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by 줄란

대학교 같은 과에 나보다 한 살 많은 현서라는 친구가 있었다. 현서는 예쁘고, 우아하고, 공부도 잘했다. 그리고 내 질문에 늘 매우 신선한 대답을 주었다. 시험기간에는 늘 현서와 붙어 다니며 같은 도서관 책상에서 공부하고 같이 점심을 먹으며 시험 주제와 일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서는 맛집이나 카페를 돌아다니며 텅 빈 대화를 하고, 만남의 끝에는 늘 시간과 돈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드는 친구들과 달랐다. 현서는 마음속에 켜켜이 쌓아둔 질문을 명쾌하게 해소해 주었다. 현서와 만나고 나면 늘 무언가를 배웠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 나는 평소와 같이 현서에게 물었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하필이면 이런 얼굴과 몸을 가지고, 이런 가족을 얻어서 한국이라는 곳에 태어나게 되었는지 궁금해. 어떻게 생각해?” 그 누구에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질문이었다. 현서에게는 분명 신선한 견해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현서는 조금 망설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 질문은 사춘기 때나 하는 거 아니야?”

현서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사람들은 늘 내 질문을 과소평가하고 무시했지만 현서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던 현서가 남들과 다를 바 없게 된 순간이었다. 이렇게 똑똑한 현서가 이런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다니!

이후로 나는 현서에게 질문을 아끼게 되었다. 공부나 표면적인 이야기만 하고 마음속 깊은 질문은 나누지 않았다. 왠지 물어보면 또 상처받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속에 질문들이 다시 쌓이게 되었다. 현서에게 물어보는 대신 도서관에서 전공과 상관없는 철학이나 불교에 관련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여전히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은 얻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은 뒤로하고 세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취업이 답을 주지 않을 거라는 건 확실했다. 그렇게 도착한 첫 목적지 호주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사원에 머물고 있었는데 책장에 한 책이 눈에 띄었다. 제목은 ⟪자아실현의 과학Science of Self-realization⟫이었다. ‘자아실현’에 ‘과학’이라니! 책 제목이 그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다. 책을 꺼내 들어 표지를 살펴보니 가슴이 더 두근거렸다. 오묘한 자태의 힌두교 신이 원자 기호 안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책을 펼치기도 전에 바로 이 책이 켜켜이 쌓인 질문들의 해답을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맞아떨어졌다.


자, 그렇다면 나는 과연 누구인가?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가족 안에서, 직장 내에서, 사회 안에서, 국가 안에서, 삶의 단계에 따라 수많은 정체성을 경험한다. 딸, 누나, 이모, 신입, 대표, 작가, 선생님, 고객, 주인, 한국인, 어린이, 청소년, 유부녀 등등… 이는 내가 반평생을 살며 겪어온 정체성들이다. 이러한 정체성은 일시적인 몸에 관련된 것들이기에 몸에 따라 변화하고 죽음을 맞이하면 사라진다. 그러므로 몸과 관한 정체성에 집착할수록 이것이 사라지거나 변하면 극심한 정체성 위기를 겪는다. 대표적인 예가 모델이다. 모델은 대체로 몸매, 외모, 젊음에 의존하는 직업인데 이것들은 매우 일시적이다. 그래서 상당수의 모델들은 화려한 삶과 달리 심리적으로 불안 상태에 있다고 한다. 이렇게 일시적인 외모와 신체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규정할수록 이를 잃으면 얻는 고통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한 때 잘 나가던 사업가나 정치인도 그 정체성에 집착하면 돈이나 직책을 잃었을 때 큰 상실감을 느낀다. 어머니로서 자신을 규정했던 사람은 자식들이 독립했을 때 상실감을 느낀다. 일시적인 자아를 자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을 잃으면 고통을 겪는다.


그렇다면 과연 바뀌지 않는 진정한 자아가 존재할까?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사실 모든 생명체가 태어남과 죽음이 없고 영원한 존재라고 한다. 단지 생명체가 입고 있는 몸만이 태어나고, 죽고, 몸을 바꿔 다시 태어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몸이 아닌 몸 안에 깃들어 있는 영혼이다. 영적인 수행은 몸과 관련된 정체성에서 벗어나 영적 정체성을 일깨우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영적 수행은 양파 껍질을 벗기는 것에 비유된다. 양파는 껍질을 벗길수록 더 하얗고 깨끗한 속살이 드러나듯이, 영적 수행을 하면 가짜 자아가 정화되고 진짜 자아인 영혼과 가까워진다. 가짜 자아는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착각하는’ 자아이다. 즉 일시적일 뿐인 이 몸과 이와 관련된 성별, 국적, 직함, 이름, 명성, 관계 등을 나라고 생각하고 이에 몰두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죽음과 함께 결국 사라지기에 부질없고 고통의 원인이 될 뿐이다. 우리의 참자아는 영혼이다. 영혼의 속성은 삿sat, 칫cit, 아난다ananda로 정의된다. 영혼은 영원하고,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기쁨으로 가득하다.


참자아인 영혼으로서 우리는 늘 행복을 좇는다. 이는 영혼의 천성이다. 반면 물질계에서 물질적인 것들을 통해 얻는 행복은 매우 일시적이고 동전의 양면처럼 늘 고통을 수반한다. 꿈에 그리던 차를 드디어 얻었는데 이 행복감은 길어도 몇 달을 넘지 않는다. 늘 새로운 차가 출시되고, 이 차는 곧 구형이 될 것이다. 혹 이 차가 훗날 갑작스러운 사고로 불구나 죽음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설령 별일 없이 만족스럽게 평생을 쓴다 한 들, 결국 이 몸을 떠날 때는 내가 아끼고 아끼던 이 차를 가져갈 수 없다.


물질적인 행복은 영적인 행복에 비하면 사막에서 극한의 갈증을 느낄 때 맛보는 물 한 방울에 비유된다. 이런 행복감은 극히 일시적이며 진정한 갈증을 해소해주지 못한다. 반면 영적인 행복은 대양처럼 가득하고 무한하다. 물질적인 행복을 좇는 상태는 물 밖에 나와있는 물고기와 같다. 이 물고기에게 아무리 좋은 먹이를 준다 한들, 물밖에 나와있는 한 진정한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진정한 영적 정체성을 자각하지 않는 한, 어떤 물질적인 즐거움도 진정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


진정한 나를 깨닫는 것은 참다운 행복에 직결된다. 진정한 나는 본디 영혼으로서 행복으로 가득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깨닫는 것은 필수적으로 신을 깨닫는 것을 동반한다. 영혼은 신의 파편이자 일부이기에, 이 신과의 관계를 빼놓고 영혼 혹은 에너지로서 내 자아를 인지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인 깨달음이다.


이전 08화환경 문제, 테러리즘, 전쟁의 근본 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