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삶의 가치? 의미? 신조?
'아빠, 삶의 가치랑 의미가 무슨 말이야?'
마루에서 숙제를 하던 첫째가 갑자지 똘망똘망한 눈으로 물어봤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아이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음, 왜 물어보는지 알아야 아빠가 답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숙제야. 선생님이 자기의 삶의 가치랑 의미를 글로 적어오라고 하셨어. 근데, 가치랑 의미는 다른 거래.'
첫째는 중학교 1학년이다. 수학, 영어, 국어 등은 아직은 아이가 물어보면, 답해줄 수 있는 수준이어서, 아이가 공부할 때면, 옆에 있다가, 물어보는 것을 답해주곤 해왔다. 가끔 답하기 어려운 것을 물어보면, 같이 검색을 하며, 답을 찾기도 했고. 난 이런 시간이, 아이가 어른이 된 다음에, 아이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믿는 편이다.
'음. 그게 설명하기 좀 어려운데... 아빠의 경우에는, 삶의 의미는 가족이고, 삶의 가치도 지금은 가족이거든. 근데 두 가지가 분명히 다른 것이기는 한데, 설명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한번 찾아보자.'
검색을 하다 보니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찾을 수 있었다.
2021년 미국의 퓨리서치에서 한 조사결과인데, 17개국 성인 1만 9천 명에게,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가치는 무엇인지?'를 물어본 결과였다. (https://www.hani.co.kr/arti/science/future/1020382.html)
복수응답이 가능한 조사였고, 결과는 1위는 가족(38%), 2위는 직업(25%), 3위는 물질적 풍요(19%) 였다고 한다. 17개 국가 중, 가족을 1위로 뽑은 국가는 14개국이었고, 한국은 물질적 풍요를, 스페인은 건강을, 대만은 사회를 1위로 뽑았다고 한다. 다행인 것(?)은 한국의 결과를 보면, 물질적 풍요가 19%, 건강이 17%, 가족이 16%로 비록 가족이 3위이기는 하지만, 물질적 풍요나 건강과 큰 차이가 없었고, 한국은 복수응답이 가능함에도, 한 가지만 뽑은 응답이 62% 임을 감안하고 봐야 하는 결과라고 한다.
이 설문의 질문은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가치는 무엇인지?'였다. 즉, 삶의 가치란 '내 삶이 의미 있게 되기 위해서, 내가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르게 표현하면, 가치는 내가 중요한 판단을 할 때, 기준으로 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전에서 가치를 찾아보니, 경제적 관점에서의 의미만 나와서, 가치관으로 찾아보았더니, 내 생각과 비슷한 의미를 설명해 주었다.
가치관: 가치에 대한 관점. 인간이 자기를 포함한 세계나 그 속의 사상(事象)에 대하여 가지는 평가의 근본적 태도
첫째에게는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삶의 가치는 '내가 일상생활에서 무언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결정의 기준으로 삼는 내 생각 또는 윤리관'이고, 삶의 의미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인 것 같아.'
내가 제대로 설명한 건지, 첫째가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첫째는 알았다며, 숙제를 계속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가치로, 물질적 풍요를 가장 많이 뽑은 이유는, 어쩌면, 지금 우리의 슬픈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건강과 가족이 중요하지만,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건강과 물질적 풍요가 필요하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시 물질적 풍요가 필요하다는 현실이 이런 설문결과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아이들도 친구들과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유료 학원이나 클럽에 등록해야 하고, 어른들도 체육관에서 코칭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는 반드시 필요하며, 심지어 부모의 부가 자식에게 물린다는 생각이, 두려움이 되어,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식상한 이야기이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부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 부를 가진 후에, 그 이상의 부를 가지고 있는지, 못 가지고 있는지는 '불편함'이어야지, 이것이 '가족에 대한 죄스러움'이나, '불행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지금 아이를 키우는 아빠의 입장에서, 나 역시도 경제적 부족함은 가족에 대한 죄스러움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난 모든 부모들처럼 내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행복의 조건이 '경제적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과 불편하더라도, 살을 맞대고, 살면서 느끼는 행복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들이 지금 좁은 집에서 가족들이 붙어서 지내는 이 시간이 나중에 '행복했던 순간'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경제적 부족함은 조금 귀찮고 불편한 것일 수는 있으나, 행복과는 무관한 것으로 여기며 자랐으면 좋겠다.
정말로, 현재 내 삶의 가치와 의미는 모두 가족이다. 고액연봉보다 커가는 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뭐, 고액연봉을 받을 능력도 되지 않지만.)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내 가족을 위해서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세상의 가치관을 바꾸는 일인 것 같다. 아무리 내가 '행복은 물질의 풍요가 없더라도, 가족 안에서 얻을 수 있다'라고 말한 들, 나 외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은 물질적 풍요가 있어야만 가능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아이들도, 우리 가족도 홀로 행복할 수는 없다. 무인도에서 사는 것이 아니니까.
또한 행복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물질(경제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최소한의 뜻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있어야 한다. 생각이 꼬리를 무니, 너무 복잡하고, 너무 많이 나가버린 듯하다.
다시 내 머릿속을 정리해서, 첫째에게 말했다.
'아빠의 삶의 가치는 '가족'이야. 그리고 삶의 의미는 '가족의 행복'이고. 근데 우리 가족이 행복하려면, 우리가 사는 사회도 점점 더 행복해져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우선, 일회용품 사용부터 줄이고, 음식물 쓰레기도 줄일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해 볼까?'
역시 너무 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