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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 jin Jul 18. 2024

8. 나도 우리 엄마 불러?

- 당황스러운 상황에 나를 내몬 것에 대해

외출 계획이 없어 느지막이 하루를 시작했던 일요일. 아이들은 진작 일어나 거실에서 놀고 있었고, 나는 잠깐 거실로 나가 아이들에게 아침 요깃거리만 챙겨주고 다시 방에 들어왔고, 씻지도 않은 채 휴대폰으로 넷플릭스를 보고 있었다. 주말엔 깨우지 않으면 11시, 12시까지 푹 자고 일어나는 남편은 그날따라 웬일인지 평소보다 한두 시간을 일찍 일어나 자기 방에 있었다. 정오쯤 됐을까? 밖에서 현관 벨이 울렸고 당연히 남편이 여느 때처럼 뭔가를 배달시켜 먹는구나. 생각하곤 '나도 질 수 없지.' 하며 배달 앱을 켰는데 순간, 현관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잘 있었어?” 


우리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사시며 일주일 전에도 아이들과 만나셨던 시어머니다. 순간, 이게 뭐지? 어머님이 왜 갑자기? 당황한 채로 방문 밖을 빼꼼히 내다보며 ‘어머님 오셨어요? 연락을 하고 오시지.’ 하며 허둥대는 내게 시어머니는 ‘넌 이제 일어났니?’ 하며 한 마디 하신다. 

머릿속에서 남편을 어떻게 할까, 욕이 나왔다.


평소에 시어머니는 우리 집에 이렇게 불쑥 오시는 분이 아니다. 반찬거리며 과일, 채소 등을 갖다 주실 때도 굳이 집 안까지 들어오시지 않고 지하주차장에서 줄 것들만 내려놓으시곤 곧바로 가신다. 마치 우리 집은 절대 발을 들으면 안 되는 곳인 양 부리나케 떠나신다. 안다. 며느리인 내가 불편해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어머님 나름대로 나를 배려해 주시려는 것. 그런 어머님이 아무 말씀도 없이 우리 집에 오실 리가 없다. 분명 남편에게 연락하셨을 거고, 중간에 남편이 뭐라고 대답했든 결과적으론 우리 집에 오시게 됐다. 


그렇다면, 남편이 내게 어머님이 오신다고 언질을 줬어야 정상 아닌가? 

집은 엉망이고 나는 씻지도 않은 상태인데 시어머니의 방문이라니. 


남편은 내가 처할 곤혹스러움을 당연히 예상했겠지만 우리가 ‘냉전 중’이라는 이유로 ‘굳이’ 말을 하지 않았다. 이 상황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도 우리 엄마 불러야 하나?


내가 급히 대충 씻고 거실에 나가니 시어머니는 소파에 앉아 계셨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과일을 깎아 내어 드리고 같이 식탁에 앉아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는 동안 남편은 거실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자기는 집주인이 아닌가, 어머님이 오셨는데 물 한 잔을 안 내놓고 본인이 손님처럼 소파에 앉아 있는 꼴이라니. 

시어머님이 점심을 사주시겠다며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남편은 됐다고 했고, 시어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린다며 아이들과 집을 나섰다. 

모두 집을 나서고 혼자 덩그러니 남겨지니 그때 다시 남편에 대한 미움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를 그런 당혹스러운 상황으로 내몬 것에 대해. 

남편과 아이들이 시어머니 댁에 다녀온 후, 몇 시간을 낮잠 자고 거실로 나온 남편에게 물었다. 


“왜 어머님 오신다고 말을 안 해?”

“난 오시지 말라고 했어.”

“결국 오셨잖아? 주말이라고 씻지도 않고 푹 퍼져 있는데 당연히 말해야 되는 거 아니야?”

“……”


자기는 오시지 말라고 말했다는 것으로 남편은 자기가 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한 걸까?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가 나를 당황스러운 상황으로 내몰았는데. 고의가 아니었다면 남편은 당연히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어야 했다. '당황했지? 미안해.' 이 한 마디가 어려울까? 

(남편은 언젠가부터 자신이 뭔가 실수를 해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지난 명절에 시어머니와 셋이서 전을 부치다가 남편이 내 팔에 뜨거운 기름을 튀게 해 놓고서도, 얼른 약 갖다 주라는 시어머니 말씀에도 전 부치기를 멈추지 않으며 ‘괜찮아.’라고 말할 정도다. (내가 다쳤는데, 왜 네가 괜찮아?) 흐르는 물에 오랫동안 뜨거움을 내려 보낸 내가 다시 자리로 돌아와 ‘왜 사과를 안 해?’ 했을 때에야 마지못해 ‘미안해.’라고 한 사람이다. 시어머니는 그제야 남편의 실수 때문에 내가 데었다는 걸 아셨다. 그 정도로 남편은 미안해 한 마디를 아낀다.) 


어쩌면 남편이 작정하고 나를 당황스러운 상황에 몰아넣은 것일 수도 있겠지. 아무 말도 없이 오신 시어머니를 보고 당황하지 않을 며느리가 어디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나와 힘겨루기를 하겠다는 남편의 무례한 태도를 눈감아주고 싶지 않다. 다만 똑같이 남편에게 아무 언질 없이 우리 엄마를 집으로 모셔올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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