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이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by 줄란

바가바드 기타의 원전인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는 흥미로운 퀴즈가 등장한다. 염라대왕 야마라지가 유디스티라에게 목숨이 걸린 질문을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은?” 답은 마음이다. “참된 친구란?” 답은 어려움 속에서도 떠나지 않는 친구이다.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답은 절제와 자비이다.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것은?” 답은 탐욕이다. 이 중 가장 유명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사실은?” 답은 매일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는데도 자신에게는 죽음이 찾아오지 않을 거라고 믿는 것이다.


죽음은 부자에게도, 가난한 자에게도, 현명한 자에게도, 어리석은 자에게도, 선한 자에게도, 악한 자에게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꺼려하며 자신은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 현명한 투자자는 늘 미래의 다양한 가능성을 예측하며 투자한다. 하물며 죽음처럼 확실한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계획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100퍼센트 확실한 이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어리석은 투자자처럼 인생을 계획하고 시간을 투자한다.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곳에서 영원한 왕국을 세우고자 한다. 반면 카르마를 이해한 영적 수행가, 박티 요기는 미래를 내다보기에 죽음을 명상하고 대비한다.


죽음 이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베다 경전에 따르면 우리는 흙, 물, 불, 공기, 공(空)으로 이루어진 육체와 마음, 지성, 이고로 이루어진 정신체, 그리고 가장 순수하고 진정한 자아인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다. 죽음으로 육체가 끝나면 정신체가 영혼을 다음 몸으로 실어 나르는데, 이를 윤회라고 한다. 그러면 정신체는 어떻게 다음 육체로 나아갈까? 바가바드 기타 제8장 6절에 의하면 죽음의 순간에 기억하는 것이 다음 생의 몸을 결정한다고 한다. 만일 내 의식 상태가 식욕, 성욕, 수면욕, 방어욕 등 동물적인 욕망 중심이었다면 동물의 몸을 얻게 되고, 무지하고 둔감했다면 식물의 몸으로, 선하고 이타적이고 신성한 의식을 가졌다면 천상계로, 아직 이생에 미련이 있었다면 인간의 몸을 다시 얻게 된다. 그러므로 윤회는 벌이 아니라 내가 집착한 의식 상태가 나에게 맞는 몸을 자동으로 입히는 과정이다. 현재의 내 몸은 전생에 가졌던 욕망의 결과이고, 이 순간에도 이미 다음 생의 몸을 준비하고 있다.


이 말은 내키는 대로 살다가 죽을 때만 정신을 잘 차리면 된다는 말이 아니다. 현생에서 반복된 행동이 습관을 이루고, 이 습관은 성향으로 굳어지며, 이 성향은 특정 욕망을 발전시킨다. 죽는 순간에는 육체 기능이 정지하고 감각이 붕괴되는데, 이때 마음에서는 가장 강한 인상이 떠오른다. 이 의식 상태, 즉 욕망이 영혼을 다음 생의 몸으로 밀어낸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전생을 기억하지 못할까? 죽음과 출생이 매우 극심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베다 경전 ⟪스리마드 바가바탐⟫과 ⟪가루다 푸라나⟫에 의하면 영혼이 몸에서 떠날 때 프라나(생명기운)가 위로 끌어올려지며 전갈에 수백 번 물린 것보다 더 강한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출생은? 그 누구도 웃으면서 태어나는 아기를 본 적이 없다. 9개월 간 자궁 안에 갇혀 있는 상태도 매우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또한 전생의 트라우마, 관계, 원한 등을 모두 기억한다면 새로운 삶은 감당하기 불가능해질 것이다.


하지만 기억은 사라지더라도 여전히 전생의 성향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똑같은 교육을 받아도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은 분명 전생에서의 경험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 외에도 타고난 천성과 성격, 도덕적 감각, 고소공포증 등 비이상적인 두려움 등도 전생에서 이어진 것이다.


이를 아는 수행자는 의식 상태와 욕망에 매우 주의를 기울인다. 수행은 ‘내가 하고 있는 행위’뿐만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생각’도 포함한다. 그러므로 영적 수행이란 곧 자신의 욕망을 정화하는 과정이자 다음 생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좋은 카르마를 쌓아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행복을 누리는 게 삶의 목적일까? 다음 생에 천국으로 가는 것이 삶의 목적일까? 문제는 아무리 완벽한 사람이라도 물질계에서는 출생, 노화, 병,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서 천국에 가도 좋은 카르마가 소진되면 다시 하계로 내려와야 한다. 천국도 일시적인 물질계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삶의 목적은 고통 없이 행복하게 오래 사는 것도 아니고, 천국에 가는 것도 아니다. 바로 이 윤회를 끝내는 것이다. 영적 수행, 박티 요가는 이 윤회를 끝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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