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약 3년 7개월 남짓 몸을 맡긴 회사를 떠났다. 그러고 보니 지금 시점에선 퇴사한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2018년 7월 입사하여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회사였고,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보이지 않는 터널 같았던 취업 준비기간을 거친 나에게 직장은 새로운 세계로 연결되는 통로였다. 경제적, 정서적인 독립을 이룰 수 있었고 한 몸 열심히 일해 받은 월급으로 원하는 물건을 사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여행하고 싶은 곳에 떠날 수 있었던 자유를 누렸다. 물론 회사의 월급을 받고 일하는 사람으로서, 그만큼 감당해야 할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공기업의 특성상 정년보장이라는 안정성과 정기적인 월급이 주는 안락함이 있었다. 대개 만족스러운 회사라 여길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회사 문을 박차고 나왔다.
누군가는 얘기한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었다.
"왜 그 좋은 직장을 그만두셨어요?"라고.
그럼 나는
"조직에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요."라고 대답한다.
누군가는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의 퇴사 이유를 한 문장으로 축약하면 가장 적절한 답이다. 한편으론, 지금이 아니면 퇴사하기 더 어려워질 것 같아서이기도 했다.
올해 초, 서른이 막 된 시점에 공기업을 나온 이유와 그간 회사생활의 기억들, 이직 준비, 그리고 이직한 지금의 회사생활에 대하여 차근차근 기록해보려 한다.
첫 입사 후, 2달 여에 걸친 신입사원 교육과 순환 근무를 마치고 부서 발령이 났다. 10명 남짓한 동기들 중 혼자 유일하게 본사가 아닌 현장 보상 사무실이었다.
당시 해당 부서의 인력 구성은 썩 좋지 않았는데 실무를 보지 않은지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연차 높은 과장님과 입사 1년 차 선배 1명, 계약직 직원 두 분을 보니 앞으로 부딪힐 미래가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그 외 다른 직원분들도 있었지만 그때는 스스로 힘든 부분만 생각을 해서였는지 어떤 위안이 되지는 못했다)
당시 내가 맡은 업무는 민원인 대상으로 금전을 지급하는 일과 대면 민원 업무가 주를 이루었다. 어떠한 권리를 가진 민원인에게 지급해야 하는 금전적 보상의 액수가 적지 않았기에 신입사원으로 느껴야 하는 부담감은 더 크게 느껴졌고 난생처음 들어보는 욕설이 사무실에서 오갈 정도로 민원 강도도 센 편이었다.
그래. 원하는 부서와 직무에 배치받지 못할 수도 있지. 정신줄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적응해보려 애쓰는 시간들이 몇 개월 간 계속되었다. 사실 몸과 마음이 항상 긴장되어 있었고 낯선 업무와 환경에서 업무적으로 실수를 한 날엔 한 없이 위축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사회초년생 때 생길 수 있는 실수고, 겪어가는 과정임에 분명하지만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크고 무겁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고 업무 경험이 늘어날수록 같은 일을 하더라도 좀 더 면역이 생기는 건 사실인 듯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일이 서툴고 낯선 건 처음이다 보니 다들 한 번쯤 겪는 어려움이라 하더라도 체계 없이 굴러가는 업무와 서로에게 일을 떠넘긴다거나 이제 막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어떤 부연설명 없이 툭. 무성의하게 업무를 던져준다거나 하는 일들을 매번 마주하며 회의감이 몰려왔다.
일하는 사이사이, '이건 아닌데. 아닌 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문득 들다가도
'어렵게 입사한 회사인데, 적어도 1년은 버텨보자.'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버텼다.
그렇게 동떨어진 어두운 섬 같았던 곳에서 1년 6개월을 근무하고 난 후, 본사로 인사발령이 났다.
그 시점에 대리 승진을 했고, 기획 부서에서 일하며 적성에 맞는 업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조금씩 일을 배워나가며 작은 성취감들을 느낄 수 있었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합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본사에 복귀하고 1년이 다 되어갈 무렵부터는 이전엔 보이지 않았던 문제들이 점차 보이기 시작했다.
업무에 임하는 직원들의 태도나 부서 간 갈등, 조직 차원의 고질적인 문제 상황들이 눈에 더 잘 보였고 조직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문제들은 어떤 조직에서나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개선의 가능성에 대한 부분은 나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옆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근무시간을 안락하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을까 골몰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 나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야근하며 일하고 있는지에 대한 허탈감과 회의감이 또 한 번 찾아왔다.
향후 10년, 20년 이 조직에서 일한다고 상상했을 때, 조직과 직원 개인의 성장에 있어서 한계가 명확하게 보였다.
마침 이 시점에, 나는 코로나19로 촉발된 시장의 변화와 시대의 변화를 직접 느끼고 있었고, 그 변화가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격변의 시대가 다가오면 모든 산업군에서 많은 기업들의 진입과 퇴출, 생성과 사장을 유도한다. 그 변화의 파도 속에서 개인의 삶은 촛불처럼 흔들리게 되며, 과연 안정적인 조직에 있는 것이 진짜 '안정성'을 보장해 줄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커다란 배를 타고 정착해 있는 것이 무조건 안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오히려 작은 통통배를 띄워 다가오는 파도에 올라타서 풍향과 풍속, 파도의 특성에 따라 배를 고치고 튼튼하게 키워나가는 것이 되려 안정적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러한 결론에 다다르자 지금의 회사를 떠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 탄 배를 버리고 내가 만들어 낼 작은 배 위에 올라타기로 했다.
물론 어느 면에서나 완전무결한 사람이 없듯, 완벽한 조직 또한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결정이 맞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퇴사한 지 1년이 다 되어가고 새로운 환경으로 이직한 지금, 그때의 결정이 후회가 되진 않는다는 것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입사 시점에 나에게 꼭 맞는 회사라고 생각했던 곳이 2022년 지금은 나라는 생김새를 억지로 틀에 맞춰 넣어 온전한 내 모양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하고 답답함을 느끼는 곳이 되어버린 것처럼 지금의 가치관도 분명 바뀔 수도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시니컬하게 조언했듯 "회사는 다 똑같아"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인생이라는 항해를 해 나가면서 건강한 방황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가치관과 방향성을 되묻고, 자유 의지로 스스로의 삶을 설계할 것이다. 나는 이제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또 다른 바다에서의 항해의 과정을 펼쳐보려 한다.
내 앞에 놓인 길을 그냥 가는 것과 잠깐 멈춰서 '어느 길로 갈까? 길 밖으로 가볼까?' 고민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지금은 막막하고 괴로울 수 있겠지만, 자발적 방황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꿈틀대는 상태를 의미한다. 잠깐의 멈춤이 오히려 멋진 여정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고민이 많아도 괜찮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니까.
- 정혜윤, '퇴사는 여행' 중 -
퇴사를 실행해 옮겨본 이들은 공감할 것이다.
퇴사를 고민할 시점에는 그만두면 시원할 것만 같지만
막상 퇴사를 할 땐 시원섭섭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하지만 결정에 후회는 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봐야 알겠지만 아마 앞으로도 후회되지는 않을 듯하다.
나이 30. 패기 있게 무엇이든 다 해볼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나이는 아니지만,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 퇴사라는 결정을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또 같은 고민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고 그때는 지금보다 더 시간이 흘렀을 것이며 지금보다 더 안정적인 생활에 익숙해져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갈증은 사그라들고 그저 현실에 순응하며 사는 어른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직에 몸담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임했고, 많은 부분들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기에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안전한 삶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은 위험을 무릅쓰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다.
- 헬렌 캘러(Helen Keller), 사회사업가 -
이것은 나의 짧은 퇴사의 변이다.
어디에선가 각자의 어려운 고민을 끌어안고 사는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가 작은 힘이 되고 조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