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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May 29. 2023

난생처음 느껴보는 우울감

어느 날의 일기

지금껏 살면서 한 번도 우울증이라는 단어와 나를 매칭시켜 본 적이 없었다. 

학창 시절, 대학생활, 취업 준비, 첫 직장생활, 심지어 퇴사 이후 재 취업 준비를 할 때조차도 나는 항상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으며 가보고 싶거나 새롭게 경험해보고 싶은 일들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그 일들 중 80% 이상은 실제로 해봤을 정도로 실행력도 좋은 편이었다. 


그렇다. 나는 보통의 다른 사람들보다 삶에 대한 열정과 의욕이 많은 편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해보지 않은 난생처음 경험하는 일들 앞에서도 조금은 덜 겁내고 시도해 볼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위기를 맞더라도 힘든 시기들을 잘 버텨올 수 있었다. 스스로 회복탄력성이 좋은 편이라 생각했고 누군가가 나를 휘두르려고 하거나, 외부 요인으로 인해 이리저리 흔들릴 때에도 결국엔 다시 일어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단단한 내면의 뿌리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런 내 모습이 좋았으며 자부심 비슷한 어떤 것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원래 제자리로 돌아오는 힘을 일컫는 말로, 심리학에서는 주로 시련이나 고난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힘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조금 이상하다. 원래 가지고 있던 긍정적인 마인드와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 열정은 풀이 꺾였다. 아니, 하루하루의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스스로를 보며 흠칫 놀랐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평범하게 사는 것이 쉽지 않아'라고 하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 말 그대로 씻고, 먹고, 자고, 청소를 하고, 업무를 하는 일상생활에서 평소와 달리 정신적, 체력적인 에너지가 더 필요하게 됨을 인지했다. 주말에는 낮 12시가 넘어가고 오후 2-3시가 되어서야 겨우 몸을 일으켜 이불을 개키고 샤워를 했다. 원래 잠이 많은 편이긴 했지만 반나절을 다 보낼 정도로 많이 잔 적은 아플 때를 제외하고는 없었는데, 내가 왜 이러지?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힘겹게 몸을 일으켜도 뭔가를 하거나, 누군가를 만나거나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끝없는 무기력감과 쉬고 싶다. 가만히 있고 싶다는 생각이 내 온몸과 정신을 지배하는 것 같았다. 문득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평소 읽으려고 사 둔 책을 꺼내 몇 페이지를 넘겨 집중해 본다. 책을 읽는 속도나 몰입감이 예전과는 다르다. 


그렇게 책을 덮고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아까 겨우 세탁기를 돌려 널어놓은 빨랫감이 보인다. 건조대 위에 양쪽으로 팔을 걸치고 축 늘어진 맨투맨 두 개가 마치 지금 내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또 우울해졌다. 


벌써 창밖의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다. 그렇게 하루를 그저 그렇게 보내고 나면 오늘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또 무겁게 몸을 짓누른다. 아.. 내가 조금 이상하구나.






인터넷에 우울증을 검색해 보았다. 


우울증은 의욕 상실과 우울감으로 인해 인지 및 정신・신체적 증상이 나타나 일상 기능이 저하되는 증상이다. 

우울한 기분과 일상에 대한 흥미 및 관심 상실이 핵심 증상이다. 환자 대부분이 삶에 대한 에너지 상실을 호소하고 늘 하던 업무 완수에 어려움을 느끼며 새로운 일을 시작할 동기 부여를 받지 못한다. 



지금의 내가 느끼는 증상도 있었다. 내가 우울증인가..?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증상이라 당황스러웠다. 


우울증 진단 기준도 확인해 보았다. 9가지 증상 가운데 5가지 또는 그 이상이 2주 연속으로 지속되며 이전 기능 상태와 비교할 때 변화를 보이는 경우, 우울증일 수 있다.라고 설명이 적혀 있었다. 


근 2주간의 내 모습을 비춰보았을 때 5-6가지 정도가 해당되었다....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걸까. 내가 왜 이런 현상을 겪게 되었지? 또 기분이 괜찮을 때는 나쁘지 않은데! 지난 토요일에는 평소 듣고 싶었던 강연도 듣고 왔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도 계획하고 실천해보려 하는데? 라며 부인하는 마음이 들었다가도 이 증상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뭐부터 해야 할지 생각해 보며 무서워졌다.


이러한 증상이 왜 나타났을까 생각해 보니 최근 회사와 일, 맞춰 가는 듯 계속해서 어긋나는 상사와의 관계로 인해 지쳐버린 몸과 마음, 이로부터 쌓인 지속적인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일의 진척에도 차질이 생기고, 주변 사람들을 더 의식하게 되었으며 자신에 대한 효능감이랄까 자신감 같은 것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다시 좋아지려고, 잘해보려고 하는 마음으로 노력하고 행동해도 쉽사리 진전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쳇바퀴 같은 시간을 견디는 과정이 힘겨웠나 보다. 회사에서 새로운 일을 만들고, 성과를 내기 위해 일한다기 보다 최근 한 달은 그저 버틴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니까. 


내가 감당하고 이겨낼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인 케파를 넘어서 버린 느낌이다. 처음엔 작은 눈 뭉치로 시작된 마음의 짐이 녹아 없어지지는 않고 이제는 커다란 눈덩이가 되어 나를 밀어뜨리려고 하는 것 같달까. 어쩌면 그건 진짜 그만큼 커다란 눈덩이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눈뭉치 몇 개가 쌓여 발로 툭 차면 금세 바스러져 버릴 수 있는 크기일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이미 내 몸만 한 크기의 눈덩이를 눈사람 마냥 내 앞에 세워 버렸다. 온 힘을 다해 내 앞에 버티고 서 있는 눈사람을 쓰러뜨려버려야만 마치 그 길을 안전하게 지날 수 있는 것처럼.






그래도 나에겐 언제나 나를 응원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소중한 친구가 있으며, 아직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일들도 많지 않은가. 지금 이렇게 주저앉아 있기에는 시간이 아깝고, 스스로가 가진 본연의 에너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음의 근력을 다시 키워야겠다. 무기력한 나날이지만 그래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나를 믿는다. 든든하게 나를 응원하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또 힘을 내고, 울고, 웃으며 살아가리라 다짐한다. 기쁠 때건, 힘들 때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늘 항상 내 곁에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곁에 있었던 건 아니지만 나에게 힘과 의지가 되어준 사람들 덕분에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고, 또 일어설 수 있었다. 지금처럼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어제의 행복했던 일들과 추억, 사람들을 떠올리며 다시 힘을 싣는다.  


다음 달부터는 아침에 일어나 집 근처 공원에 산책을 가거나 최근에 꼭 한번 가봐야지 하고 찾아둔 산으로 등산을 가보려 한다.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고 맑은 공기를 마시고, 햇빛을 쬐는 것이 아무래도 좋겠다.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는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나의 1차 미션은 오늘을 잘 살아 내는 것이다.

그 하루하루들을 쌓아나가며 다시 내 삶을 그려갈 것이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 

쉽게 흔들리지 않는 주관을 가진 스스로를 대변해 주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쩌면 진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꺾이더라도 계속 삶을 이어나가는 끈기와 태도인 것 같다. 


땅 속 깊숙이 단단한 뿌리를 다시 내려보자.

비와 바람이 불어닥치고 누군가가 짓밟는다 하더라도

어느샌가 무럭무럭 자라 그늘을 만들어 주는 커다란 나무가 되고 싶다.


아니다, 나무가 되려면 일단 먼저 물을 듬뿍 머금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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