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시누이의 마음 "올케야 보따리 싸라"
아흔을 바라보는 큰 시누이,
마음이 한바다 같은 분이시다.
남들은 시집의 ‘시’ 자도 싫다고 하더니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시집왔을 때 형님의 나이는 마흔 살.
내 눈에 들어온 시누이는 어떤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웠다.
‘나도 마흔이 되면 형님처럼 될까?’
깊은 생각도, 무엇이든 척척 해내는 살림살이도 그랬다.
결혼 초, 산달이 다가오고
임신중독증으로 힘든 날을 보낼 때
형님이 오셨다.
마당에서 빨래하는 나를 보시곤,
“아이고, 올케야. 무슨 일이고, 보따리 싸라.”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나는 멍청하게 서 있었다.
방으로 들어간 형님은 말씀하셨다.
“엄마, 사람 죽일라고 그라요?
올케 몸 부은 거 보소.
우리 집에 데리고 갈라요.
저런 아를 빨래를 시키고…”
형님은 내 손을 잡고 형님네로 향했다.
나는 시어머니가 무섭기도 했지만,
그런 시어머니에게 당차게 맞서는 형님이
너무 우러러보였다.
그때 생각으로는,
마흔 살만 되면 남의 흉도 안 보고,
이해심도 많고 사려 깊은
우리 형님 같은 어른이
저절로 되는 줄 착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나는 마흔이 지나도
마음의 성장 없이 세상을 산 것 같다.
마음의 성숙함은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님을
지금은 안다.
세상의 쓰디쓴 아픔과 인내,
그리고 경험에서 온다는 걸.
요즘도 여름이면
큰 풋고추와 다시 멸치를 간장에 푹 끓여
근대랑 쌈을 싸 먹는 걸 좋아한다.
그해 여름, 형님이 해 주시던 반찬이다.
꿀맛보다 더 맛있던 그 반찬.
그 맛을 잊지 못해 해마다 해보지만
형님 손맛은 따라갈 수 없다.
큰 시누이의 따뜻한 마음은
나에겐 밝은 빛이었다.
그런 밝은 빛이 서서히 빛을 잃어가신다.
치매로 요양병원에서.
빛이 저물어도 마음의 바다는
여전히 출렁인다.
방금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써놓은 이 글을 미처 올리기도 전에...
아픔이 없는 좋은 곳으로 가시길 바라면서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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