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샤커피와 시민 불복종

시민의 불복종 / 헨리 데이빗 소로우

by Mina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대학동기가 찾아온다 했다.

필요한 것을 물어 없다고 하니까 싱가포르에서 유명한 커피를 사 온다길래 손사래를 쳤다.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장기프로젝트를 할 때, 팀비용임에도 내가 결재를 꺼렸던 돈은,

비싼 고깃집 식대도, 술값도 아니고 커피값이었다.

내가 마시지 않으니, 이기적 이게도 커피에 쓰는 돈은 늘 이해받지 못했다.


친구가 사 온 선물을 여는 순간, 고급진 커피 향이 훅 올라왔다.

손사래를 친 게 무색하게 커피 향에 금세 매혹되었다.

"뭔 향이 이렇게 좋냐? 안 마시고는 못 배기겠고만."


아침을 먹고 커피를 내려 친구와 발코니에 앉았다.

친구가 싱가포르로 가고 나서는 처음 만나는 자리라 단연 화두는 싱가포르 살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싱가포르는 깨끗한 나라, 벌금의 나라, 살기 좋은 나라, 관료들이 청렴한 나라다.

처음 싱가포르에 갔을 때, 택시기사 아저씨가 정부를 칭찬하고,

싱가포르에 대한 자부심으로 말 끝마다 '나라 자랑'을 해서 어안이 벙벙했다.


그 이후로도 택시를 타는 족족 은근히 기사아저씨들을 떠봤지만, 머물고 있는 동안 정부에 불만을 갖고 있는 기사아저씨를 끝내 찾지 못하여 은근히 실망을 하고 돌아온 기억이 있다.


친구도 습하고 더운 날씨를 빼면 꽤나 싱가포르 살이에 만족하는 듯했다.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법규와 벌금은 개인집 발코니 화분받침까지 뻗쳐있었다.

침을 뱉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물론, 껌을 소지하는 것까지도 벌금, 주류판매시간제한은 그렇다 해도, 화분받침은 무슨 연유인가 물으니, 화분받침에 물이 고여있으면 그곳에 벌레가 알을 낳아 번식의 가능성이 있어서 걸리는 즉시 벌금이 부과된다고 했다.


"흠.... 숨 쉬거나 눈깜빡이는 횟수 제한도 있냐 혹시?"

내가 물었다.



어릴 때부터 규칙을 잘 따르는 친구의 아들은 그곳에서 적응을 잘했다.

그런데, 유럽에 도착하자마자 더러운 길바닥, 아무 곳이나 앉아있는 사람들, 빨간불에도 차가 없으면 자연스레 길을 건너는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해가 된다.


규제와 규칙이 언제든, 어디서든, 무엇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지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사회에서는 조용히 앞에 가는 양 떼무리를 따르면 된다. 대오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친절한 안내는 친절한 금자 씨처럼 서서히 우리에게 독을 먹여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듣는 기능을.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주 1)



궁금한 것을 서둘러 검색해 버림으로써 인간으로서 생각하는 힘을 잃듯이,

친절한 '규제'씨가 서둘러 알려줌으로써 스스로 내 양심에 묻는 힘을 잃을까 겁이 난다.

우리는 정부의 그토록 친절한 간섭을 원한 적이 있을까?

생각의 힘이 자라기 전에, 스스로의 양심의 심연의 소리를 듣기 전에,

'이래야 한다, 저러해서는 안된다'라는 규제가 밀어낸 양심이 설 곳은 어디일까?

'나'의 존재 한가운데에 우뚝 자리해야 할 양심을

한 번도 불러주지 못했을 때,

한 번도 제대로 써보지 못했을 때,

양심은 결국 '도태행' 열차를 집어 탈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본성이 조용히 사라지고, 군말 없이 대오를 따르는 순한 양이 되었을 때,

인류가, 세상이, 정부가 몰고 가고 싶은 방향은 과연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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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한 사람을 보라! 그가 바로 미국 정부가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 미국 정부가 자신의 주술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단지 인간성의 그림자이며 추억에 지나지 않으며, 산채로 염을 해서 세워놓은 인간 또는 이미 장송곡과 함께 무기 밑에 묻혀버린 인간인 것이다.(주 1)



세계의 뉴스는 물론, 한국에서 날아오는 뉴스도 차단한 지 오래였는데,

한국의 계엄 소식을 옆집 아저씨가 화들짝 놀라 뛰어와 알려주었다.

먼 나라에서 들은 조국의 천지개벽하는 소리에 화들짝 놀랜 이후, 지금은 가끔 뉴스를 들여다본다.

한 번에 너무 놀라 초래될 심장마비에 대비하려는 일종의 자기 방어체계이다.


국회 앞에 동원되었던 젊은 군인들이 떠오른다.

나였다면 군인의 원칙인 '상명하복(上命下服)'을 따랐을까,

군인의 본분인 '위국헌신(爲國獻身)'의 의미를 물었을까.


어려서부터 친절하고 세세하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먼저 가르치는 것은,

섣부른 '간섭'이다.

본질을 알기 전에 형식을 강요하는 '모순'이다.

잘 짜인 각본으로 무대에서 춤추라는 꼭두각시 노릇의 '강요'이다.

우리는 '살기'를 원하지 '노릇'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존재'하기를 원하지 '생존'만을 원하지 않는다.

인간이 도덕적 판단을 할 기회를 사회가 앞장서 차단해서는 안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기계로서, 자신의 육신을 바쳐 국가를 섬기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판단력이나 도덕감각을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일은 전혀 없다. 그래서 나무로 사람을 깎아 만들더라도 그들이 하는 일을 해내는 데는 별 지장이 없을 것이다. 이들은 도덕적인 변별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뿐만 아니라 악마도 함께 섬기게 된다.(주 1)



나는 삐딱하고 못 돼먹은 구석이 있어서 그런지,

지나치게 깨끗하고, 바르고, 신속하고, 배려하는 도시에 가면 뭔가 불편하다.

미안하지만, 싱가포르가 그런 도시 중의 하나였다.

그 정결하고 효율적인 사회시스템에 사람들은 순한 양이 되어 잘 길들여져 움직였다.

사회는 완벽한 각본으로 사람들을 잘 훈련시킨 것 같았다. 그들이 도덕적 변별력을 잃고

하느님뿐 아니라 악마를 함께 섬긴다 해도, 사회는 크게 개의치 않는 듯했다.

어디까지나 그 악마가 집에서만 조용히 있고 밖에 나돌아 다니지 않는다면,

아니, 밖에 나돌아 다녀도 악마에게 벌금을 매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어느덧 친구가 사 온 Bacha커피를 거의 다 마셨다.

커피 따위 사 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해놓고, 그 향이 주는 위안에 푹 빠져서,

몸이 노곤하거나, 추운 새벽 일찍 일어나 앉아야 할 때 바샤커피는 내게 큰 기쁨을 주었다.

마실 때마다 멀리서 욕을 먹어가며 꾸역꾸역 커피를 사 온 친구가 고마웠다.

사람은 참으로 하찮은 순간에 스스로의 간사함과 모순됨을 깨닫는다. (나만 그런가)

나는 친구가 싱가포르에서 남은 시간도 행복하길 바란다.

친구와 싱가포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커피와 함께 삼킨 생각들을,

지금의 편안함과 안전함이 주는 모순과 이면을 친구가 볼 수 있는 날 또한 함께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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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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