어제 새벽독서를 마치고 운동을 가기 전 두 시간, 갑자기 고속도로가 뚫렸다. 오역과 의역이 많은 부분은 원서를 오가며 비교를 하니 4차선 고속도로가 8차선으로 뚫렸다.
시계를 보니 3시간이 지나 있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가볍고 깃털같고 농담따먹기를 좋아하고, 헛소리를 남발하는 사람이지, 에머슨을 읽으며, 번역이 성에 안찬다고 원서와 비교를 하며 세시간을 책을 보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섬광처럼 온 이 느낌을 간직하고 싶은 열망이 혓끝을 간지럽혀서 새벽 독서모임에서 이 느낌을 나누니, 내가 좋아하는 구수하고 상큼한 작가님이 이렇게 말씀 하셨다.
"민아샘을 보고 시상이 떠올랐어요. 민아샘은 쪼만한 별사탕같아요!"
물론, 그분은 시인이라서, 더욱 아름다운 표현을 하셨는데, 다른 것은 잊어버리고 별사탕만 뇌리에 박혔다. 어렸을 때, 내가 애정했던 별사탕!
나는 별인지도 모른다.
아니, 정말 반짝이는 작은 별이었다!!!!! (사탕 주제이긴 하지만)
나는 고독에 들어가고자 한 적이 없지만, 이제 기쁘게 들어 가련다.
마침, 다정하게, "어디 가고 싶어?"하고 물었던 사람도 떠났다.
마침, 고개만 젖히면 나를 설교하고 싶어 안달이 난 별들이 밤마다 쏟아진다.
마침내, 나는 몰타의 바닷속 해초를 갉아먹던 해마와 함께 고요 속에 있다.
마침내, 나는 세상의 잡음에서 나와 기꺼이 고리타분한 책에 고개를 쳐박길 자처한다.
마침내, 나는 고독이 행복하다.
마침내, 나는 자연을 읽는다.
(주석1) Nature and Selected Essays , Ralph Waldo Emerson
(주석2) Nature and Selected Essays, 저자 번역
(주석3) 자기신뢰철학 /영웅이란 무엇인가, 동서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