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무 문제없는 거 아니었어? (2)
- 도대체 왜 안 씻는 거야?
지금은 더 심해졌고, 코로나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시절 남편은 퇴근하고 돌아오면 마지못해 손만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잠자기 전에 샤워를 했다. 나는 그게 늘 불만이었고 누누이 집에 오자마자 바로 욕실로 들어가서 씻기를 요청했으나, 남편은 한두 번은 그러다가 오래가지 않아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이유가 대체 뭘까? 남편은 어차피 씻고 잘 거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한다. 지금 씻든, 이따 씻든 뭐가 다르냐고 한다.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있나, 혼자 사는 집이 아닌데. 우리 다 같이 사는 집인데. 자신의 위생 문제도 있지만, 아이들이 코로나에라도 걸리면 책임질 건가 하는 생각이 컸다.
또한 남편은 씻지 않은 상태로 잠들기가 여러 번이었는데, 그때마다 내가 일어나서 씻고 자라고 몇 번을 깨우는 과정에서 서로 감정 상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나는 처음부터 아예 씻고 자던가, 아니면 한 번 깨우면 일어나서 얼른 욕실로 가던가 했으면 좋겠는데 남편은 계속 침대에 누워 말로만 '일어날 거야, 씻을 거야.' 하고 있으니 답답한 내가 날카롭게 소리를 질러야만 끝나는 상황.
‘왜 내가 이렇게 화를 내야 되지? 다 큰 성인인데 씻고 자는 것까지 내가 잔소리를 해야 되나?’ 이럴 때 늘 드는 생각은 내 역할을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이다. 씻고 자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았어야 했는지, 지금처럼 일어날 때까지 깨웠어야 했는지, 한 두 번 깨우다가 안 깨면 포기했어야 했는지. 남편은 그냥 아침까지 쭉 자고 싶었을 것이다. 하루쯤 안 씻고 자면 좀 어떠냐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아마 내가 유난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을 거다. 결국 내가 화를 내니까 어쩔 수 없이 주섬주섬 욕실로 들어갔겠지만.
이런 상황이 참 답답하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 종식 이후엔 남편의 방은 문 열기 두려울 정도로 ‘남자 냄새’가 나서 남편의 이불과 베개 세탁은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깨끗하게 잘 씻고 자면 이런 사태까진 오지 않을 것 같은데, 퇴근하고 돌아와 옷만 갈아입고 바로 침대에 눕거나, 그 상태로 한두 시간 자고 일어나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남편의 베개 커버를 꼭 세탁해야 되는가? 하는 원론적인 물음에 다다랐다. 그냥 저렴한 것 몇 장을 사서 일주일에 한 번씩 버릴까? 아니 그건 너무 낭비 같은데 고민하다가 결국은 남편에게 베개 커버만 몇 장을 사 주면서 제발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베개 커버를 세탁 바구니에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당연히 남편은 처음 몇 번은 그렇게 하더니 그 후엔 일주일이고 이 주일이고 그것을 까먹는다. 이불은 또 어떻고. 남편의 이불 빨래는 다른 이불 빨래보다 시간과 정성이 더 많이 필요하다. 뜨거운 물에 과탄산 소다를 녹여 충분히 이불을 불린 후에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노력을 남편은 알까? 남편이 내가 말한 대로만 신경 써서 잘 씻는 습관만 들여주면 나의 수고로움이 덜해질 텐데.
인지하지 못하다가 최근에 남편이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오는데 손을 씻지 않는 것도 알게 됐다. 황당해서 ‘왜 손 안 씻어?’ 하고 물으니 마치 깜박했다는 듯 다시 들어가 손을 씻고 나오더란 것이다. 남편이 손을 씻지 않고 욕실을 나오는 그 과정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대체 이 남자는 언제부터 이랬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럼 남편이 예전부터 이런 사람이었냐 하면 그게 아니었다는 게 내가 황당한 부분이다. 내가 느끼기에 남편은 단정하고 깔끔한 사람이었다. 흡연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옷에서 늘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고, 그가 신은 양말은 새것이라고 해도 될 만큼 새하얬다. 옷은 티셔츠라도 늘 구김 없이 반듯했으므로 그의 위생 관념을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는 말이다. ‘깔끔한 사람이구나.’라고만 생각했지, 그것이 다 시어머니의 노고였다는 걸 그때의 난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시어머니와 분리된 후에도 깔끔한 습관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남편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내 뒤통수를 친다.
어렵다. 그의 위생 관념을 어디까지 이해해야 되는지. 나도 그렇게 깔끔한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위생 습관은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