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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 jin Jul 05. 2024

5. 이상하다?

우리 아무 문제없는 거 아니었어? (3)

- 쓰레기통이 바로 이 옆에 있잖아. 안 보여?


내가 신혼 때부터 늘 잔소리하는 것 중에 하나는 남편이 핫도그든, 아이스크림이든, 과자든 먹고 먹은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핫도그나 아이스크림의 나무 막대, 과자 봉지 등등. 다 먹으면 바로 휴지통에 갖다 버리면 될 것을 ‘이따가, 이따가’ 하다가 잊는 일이 다반사다. ‘이거 이따 치운다며?’ 하고 지적하면 ‘치우면 되지.’ 하고 기분 나쁘다는 듯 가져간다. ‘바로바로 좀 치워.’라고 말하면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내가 치우잖아.’ 하는데 한숨이 나온다. 그 또한 사실이 아니니까.

남편과 살다 보니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다는 말이 얼마나 와닿는지 모른다. 한두 번은 그래, 치워줄 수도 있지. 그런데 그게 지속되면 점점 피곤해진다. 자신이 자신의 몫을 다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자신의 뒤치다꺼리를 해줘야 된다는 건데, 그건 너무 무책임한 행동이다.


이런 일로 부딪쳤던 초창기엔 그렇게 살아온 남편의 유년 시절을 원망했다. 모두 다 ‘엄마’가 해주시니 스스로 해야 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다. 남편의 엄마, 내 시어머니는 남편 스스로 뭔가 하기도 전에 당신이 먼저 손을 대셨다. 그것은 의도적인 과잉보호라는 말보다는 책임감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시어머니는 응당 집안일을 당신의 일, 당신의 소임이라 여기시고 일체 남매에게 전하지 않으셨다. 그것은 전업 주부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굳이 아이들에게 시킬 만큼 고된 일도 아니라 여기셨을 것이다. 정성스레 재료를 다듬고 당신 손으로 만든 음식들을 남매의 입에 넣어주는 일이 행복하다고 느끼셨을 것이다. 깨끗하게 세탁하여 뽀송하게 마른 옷들이 구김 없이 정리되었다가 내 자녀가 단정하게 입고 나가는 모습이 뿌듯하셨을 것이다. 


이해한다.

 

시어머니는 원체 깔끔하고 바지런한 타입이시기도 하고, 남편이 중학생일 때 시아버님과 사별하시면서 남매에게 더욱 신경을 쓰신 거라는 걸. 

그런 시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편이 어머님의 노고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옆에서 거드는 습관을 들였다면 어땠을까? 스스로 청소기도 밀고, 세탁기도 돌리고, 선반에 먼지가 쌓이기 전에 닦아내고. 그러면 나의 불만이 지금보다 훨씬 덜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주말부부였을 때, 시어머니를 가끔 뵈면 하시는 말씀이, 남편은 퇴근 후 밤에 컴퓨터를 하면서 뭘 먹고 안 치우고 꼭 그 자리에 둔다고.  ‘그게 왜일까요, 어머님? 그 자리에 그냥 두어도 다음 날 어머님이 다 치워주시니까요. 스스로 치울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지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우리 집 남편 방 컴퓨터 앞에는 남편이 어젯밤에 먹은 참외 접시와 포크가 그대로 놓여 있다. 왜냐? 우리 집에는 시어머니가 안 계시니까.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벌레라도 생길까 봐 내가 나서서 치우곤 했는데 계속 치워주니까 남편은 바뀌질 않았다. 그래서 나도 안 하기로 했다. 먹은 접시는 본인이 정리하는 것이 맞고, 세탁 바구니에 빨래를 담아서 세탁기 앞까지 갖다 놓지 않으면 세탁도 안 해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편은 크게 불편함이 없는 것 같긴 하지만, 나 나름의 소심한 복수다.

편했던 남편의 유년 시절에 비해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이 맞벌이를 시작하셔서 본격적으로 집안일을 해야 했다. 밥도 처음 안쳐보고 반찬들도 만들고, 설거지, 빨래 등 온갖 집안일을 당연히 언니와 함께 했다. 심지어 학교에 가기 전 언니와 나의 도시락도 쌌으니, 집안일이 내겐 그저 익숙한 일상인 것이다.  

이렇게 다르게 살아온 우리가 한 집에 살면서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었는지. 


내가 ‘공평함’에 초점을 두고 남편의 행동을 바라봐서 이렇게 불만이 쌓이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공평함’은 내가 살아온 과거에 기인한다고도 할 수 있는데, 내겐 태어날 때부터 경쟁 상대인 연년생 언니가 있었다.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언니와 외모부터 공부, 특기, 성격 등 모든 면에서 비교당하고 경쟁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서로를 향한 비교는 일상생활에서도 자연스러웠는데 집안일을 할 때도 딱 반반씩. TV를 보면 나 1시간 봤으니 너도 1시간. 오늘 언니가 방을 치우고 내가 설거지를 했으면 다음 날은 바꿔서. 이런 규칙을 세워 놓고 하나라도 손해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에 반해 남편은 연년생인 누나가 있지만, 누나와 경쟁 관계라기보단 오히려 보살핌을 받는 쪽이었다고 한다. 자매와 남매의 차이일지도 모르고 타고난 기질 차이나 부모님의 양육 방식의 차이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는 각자의 가족 안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왔으며 그 다름은 결혼 후 후폭풍이 되어 해결되지 않는 문제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예전에는 남편이 사소한 것에 연연하지 않는 대범한 성격이라 마음에 들었었다. 그런데 '그게 뭐가 문제야, 그까짓 거 뭐, 하면 되지.' 이 태도가 자기가 먹고 남긴 아이스크림 막대를 버리는 일로 돌아올 줄이야.

 

난 오늘도 집 청소를 하면서 소파 근처에서 남편이 먹고 치우지 않은 아이스크림 막대와 비닐을 발견한다. 남편 눈에는 휴지통이 보이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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