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즈가 휴전선이 되었던 날
엄마는 부잣집 막내딸이었다.
시집올 때 몸종까지 데려왔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집안일이 서툴러서 할머니에겐 늘 구박받는 며느리였다.
어깨너머로 들은 서당 훈장님 말씀
정도가 배움의 전부였던 엄마에게,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해갔고 외래어는 사방에서 난무했다.
엄마는 외래어들을 늘 어려워하셨다.
어느 날 퇴근해 보니 집이 깜깜했다.
정전이 잦던 시절이라
'정전인가?' 하고 있는데
엄마가 소리치셨다.
"숙아, 휴전선이 터졌는갑다! "
"와? 전쟁 났나?"
"아니, 전기가 안 들어온다."
휴즈가 나간 거였다.
갈아 끼우고서야 '터져버린 휴전선'이 복구되며 집안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엄마의
'학교'는 늘 여러 이름이었다.
학죠, 학고, 핵교, 핵죠….
하지만 나는 그 모든 발음을 그냥 존중하기로 했다.
"슈펌막죠 가서 콩나물 사 오너라."
슈퍼마켓을 엄마식으로 부른 말이다.
병뚜껑은 병따꿍이었고
그 말이 어느새 내입에도 베어,
지금 나도 병따꿍이라 한다.
엄마를 빼 닮았다.
아이들은 흉내 내며 깔깔 웃는다.
엄마의 말은 엉뚱했지만,
그 속엔 언제나 웃음과 사랑이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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