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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솔 Sep 12. 2024

07. 비 내리는 날에

_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기억들

9월의 폭염주의보라는 말도 안 되는 늦더위 중에, 어젯밤부터 내린 비는 반가운 자연의 선물이 되어주고 있다. 이 비가 아마도 가을을 데리고 오겠지.

난 빗소리를 좋아한다. 빗방울이 어딘가에 부딪혀 튕겨지는 소리를 좋아한다. 마치 애니메이션 토토로에서 토토로가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좋아하듯이. 그러나, 아쉬운 것은 아파트에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빗소리를 듣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비가 내리면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오늘은 전에는 흘려보냈던 비 오는 날의 기억들을 되새겨보고 싶어 졌다. 이유는? 모르겠다.


비 내리는 날이면, 초등학교(솔직히 나는 국민학교라고 불리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다.) 교문 앞에서, 우산을 들고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들의 모습니다. 당시에는 접는 우산은 흔하지 않았고, 일기예보도 잘 맞지 않아서, 아침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아이들은 우산을 챙기지 않고 등교했었다. 그리고 비가 쏟아지면, 엄마들이 우산을 들고 교문 앞에 서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그러나, 우리 엄마는 그 엄마들 무리에 계시지 않았다. 지금은 당시 엄마의 건강상태, 우리집 사정 등으로, 엄마가 나오실 수 없음을 잘 이해하지만, 당시 초등학생으로서는 우리 엄마가 엄마들 무리에 없다는 것은 많이 서운한 일이었다. 엄마가 우산을 가지고 나온 친구가, '같이 쓰고 가자'라고 하면, '난, 비 맞는 걸 좋아해'라고 대답했고, 친구 엄마가, '감기 걸린다. 같이 쓰고 가자.'라고 말씀하셔도, '괜찮아요. 전 비 맞으며 뛰어가는 것을 좋아해요.'라고 답하고, 가방을 벗어 머리 위를 가방으로 가리고 뛰어가곤 했다. 집에 와서는 괜스레 엄마에게 심술을 부리기도 했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정말 비 맞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빗방울이 내 옷을 적시는 느낌, 그리고, 빗방울이 옷을 적시지 못하고 굴러 떨어지는 모습 등을 좋아하게 되었다.


재작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둘째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비가 오는데, 나와 와이프 모두 우산을 가지고 마중을 나가지 않고 집에 있었다. 아이 학교 사물함에 우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투덜거렸다. '다른 엄마들은 우산을 가지고 교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왜 우리집은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어?', '너 비 안 맞고 왔잖아?', '학교에서 선생님이 우산 안 가져온 아이들은 우산을 빌려줬어.' '그럼 된 거 아니야? 엄마가 우산 가지고 데리러 가야 해?', '그래도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야.' 둘째의 투덜댐을 보면서, 내 초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작년에 비가 내리는 날, 내가 집에 있어서, 우산을 가지고 교문 앞으로 마중을 나갔었다. 아빠는 나 혼자가 아닐까 걱정(?)도 했는데, 다행히도 아빠들도 꽤 있었다. 결정적인 것은 둘째는 우산을 쓰고 나오고 있었다. 사물함에 우산을 두고 다녔던 것이다. 자기 우산이 있었음에도, 둘째는 나를 보고 방방 뛰면서 좋아했다. 편의점에 같이 가서,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 집에 왔다.


비 내리는 날, 엄마를 따라 장 보러 갔다가, 비를 피해 쭈그리고 앉아 있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대형마트라는 것이 없었고, 장은 시장에서 봤다. 버스로 2~3 정거장 거리는 당연히 걸어 다니는 거리였다. 장 보러 갈 때는 당연히 비가 안 올 때, 집을 나섰고, 우산 따위는 챙기지 않았었다. 나는 엄마를 따라 장 보러 가는 것을 좋아했다. 시장 아줌마들이 한 개씩 주시는 간식거리도 좋았고, 시장 분위기 자체가 좋았다. 지금도 어디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시장은 꼭 가보는 편이다.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러면, 비 피할 곳을 찾아, 쪼그리고 앉아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비 피할 곳이란, 주로 남의 집 대문 앞이었다. 쪼그리고 앉아, 나는 무언가 계속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지금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무언가 많은 이야기를 조잘조잘 떠들었었다. 쉬지 않고 조잘대는 둘째는 날 닮은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가족은 주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본다. 자가용을 가지고 가기 때문에, 비가 온다고 비를 맞지는 않는다. 대신,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리면, 선루프의 가림막을 열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빗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은 차를 한 편에 세워놓고 다 같이 의자를 뒤로 젖히고, 선루프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고, 차창너머에서 들려오는 빗소리를 즐긴다. 만약 천둥이 치면, 이매진 드래곤스의 'Thunder'라는 곡을 듣곤 한다.


소풍을 갔을 때, 비가 온 날도 있었다. 당시에는 휴대폰이라는 것이 없었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소풍을 가는 날이면, 소풍 장소의 입구에 9시까지 각자 와서, 출석 체크를 하고, 삼삼오오 흩어졌다. 그리고, 다시 오후 3시쯤에 입구에 모여서, 인원 점검을 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었다. 그런데, 만약 오전에 비가 많이 오면, 9시에 모여서 출석체크만 한 후, 바로 흩어졌다. 그리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비가 많이 오니, 오후에 인원은 없다. 그러니 지금 바로 각자 집으로 돌아가라.' 만약 소풍장소가 놀이동산이었으면, 엄마에게 입장권을 사기 위한 돈을 받았었다. (입장료는 학교에서 지원되지 않고, 각자가 사야 했다. 집에서 받아온 용돈이 얼마냐에 따라서, 자유이용권을 사기도, 입장권만 사기도, Top5 이용권을 사기도 했었다.) 가방에는 도시락도 있었다. 그러니, 출석체크만 하고, 집에 가라고 한다고, 집에 갈 중딩이나 고딩들은 아니었다. 친한 아이들끼리 모여서, 어딘가 놀러 갔다. 가장 많이 갔던, 만만한 곳은 여의도 공원이었다. 비 맞으면서, 자전거를 타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탔었다.


첫째는 초등학생, 둘째는 아직 유치원생이었을 때, 가족끼리 놀이공원을 간 적이 있다. 사람이 좀 적은 때에, 놀이공원에서 아이들과 놀려고, 평일에 회사 연차를 내고, 철저한(?) 계획을 세운 가족 나들이었다. 당일 일기예보는 오후에 폭우를 예보하고 있었으나, 내 연차를 바꿀 수 없어서, 계획대로 놀이 공원을 갔다. 그런데, 정말 점심을 먹고, 2시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실내 시설에서 비 그칠 때까지 버텨보려고 했으나, 빗줄기가 굵어지고, 천둥번개도 치기 시작했다. 어렸던 아이들은 천둥번개가 칠 때마다, 겁을 먹고 울먹거렸다. 어쩔 수 없이, 집으로 가기로 하고, 둘째는 유모차에 앉히고, 유모차의 차양막을 비막이로 쓰고, 첫째는 내가 안고, 내 겉옷으로 비 맞이 않게 덮어주고, 나와 아내는 비를 쫄딱 맞으며, 놀이공원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니, 하늘은 맑게 개어있었다. 사실 아이들은 지금이 이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냥 엄마아빠랑 놀이공원 갔다가 비 맞은 적이 있어 정도의 기억만 있는 것 같다.


세상은 변하고, 세대도 변한다. 그리고, 삶의 방식도 변하고, 여가를 보내는 방식도 변한다. 날씨 역시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상이변도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햇볕이 쨍쨍한 날, 비가 내리는 날, 눈이 오는 날, 정말 추운 날, 정말 더운 날은 매년 돌아온다. 이런 날들에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면, 그 기억들을 흘려보내지 말고, 한 번쯤 되새겨보면, 오늘을 살아낼, 그래서 내일 돌아볼 오늘의 기억을 만들 힘이 나지 않을까? 그 기억이 좋은 기억일 수도, 힘든 기억일 수도 있지만, 내게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만들어줄 소중한 기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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