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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꿀 May 06. 2018

디자이너의 순간 #2 : 맥북

모아온 월급의 첫 지름, 욕망의 순간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배우는 학생이던 시절부터 나도 가질 수 있다면...하는 장비가 한가지 있다. 


맥북. 


어떤 이들은 일찌감찌 알바를 시작하거나, 중고를 알아보거나 하는 방법으로 먼저 이 '맥북' 이라는 놈들을 금방금방 마련해 놓더라. 나는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한가지 알바를 꾸준히 하거나, 절충을 하여 중고를 구하거나 하진 않았다. 어느날 부모님께서 랩톱 컴퓨터를 사주신다더니, 하필 삼성 컴퓨터의 할인 행사를 발견하시고는 나를 설득시켜(...) 삼성 컴퓨터를 사주시긴 했다. 고가의 컴퓨터를 제대로 살 타이밍을 한번 놓치니, 맥북과는 정말 인연이 멀어지는가 싶었다. 


그러다 어느덧 취직을 하게되고, 정기적인 수입이 생겼다. 저축을 어느정도 할 수 있게 되었고, 돈을 모아 학생시절엔 생각도 못해보던 것들을 살 수 도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내 머리를 문득 스치는 것은 단 하나. 


맥북. 


맥북을 장만한 지금에서도 왜 그렇게 맥북에 목을 매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때의 집념하나는 대단했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그때의 나는 왜 맥북을 그렇게 원했던 걸까?


다니던 직장에서 한두달을 일해본 결과. 내가 주로 해야만 하는 업무의 성질을 알 수있었다. 그것들은 사실 내가 학부생 시절 그렇게 원하던 멋있고, 사회적으로 조명받을 만한 디자인들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회사의 제조품들의 상품성을 잘 드러내게 하기 위한 작업들이었고, 나 개인의 스타일이 많이 드러나기가 쉽지않은 작업이었다. 입사한지 몇달 채 지나지 않아, 이런 디자인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었나... 하는 허무함이 나를 감쌌다. 


어쩌면 그러한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맥북에 매달렸을지도 모른다. 



저것. 저 고사양의 맥북을 가지면. 나도 잘나가는 디자이너들 처럼 디자인 할 수 있을거야. 나도 창의적이고 멋있는 디자인 할 수 있을거야! 저것만 있다면...!



그렇다. 사실 구매 하기 전 부터 이런 생각을 했었다. 무의식의 깊은 곳까지 갈 필요도 없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해오고 있었다. 이제서야 고백한다. 


맥북을 사고나면, 굉장한 사양을 밑받침 삼아 멋진 개인 작업을 많이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그리고 맥북을 산지 3주가 지난 시점. 아직까지 뭐하나 제대로 내놓은 결과물은 없다. 물론 부모님은 이런 나를 보며 '그럼 그렇지'라며 웃으셨다. 


이번 지름을 통해 나를 되돌아보며, 과거에도 어떤 일정한 사이클이 있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렷을 적부터 곰곰히 되짚어보니...


어릴 때부터 갖고싶은 건 많았는데 누구나 그렇듯 가지고나면 항상 다른 것들을 원해왔던 듯 하다. 어렸을땐 정말 장난감이 너무 갖고 싶었다. TV에 나오는 로봇과 캐릭터들 전부 다 갖고 싶었다. 항상 욕심은 끝이 없고 갖고 싶은 것은 많았다. 최근엔 맨날 사던 중고책이 아닌 새 책을 20만원 어치 주문했었고, 그저께는 고민하다 기계식 키보드를 샀다. 어렸을 때부터 정말 갖고싶던게 많았다. 로봇 장난감, 인형... 좀 더 커서는 만화, 애니메이션, 패키지 게임. 게임을 할 수 없어서 더 좋은 컴퓨터를 갖기를 바랬고... 


어렸을 땐 그런 것들이 나의 삶을 결정하는 줄 알았다. 다 잊어버리고 그런 것들을 하는게 좋았다. 그 안에는 멋진 세계가 있었다. 그 때는 그런 줄 알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러한 욕망의 신기루 속에 갖혀있지 않았나 싶다. 


이런 것들을 되돌아보면, 지금 나에게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시간이 지나고 내가 변하면 그것들이 별 것도 아닌 것들이 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욕망하는 것들이 진심으로 내가 원하는 것일까?


그렇게 염원하다가도 순식간에 멀어지는 그 과정이 정말 생경하다. 그 시절 그 수많은 게임들은 나에게 너무나 찬란한 것이었고, 내가 영원히 살고 싶던 세계였다. 근데 지금은 마치 거짓말처럼... 만화는 아직까지 조금 좋아하지만, 게임은 거짓말처럼 하지 않게 되었다. 싫은 것은 아니지만... 흥미가 없는 수준이다. 그리고 이번에 지른 맥북 프로 또한 280만원이나 하는 거금의 워크스테이션 급의 랩톱이지만, 아직 제대로 된 작업물조차 아직 만들어보지 못했다. 어도비를 몇분동안 켜놓고 있었더라...?


그러다가 마지막에 드는 생각이. 내가 원하는 가장 큰 욕망, '뛰어난 디자이너'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가 되기 보다 '뛰어난 디자이너'가 되어서 많은 명성과 명예를 가지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은 아닐까? 싸늘하게 식어가는 맥북 프로 처럼 언젠가 내가 그렇게 원하던 이 디자인도 정말 딴세상 무언가처럼 취급할 때가 올 것인가. 


직장에서 하는 디자인은 돈을 벌기 위해서 해야하는 디자인이고.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은 조금 다르다. 어찌 되었든 1차적으로 맥북을 사기로 했던 나의 목표는 최대한 이뤄보려 한다. '남는 시간에 나의 디자인 하기'. 아직도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 키면 왓챠플레이 보느라 바쁘지만. 어떻게든 이뤄보련다. 말하는 대로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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