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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Feb 11. 2023

공공기관이 신의 직장이라고요?

공공기관이 신의 직장이라며 언론에서 떠들어 대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그 이유인즉슨 정년 보장이라는 안정성, 적당히 높은 연봉, 일과 삶의 균형(WBL) 이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그런데 어떤 공공기관도 이를 동시에 충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아는가? 


공공기관도 회사마다, 부서와 팀마다, 업무마다 업무 환경과 조건은 다르기 마련이며, 설령 저 조건들을 모두 만족하더라도 누군가는 안정성보다는 성장성에 더욱 가치를 둔다면 그 회사는 성장성이 중요한 사람에게는 신의 직장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신은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더 잘 맞는 회사와 조직의 환경, 업무는 존재한다. 그게 무엇인지 첫 회사 경험으로 알기 어렵고 이를 알아가는 과정이  지난하지만 말이다. 첫 직장을 떠나 새로운 조직에서 일을 하면서 이전 회사에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업무 방식, 직무, 조직 문화를 이해하고 경험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이직이라는 결정에 후회는 없다.


그럼 왜 공공기관이 신의 직장이 될 수 없는지에 대하여 그간의 경험을 이야기해 보겠다. 순전히 나의 경험인 만큼 모든 사람에게 일반화될 수는 없으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의견도 충분히 존중함을 미리 밝힌다. 






1. 경직된 조직 문화 


공공기관에 약 4년간 근무하면서 다양한 유형의 선배들을 많이 보아왔다. 몇몇 선배는 후배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 하고, 본보기가 되어 더 열심히 일한다. 그런 분들을 보면 더 열심히 배워 일하고, 따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하지만 대다수는 호봉과 직급이 높아지는 것과는 반대로 마땅히 본인이 해야 할 일을 후배에게 떠넘기거나 업무 시간에 주식창이나 유튜브를 보고 있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이럴 때 후배 입장에서는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들었다가도 어느 순간 일할 의욕이 꺾이고, 그토록 열심히 입사 시험을 준비한 시간들이 스쳐지나며 회의감이 든다. 그리고 미래의 나도 또는 내 동기도 그렇게 변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된다.


때로는 일을 잘하는 직원보다 선배예우를 잘하는 직원에 대한 평가가 더 좋을 때도 많다. 한 선배는 이를 내부영업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도 하더라. 조직이란 곳이 사람이 모여하는 일이다 보니 일정 부분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한다고 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일을 잘하고, 그만한 성과를 낸 직원들이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조직이 마찬가지겠지만 정말 일 잘하고 성실한 사람은 몇 명 안 된다. 공공기관은 일잘러에게 칭찬과 격려보다는 일을 더 많이 준다. 나머지는 월급루팡도 많다. 특히 신입직원 혹은 저연차 직원들은 서무 같은 잔업무가 많다. 난도가 어렵지 않으면서도 성과로 내세울 만한 일은 위에서 가로채 간다.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욕을 먹으면서 일은 많아지는 괴이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마 누구나 한 번쯤 퇴사 충동이 들었을 것이다.


같이 지내다 보면 조금 특이한 직원들도 있다. 근무 중에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지르는 분도 있었고, 낮술에 취해 사무실에서 주무시는 분도 계셨다. 업무 추진비라는 명목으로 외부 관계자와 굳이 안 해도 될 식사를 하고 들어와서는 후배에게 영수증을 건네며 "처리 좀 부탁해" 한 마디를 던진다. "니 일은 니가 하세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신입직원은 그냥 한다. 아직도 공공기관에는 이러한 군대식 조직문화가 많이 남아 있다. 더 무서운 게 뭔지 아는가. 이런 저연차 직원들이 직급이 올라갈수록 선배들과 점점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이다. 참 안타까운 부분이다. 



2. 일한 만큼 보상해 주지 않는다. (ft. 성과연봉제)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돈을 벌어오느냐, 국가 예산을 받아서 쓰느냐 하는 것이다. 민간 기업의 경우 기업의 존재 이유이자 설립 목적이 이윤 창출이 될 테지만 공공기관은 나라의 예산을 받아 사업을 운영한다. 그러다 보니 직원 평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기 어렵고, 직원별로 업무도 모두 제각각이다. 직원들의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어떤 직원은 몇 년간 현장 사무실에서 몸으로 뛰며 고생하는데 어떤 직원은 상대적으로 업무가 수월한 부서에서 같은 업무를 지속한다. 그럼에도 월급에는 차이가 없다. 물론 특정업무수당이라는 것이 있지만(경영평가, 회계, 지출, 보상, 공사 감독 등 일반적인 업무보다 업무 강도나 난이도가 높다고 판단되는 업무에 한해 일정액의 수당을 지급) 그간 쏟은 노력과 성과를 보상받을 만한 정도는 되지 못한다. 매년 직원 성과평가를 시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승진 대상자가 되지만 대개는 연차순으로 자신의 차례가 오면 승진이 되는, 돌려먹기와 같은 분위기다. 관습적으로 이러한 흐름이 이어져 오며 직원 동기부여는 점점 희미해져 간다. 


그렇다면 마땅히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보상 혹은 인정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 그런데 열심히 일한 직원보다 비위를 잘 맞추는 직원의 평가가 더 좋거나, 그저 연차가 높다고 평가를 더 잘 줘버리는 상황이 오면 난감하다. 그게 반복되면 화도 난다. 신입직원 때 모셨던 한 선배는 정말 책임감 있게 일하고 후배들의 실수도 본인이 감싸주려고 애쓰셨던 분인데, 일을 많이 할수록 감사 때 징계를 더 많이 받은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씁쓸했다. 



3. 전문성을 쌓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공공기관의 인사원칙은 순환보직이다. 회사마다, 직원마다 순환 보직의 주기는 다를 수 있으나 통상 2-3년 주기로 직무가 변경된다. 아주 일을 뛰어나게 잘해서 부서장이 그 직원을 계속 데려가려 하거나 대부분의 부서에서 직원을 받지 않으려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러하다. 다양한 직무를 돌아가며 일하다 보니 한 업무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기는 어렵다. 그래서 사실상 정년퇴직 이후의 선택지가 많지 않다. 이는 비단 공공기관 직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그렇단 얘기다. 


민간기업의 경우 자신의 직무에서 계속 일하다 보면 산업에 대한 이해와 업무 지식이 쌓이게 되고, 업계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도 형성하면서 커리어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부분이 생긴다. 연차가 쌓임에 따라 스페셜리스트나 제너럴리스트로서의 커리어 트랙을 정해 좀 더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요즘은 직무 전문성을 살려 사이드잡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퍼블리나 폴인 같은 커리어 플랫폼에 콘텐츠를 게재하거나 크몽이나 클래스 101에서 강의를 할 수도 있다. 블로그에 글을 꾸준히 써서 퍼스널 브랜딩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의지만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자신의 커리어를 확장해 나갈 수 있는 방법과 채널이 다양하다.


전문성에 대한 부분 또한 사실은 개인의 라이프스타일과 성향에 따라 확연히 다르다. 현실의 안정성과 워라밸이 중요한 사람은 공공기관이 만족스러울 수 있고, 미래의 성장 가능성과 커리어 발전에 더 큰 가치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민간기업이 더 잘 맞을 수 있다. 어떤 것이든 정답은 없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디에 있어야 더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지 현명하게 판단하여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저마다 모두 다르기에 어느 누구도 정답을 알려줄 수는 없다. 다만 자기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회사, 직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몸과 머리로 부딪혀 본다면 자신의 길을 더 빨리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조직에 있든 월급쟁이로 사는 삶은 결코 녹록지 않다. 날마다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며 삶의 희로애락을 느끼고 매일 마주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는다. 그 쌓인 시간만큼 또 성장한다. 


이 땅에서 직장인으로서 꿋꿋이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앞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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