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쾌한 한방
내가 딸 셋을 낳은 건, 우리 시댁뿐 아니라 옆집, 또 이웃 아주머니들, 할머니들까지 걱정거리였나 보다. 모두 안타까워하셨다.
며느리로서 우리 시어머니만 마주해도 숨이 막히는데, 동네 어른들의 염려까지 더해지니,
그 시절 내 삶은 온통 가시방석 같았다.
둘째를 볼 때마다 묵도리식당 할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아이고, 요 가시나가 걍 고추나 하나 달고 나왔으면, 이자뿔낀데…”
아이도 자꾸 듣는 말이 신경 쓰였는지
어느 날, 아이는 부엌으로 조용히 들어가 풋고추 하나를 바지 고무줄에 끼우고 나왔다.
얌전히 끼운 채, 살짝 눈을 크게 뜨고 할머니 앞에 당당하게 나타났다.
“할머니, 이제 고추 여기 있지요?”
둘째의 목소리는 또렷했고, 얼굴엔 해맑은 진지함이 담겨 있었다.
정적 속에서 모두가 잠시 얼어붙더니, 곧 손을 입에 가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한꺼번에 웃음이 터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어른들의 무심한 말 한마디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아이들은 듣고, 받아들이고, 각자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날,
바지 고무줄에 끼운 풋고추 하나가
나를 짓누르던 시대의 압박을 잠시 내려놓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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