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살다.
낯선 전화번호.
망설이다 받은 수화기 너머로 사십 년 전 추억이 샘솟는다.
"밥 한 그릇 사고 싶다"는 아주머니다.
한 지붕 아래 다섯 가구가 모여 살던,
방 한 칸 부엌 한 칸의 팍팍한 시절.
저녁 반찬 색다른 것이 있으면 나누어 먹고,
마당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던 시절이었다.
그 팍팍한 삶이 잦은 부부 싸움으로 번지곤 했던 때.
마당 너머로 들려오는 아주머니의 절규에 나는 마당으로 나섰다.
아주머니는 아저씨의 바지를 잡고 울면서 내뱉고 있었다.
"애들이 밥을 못 먹고 굶고 있는데, 화투가 눈에 보이나!
며칠을 굶었는데..."
아저씨는 노름판을 전전하고 집안을 돌보지 않았다.
아이가 넷인 그 집 아이들이 밥을 못 먹었다는 말에
내 삶도 녹록지 않았지만 망설일 수가 없었다.
나도 세 아이의 엄마였기에
아주머니의 절규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나는 국수 다섯 다발을 사서
아주머니에게 조용히 건넸다.
아이들 국수라도 끓여주라고.
아주머니는 눈물을 감춘 채 돌아섰다.
고맙다는 말도 못 한 채.
40년이 지난 오늘
"나도 이제 밥 한 그릇 살 형편은 돼."
아주머니의 유쾌한 말 한마디에
우리는 점심을 같이하며
지난날의 이야기와 소주 한 잔을 나누었다.
"그날 국수 다섯 단이 우리 식구를 살렸어.
이제야 짐을 벗고 싶어서 밥 한 그릇 사는 거야.
그때 00엄마는 참 어렸었는데"
여든을 넘긴
유쾌한 할머니가 된 아주머니의 말이었다.
나는 잊고 있었다
국수 다섯 다발을
사십 년 동안
아주머니의 어깨위에서
짓눌렀을
국수 다섯 다발의 무게.
오늘,
아주머니는
국수 다섯 다발의 무게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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