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나의 두 딸아이는 나중에 어린 시절 추석을 어떻게 기억할까?
오늘 아침, 버스 안은 유별나게 한가했다. 경기버스를 타고, 서울사무실에 오려면, 아침시간에는 항상 몇 대의 버스를 그냥 보내야 한다. (입석금지 이후, 생긴 현상이다.) 그런데, 오늘은 바로 버스를 탈 수 있었고, 심지어 버스 안의 좌석이 반정도는 비어있는 채로 서울까지 왔다. 오늘은 추석연휴 이후 첫날이다. 그런데 목요일이다. 그래. 나도 직장을 다녔을 때에는 이런 경우에는 목요일과 금요일에 연차휴가를 냈었지. 소상공인이 된 지금은 공식적인 빨간 날이 끝나자마자, 바로 사무실에 나왔지만, 아마도 큰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은 아마도 오늘과 내일 연차휴가를 내었을 것이다. 그래도, 난 소상공인들 중에는 비교적 많이 쉰 편일지도 모른다. 빨간 날은 다 쉬었으니까. 많은 소상공인들은 빨간 날도 쉬지 못한다. 우리 동네만 하더라도, 많은 식당과 가게들은 추석연휴 내내 문을 열거나, 추석 당일만 문을 닫고 나머지 빨간 날은 문을 열거나, 추석당일도 문을 열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어렸을 때에, 아버지는 추석이나 설에는 딱 달력의 빨간 날만 쉬셨다. 평소에는 토요일에도 일하셨고, 일요일도 격주로 쉬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추석이나 설은 내 기억에는 당일과 다음날, 그리고 다다음날 이렇게 이틀이나 사흘 정도 쉬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추석 같은 명절은 정말 드물게 가질 수 있는 쉴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추석은 부모님께는 무척 바쁘셨다. 우선 추석 전날 낮에, 어머니는 아들들을 데리고 시장에 가셨다. 음식재료와 함께, 추석빔(설에는 설빔)으로 옷가지를 하나씩 사주셨다. 주로 티셔츠나 점퍼를 사주셨고, 항상 두치수씩 큰 것으로 사주셨다. 추석빔은 그해 가을과 다음 해의 봄가을, 그리고 그다음 해의 몸까지 입는 옷이었다. 그리고, 장 봐온 음식 재료로 저녁에는 음식을 만드셨다. 전, 식혜, 잡채, 그리고 불고기를 만드셨다. 지금은 이 모든 음식이 언제나 사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그때에는 명절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특히 전은 부치시는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먹을 때가 제일 맛있었다. 추석 당일에는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친할아버지 댁을 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서울에서 수원으로 가는 것이었는데, 버스를 세 번쯤 갈아타고 한참을 갔던 것 같다.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 인사드리고, 점심을 먹고, 다시 버스를 타고, 외갓집으로 갔다. 외갓집은 서울에 있었는데, 역시나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고 갔었다. 당시에 나는 차멀미를 심하게 해서, 외갓집에 도착할 때, 쯤에는 녹초가 되어있었다. 외갓집에 도착하면, 외할머니와 외삼촌이 항상 용돈을 주셨고, 이상하게도 용돈을 받자마자, 차멀미에 녹초가 되었던 몸이 회복되었다. 그리고, 외갓집 근처의 문방구로 달려가서 조잡한 장난감을 사 왔었다. 외갓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다시 버스를 타고 한두 군데 친척집을 더 들렸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이 기억들 중, 추억이라고 남아 있는 것은,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서 옷을 사고, 장을 본 기억, 엄마가 전 부치시는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방금 부친 전을 집어먹었던 기억, 그리고 문방구에서 조잡한 장난감들을 샀던 기억들이다. 당시의 나에게는 일 년 365일 중에 가장 행복한 순간들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내 두 딸아이에게 추석 혹은 설은 어떤 추억으로 기억될까? 일정은 대충 비슷하기는 하다. 추석 전날은 집에서 음식을 한다. 삼 형제는 모두 결혼하였고, 나는 그중 둘째이다. 각 집에서 음식을 한 가지씩 맡아서, 만들고, 추석당일, 본가에 모여서 그 음식으로 상을 차려서 아침을 먹는다. 올해 우리 집이 맡은 음식은 갈비찜이었다. 추석빔은 아이들에게 사주지 않는다. 요즘은 아이들이 필요할 때, 옷을 사주기 때문에, 특별히 추석이라고 옷을 따로 사주지는 않는다. 추석당일에는 아침에 전날 한 음식을 싸들고 본가로 간다. 본가는 서울이고, 우리 집은 분당이어서, 자가용으로 이동한다. 본가에 모여서 아침을 먹고, 과일을 후식으로 먹으며, 잠시 이야기를 나눌 동안,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점심 먹기 전에 각자 처가로 떠난다. 난 처가가 부산이어서, 집에 왔다가, 저녁에 출발하여, 밤늦게 처가에 도착한다. 그리고 처가에서 이틀정도 시간을 보낸 후 돌아온다. 올해는 추석 후, 빨간 날이 하루밖에 없었고, 나는 사무실로, 아이들은 학교로, 빨간 날 이후에는 일상으로 돌아와야 해서, 부산 처가는 가지 않았다.(8월에 부산 처가에서 일주일 정도 보낸 이유도 컸다.) 음,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두 딸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추석을 기억할 때, 딱히 추억이 될 만한 것이 없어 보인다.
명절이면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도 아주 많다고 한다. 부자들도 있고, 형편이 어렵더라도,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아온 만큼 자기 보상을 위해서 필요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난 개인적으로는 경제적 형편이 어렵더라도, 아끼고 짬을 내서, 여행을 다니는 것에는 찬성하는 편이다. 그 여행이 해외일 수도, 국내일 수도, 비행기일 수도, 버스일 수도 있으나, 스스로에 대한 보상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꼭 명절이어야 할지는 모르겠다. 물론 명절연휴 같은 연휴가 없음은 인정하나, 명절에 부모님을 뵙지 않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 꼭 필요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평소에 부모님께 자주 인사를 드린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내 어린 시절처럼, 명절이 어떤 특별한 의미는 아니니까. 그러나, 평소에도 물리적, 심리적 거리로 인사드리지 못한다면, 아마도 부모님은 많이 서운하실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부모님이 보고 싶어 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내 아이들, 즉 손주들이기는 하다. 여러 가지 배경과 이유로 인해, 명절에 양가 부모님을 찾아 명절을 지내는 것보다, 해외여행을 선호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들 입장에서도, '추석연휴는 해외여행을 갔었어'라는 추억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어찌 생각하면 다양한 상황에서 각자 최선의 결정을 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어떤 잣대로 평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참, 명절에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다니는 이들도 꽤 아주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런 이들은 여러 의미에서 존경한다.)
추억이라는 것이, 꼭 특별한 기억일 필요는 없다. 일상적이지만, 그 안에서 '좋다'라고 느낀 기억이라면, 좋은 추억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쪼그리고 앉아 전을 집어먹은 것을 기억하는 것처럼. 매년 추석연휴와 설연휴는 돌아온다. 특별한 이벤트는 없지만, 어떻게 보면, 매년 추석연휴와 설연휴에 하는 일상이지만, 그 일상에서 두 딸아이가, '좋다'라는 느낌을 기억하고, 훗날 그 기억을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음. 그러려면, 내년 설연휴에는 무엇을 해야 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