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게 살면 정말 손해일까?

왜 착한 사람들은 고통받고 나쁜 사람들은 즐기며 살아갈까?

by 줄란

학창 시절은 약육강식이 횡행하는 동물의 왕국이 따로 없었다. 아이들은 보통 세 부류로 나눠졌다. 잘 나가는 얘들, 평범한 얘들, 왕따.

외모가 뛰어나거나, 싸움을 잘하거나, 집에 돈이 많거나, 머리가 좋으면 잘 나가는 얘들에 속했다. 이들의 마음에 안 들거나 몸이 약한 아이들은 무자비하게 왕따를 당했다. 왕따를 보호하는 아이들도 가차 없이 왕따의 대상이 되었기에 그 누구도 불의에 대항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선생님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이 경험은 세상의 이치를 일찍 깨닫게 해 주었다. 옳은 일을 하면 손해다. 성공하려면 외모를 가꾸고 몸을 키우고 공부 열심히 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어른은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세상은 약자에게 불리하게 돌아간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나이가 들면서 이전에 ‘잘 나가던’ 아이들이 더 이상 잘 나가지 않는 것을 보게 되었다. 반대로 왕따가 사업에 성공하고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았다. 정의의 편을 선 아이들도 결국에는 일이 잘 풀렸다. 카르마에 대해 인지하게 된 첫 경험이었다.

카르마는 무엇일까? 작용과 반작용, 내가 행한 만큼 되돌려 받는 자연의 법칙이다. 카르마는 사실 무서울 정도로 매우 정확하고 빈틈이 없다. 카르마를 잘 이해하면 세상의 수많은 모순들이 풀리기 시작한다. 자연재해, 인종차별, 빈부격차, 비행기 사고, 장애, 환생… (이 주제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풀어나갈 예정이다)

이 생만 보면 세상은 불공평한 일 투성이지만, 전생을 포함하는 큰 그림을 보면 카르마만큼 공평한 게 없다. 지금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은 과거에 내가 한 일의 결과이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 하지만 우리는 전생을 기억할 수 없기에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원인에 대해 무지하다. 예를 들어 전생에 남의 재산에 손해를 끼친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 대가로 지금 삶에서 사기를 당한 것에 대해 억울해한다.

전생의 카르마는 어떻게 작용할까? 우리가 하는 말, 행동, 생각은 모두 카르마의 씨앗이 된다. 즉, 선행(자비, 진실, 희생 등)은 좋은 카르마의 씨앗이 되고, 악행(폭력, 거짓, 이기적 욕망 충족 등)은 나쁜 카르마의 씨앗이 된다. 이 카르마의 씨앗은 당장 결과를 내지 않을 수도 있다. 마음과 미세한 몸(정신체)에 씨앗처럼 저장되어 적절한 때가 되면 환경·상황에 따라 그 업의 결과가 나타난다. 좋은 카르마는 건강, 부유함, 좋은 가족, 지적 능력, 행복 등으로 나타나고, 나쁜 카르마는 질병, 가난, 불행한 관계, 정신적 고통 등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결과가 꼭 지금 생에 오지 않고 다음 생을 거쳐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결과를 경험하면서 씨앗 하나가 소멸되지만, 동시에 우리는 또 새로운 행동을 하면서 다른 씨앗을 심는다. 이렇게 카르마의 사슬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카르마를 이해한 자는 이 모든 상황이 내 업보를 정화하기 위해 주어졌음을 인지하기에 인내심과 수용력이 높다. 또한 상황에 분투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순리대로 살아간다. 늘 내가 하는 행위의 결과를 의식하기에 좋은 행위를 하고자 한다.

카르마를 이해한 자는 착한 사람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불공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이전의 업이 정화되고 있다는 것을 본다. 반면 나쁜 사람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도 사실은 좋은 업이 소모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안다. 마찬가지로, 건강하다는 것은 좋은 카르마를 태우고 있다는 것이고, 병이 있는 것은 나쁜 카르마를 태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카르마를 이해한 자에게는 좋고 나쁨의 구분이 없다. 겉으로 좋아 보이는 일 이면에는 카르마적으로 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실 삶의 목적은 좋은 카르마를 쌓아서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좋은 업을 많이 쌓아 가장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다 한들 생로병사, 고통, 윤회에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의 진정한 목적은 삼사라samsara라고 하는 이 카르마의 굴레애서 벗어나는 것(해탈)이다. 그 방법이 바로 요가이며 그중에서도 박티 요가, 즉 절대자를 위해 행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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