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 LA TENGO May 19. 2016

아버지와의 이별, 그리고 가족

부모님은 기다려 주시지 않는다. 

휴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키워드는 "가족"이었다.


작년 8월 그렇게 친하지도, 어색하지도 않았던 그렇지만 나와 너무 닮은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버지가 암이라는 사실은 꽤 오래전에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항암치료를 하는 중에도 한 번도 힘들다, 아프다는 내색을 하지 않으셨기에, 늘 잘 이겨내고 계시고 있다고 생각했었고, 우리가 이렇게 빠르고 급작스럽게 이별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일 자체를, 언젠가 받아들여야 할 내 일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의 시한부 선고, 아버지와의 이별은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아프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환자가 정리할 수 있도록 환자에게 알려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의사의 말이 너무 이기적으로 들렸다.

하루하루를 너무나 즐겁게 살던, 더욱이 본인은 절대 죽지 않을 거라고 강하게 믿고 있는, 삶에 대한 의지가 그렇게도 강한 사람에게 저 이야기를 전달하란 말인가. 저 이야기를 우리가 듣던 그날도, 아버지는 너무나 활기찼고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셨고, 카톡 참여와 밴드 참여에 열심히 셨다.


아무튼 아버지에게 말을 전하는 날도, 나는 함께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병원은 신촌이었고 나의 회사는 수원이었다. 아무리 빨리 가도 1시간 30분이 기본이었고 배려를 받는다고 해도 나에게 주어진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매일매일 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한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피부로 깨닫게 되었다. 우리 가족에게 남은 시간은 길어야 한 달인데, 왜 우리 가족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들로 인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오롯이 함께하지 못하는지 화가 날 뿐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그간 바쁘다는 이유로, 자식 된 도리로 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이 하나둘씩 스쳐갔다.

 "딸, 퇴근했어? 저녁은 먹었어?"라는 카톡에는 왜 그렇게 늦게 대답했던 건지, "딸 뭐해?"라는 말에는 왜 그렇게 투명스럽게 "회사지"라는 세 글자만 달랑 보냈는지... 후회스럽다. 아버지와 마지막 카톡 대화방에 대화마저도 아버지는 내 편일 뿐이었는데 말이다. "딸, 그 체리 맛있는 거야, 신랑 깨기 전에 너 혼자 다 먹어"

그런 사소한 것들 마저도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서 두고두고 아버지에게 죄송한 마음뿐이다.


정말 불꽃같이 지나간 시간 속에서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래도 아버지에게 그간 낯이 간지럽다며 하지 못했던 말들을 다 전했다는 것이다.

돌아가시기 몇 주전, 아버지는 간성혼수로 응급실에 입원하셨다. 1박 2일 동안 응급실에서 야수와 같이 소리 지르고 난리를 치셨는데, 힘겹게 힘겹게 깨어나시곤 본인은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제야 본인이 이제 시간이 정말 남지 않았는지를 깨달으셨는지 나와 남편에게 말씀하셨다.

 "J야, C야 엄마 잘 부탁해"

.

.

.

.

.

.

아버지가 본인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인정하시던 순간, 다행히 나와 내 남편은 꽤나 어른스럽게, 흐르는 눈물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어른스럽게도 이었지만 사실 오지랖 폭발하여 그 와중에 매우 현실적인 것도 있었다. 사망 후 유산상속이 어렵지 않을까도 고민해서 아빠한테 할 말을 다했다.)

 "아빠, 걱정 마, 내가 더 잘할게. 그리고 나는 유산 같은 거 하나도 필요 없으니까, 혼자 남을 엄마한테 다 줘. 엄마는 아빠 없이 혼자 오래오래 지내야 하는데 어떡해... 그리고 나도 회사를 다녀보고 알았어.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돈 벌어서 우리 먹이고 키웠는지... 그간 내가 몰랐던 거, 너무 미안해."




이렇게 힘든 이별을 하고 나서야, 지금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하루하루의 가치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 하루하루가 내가 그렇게 뻣뻣하게 행동할 만큼 중요한 시간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회사는 물론 자아실현을 위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가족과 행복하기 위해 다니는 곳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