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존재와 에고

by Mina


늦가을 아니, 겨울 초입까지 이곳에는 장미가 핀다.

겨울에 접어들던 어귀 어느 날, 오가는 정원 한편의 장미에 눈길이 훅 쏠렸다.

다홍색 장미 한 무더기가 유난히 볼썽사납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파리는 싹 다 떨어지고,

장미꽃만 소복하게 줄기 끝에 닥지닥지 붙어있다.


"어라??? 이거 장미 맞지?"

아무도 없는 정원 구탱이에서 씨앗을 쪼고 있는 참새라도 붙들어 묻고 싶다.


장미꽃이 분명하다. 꽃송이도 제법 싱싱하다.

선명한 다홍빛은 방금 칠한 엄마 루즈처럼 색도 곱다.

그런데, 누가 잎을 싹 다 훑어갔다. 초록 이파리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무성한 이파리가 모두 사라진 장미 줄기는 앙상하고 기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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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이파리를 좋아하는 동물이 갑자기 출현했나?

나뭇잎은 모두 훑어 먹었다는 트리케라톱스?

고만고만한 크기의 데이지꽃은 바로 옆에서 푸릇푸릇 이파리로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개미나 진드기를 본 기억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작은 것들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이파리를 흔적 없이 먹어치울 수가 있나?

아니, 천천히 먹어 치웠는데, 내 눈길이 이제야 닿은 것일까?

장미는 스스로 이파리를 떨구기로 맘먹은 것일까?

스스로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는 도마뱀처럼,

장미는 어떤 위험을 감지했기에 스스로 이파리를 자른 것일까?


매일 정원을 오가며 장미를 살피게 되었다.

이내 시들어버리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꽃봉오리는 이제 안쓰러울만치 기괴하였다.

단연 꽃 중의 꽃, 장미가 아니고, 길가의 들꽃이라면

차라리 이 안쓰러움과 저 기괴함이 덜할 듯했다.


겹겹이 포개어 비스듬히 각각의 방향을 살포시 열고 닫은 꽃잎이 빼곡한 장미 꽃송이는 신비롭다.

열듯, 닫아버리고, 닫힌 듯 열린 틈에서 고혹적인 향까지 뿜을 때면 그 매력에 안달이 난다.

낯빛은 어떠한가, 고운 분홍은 수줍어 엷게 떨고 진한 다홍은 추호도 망설이지 않는다.

이 매력적인 꽃송이는 분명한데, 초록잎을 모두 떨군 너,


너를 차마 장미라 부를 수가 없어 나는 참담해졌다.....

네가 차라리 꽃송이를 모두 떨구고 꽃인지 풀인지도 모를 퍼런 그 무엇으로 돌아가길 내심 바랬다.

더 이상 장미였음을 알 수 없는 퍼런 줄기로 돌아가면 그 기괴함이 덜 안쓰러워질 것 같은데,

꽃송이는 끝내 자리를 지키며 가상자리부터 천천히 갈변하며 바싹 쪼글아들었다.


존재가 털렸다....


그즈음, '에고(Ego)'에 대한 글을 마무리하느라 골몰하던 머릿속에 번개처럼 들어온 생각이다.


오가며 바라보던 앙상한 줄기에 꽃송이만 남은 모습이

흡사, 자신의 존재의 소멸도 눈치채지 못하고,

'내가 누군지 알아? 나, 바로 장미야!'

이것을 증명하고자 기를 쓰는 거대한 에고로 보였다.


명색이 장미꽃이라 어쩌지도 못하고 차라리 빨리 꽃이 지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가며 바라보던 거대한 에고 대가리는 어떤 날은 암세포로 다가왔다.


암세포는 지금까지의 고유한 기능을 중단하고, 자신의 번식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리고 탈퇴한 나머지 세포집단을 자신의 영양섭취를 위한 숙주로 이용한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암세포가 생존하기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지만, 세포 그 자체도 자신의 생명을 인간을 위해 바치는 데 감격해하지 않았다. (중략) '정신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것'은 항상 자아의 죽음을 전제로 한다.

위대함은 언제나 나의 포기, 에고의 소멸을 전제로 한다. 우리는 자신을 전체의 일부로 인식하고 전체의 행복이 곧 우리의 행복과 똑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세포 하나하나가 생명체의 유전에 관한 모든 정보를 지니고 있다. 이 세포는 자신이 실제로는 전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주 1)


나는 여기서 위대함은 언제나 나의 포기, 에고의 소멸을 전제로 한다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명제 앞에 다시 세워졌다.


생명체 전체의 일부로서 자신의 몫을 하던 암세포가

어느 날 갑자기 독자노선을 취하기로 하고, 제 몸집만을 키운다.

이 암세포가 결국 인간생명을 다 먹어치운 후 인간과 같이 소멸하듯이,

장미 전체의 일부로서의 꽃은 꽃송이 번식만을 전면에 내세우고

이파리를 다 털린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기괴한지 알 턱이 없는 듯,

더 이상 장미라고 부를 수 없는 자신의 소멸을 눈치챌 수 있었을까?


푸른 잎을 모두 떨구고 줄기 꼭대기에 간신히 꽃송이를 얹고 있던 장미가

애처롭게 전해주려는 뜻을 헤아려 본다.

'나'를 갉아먹고 '나'라고 우기는 자아이다.


루미가 기다렸다는 듯 쐐기를 박는다.


장미가 져서 장미 정원이 망가진다고 해도 장미수에서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만약 어떤 것과 그것을 대신하는 것이 둘로 보인다면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당신이 형상을 숭배하는 게 아니라면 하나로 보일 것입니다.

형상만 본다면 둘로 보일 것이고, 그것의 빛을 본다면 당신의 눈에서 하나가 될 것입니다.

형상은 불량한 것입니다.

불량한 형상을 고통으로 녹이고, 그 아래의 합일에서 보석을 보아야 합니다.

만약 형상을 버리지 못한다면 사랑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의 본질이 전체가 되고 우리는 모두 하나로 연결됩니다.

우리는 태양처럼 하나의 본질이었고 매듭이 없었으며 물과 같이 맑았습니다. (주 2)


장미는 꽃을 버리지 못하고 잎을 버렸다.

형상을 버리지 못하고, 사랑을 버림으로써

전체를 잃은 것일까?


우리는 형상에 매달려 빛을 보기는커녕, 있던 빛도 잃어가는 것일까?


우리 집 정원의 장미가 존재를 털어갈 때, 남의 집 담장 안의 장미는 탐스럽게 뻗었다.

문득 우리 집 장미와 남의 집 장미, 나의 집과, 남의 집, 그리고 그것을 가르는 담장이

다 함께 나에게 무언가를 알려주지 못해 안달이 나 떼창을 하는 듯했다.

알듯 모르겠지만, 궂이 아는 척을 해본다.


자연이 주는 메세지 :

가자! 전체성과 통일성으로 (공산당 슬로건 같다)

형상을 넘어 빛으로, 사랑으로 (형상만 남은 장미를 사랑할 수 없었다)

볼썽사나운 에고 주의 (잊지말자. 존재감 털린 장미 대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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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몸은 알고 있다, 뤼디거달케

(주 2) 루미시집,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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