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

누구는 흙수저로 태어나고 누구는 금수저로 태어나는 이유

by 줄란

인도에 갈 때마다 늘 삶의 처절함을 생생하게 느낀다. 그곳에서는 내 막내 조카보다 어려 보이는 아이가 돈을 벌기 위해 줄을 타며 곡예를 하고,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 길거리에 나와 해맑게 웃으며 구걸을 한다. 노점상인들은 30도가 넘는 더위를 묵묵하게 견디며 물건을 팔고, 옛 되고 어여쁜 아가씨가 사리를 입은 채로 머리에 무거운 돌을 나르며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한다. 한겨울에 누에고치처럼 이불을 겹겹이 싼, 여전히 살아있을까 궁금한 노숙인들이 매일을 꾸역꾸역 살아나간다. 그저 생존하기 위해 이렇게 처절할 필요가 없는 내 삶에 감사하는 것으로 그치기엔 너무 가슴 아픈 광경들이다. 세상은 왜 이렇게 돌아갈까? 누군가는 남아도는 돈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며 비행기 티켓과 호텔을 예약하는데, 누군가는 아픈 아이를 병원에 보낼 돈도 없어 집에서 가슴만 태우고 있다. 누군가의 아이는 너무 많은 학원에 가는 것에 불평하는데, 누군가의 아이는 학교 갈 돈도 없어 생계에 뛰어든다.

이 또한 내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했던 질문이었다. 왜 세상은 이렇게 불공평할까? 어째서 누군가는 태어나자마자 갖은 고생을 하고 누군가는 노력하지 않아도 순탄한 삶을 살까?

이뿐만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타고난 재능을 이기지 못한다. 아무리 성형을 해도 타고난 외모는 크게 바꿀 수 없다. 특정 나라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전쟁과 기아와 인종차별에 시달린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가혹한 운명. 신은 어째서 이를 허락하셨을까?


현재의 삶만 보면 이런 질문은 매우 혼란스럽다. 원인과 결과의 연결고리가 없기 때문이다. 베다에서는 더 넓은 시야를 제공한다. 이 생에 타고난 몸과 환경은 정확히 전생에 했던 행위와 가지고 있던 욕망의 결과이다. 전생에 좋은 카르마를 많이 쌓았고 특정한 욕망이 있었다면 다음 생에 그에 걸맞은 가정환경과 재산, 능력, 외모를 타고 태어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신은 매우 공평하다. 사실 신은 우리의 모든 욕망을 실현해 준다. 그러나 욕망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값을 치러야 하는데, 은행에 잔고가 없다면 아무리 욕망이 강해도 성취할 수 없다. 그 잔고가 바로 카르마이다.


빼어난 외모와 재능에 집안 환경까지 좋은 사람을 부러워할 때 “그 사람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라는 농담이 있다. 사실 이 말은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나라를 구할 정도로 수많은 사람에게 이로운 일을 한 사람은 다음 생에 좋은 조건을 얻게 된다. 반대로 가난하고 외모나 지능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으며 복지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은 전생에 했던 행위에 따른 결과를 받은 것이다. 베다 문화에 친숙한 인도인들은 이 사실을 알기에 자신이 타고난 운명에 대해 크게 비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생의 불리한 출생을 전생의 업을 정화하는 기회로 여긴다.


기억하지도 못하는 전생의 대가로 만족스럽지 않은 몸과 환경을 받았다는 게 억울하게 느껴지는가? 사실 영적인 관점에서는 좋은 출생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물질적인 삶에 더 집착하게 하므로 오히려 진보에 불리한 경우가 많다. 궁극적으로 보았을 때는 좋은 출생이든 나쁜 출생이든, 나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은 내 영적인 발전을 위해 완벽하게 설계된 것이다. 물질적으로 좋은 출생을 얻은 자에게는 특정 욕망을 정화하는 환경이 주어진 것이고, 나쁜 출생은 물질적인 삶에 집착을 버리고 물질계 너머에 있는 실체에 눈을 뜨게 하는 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