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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Jul 06. 2023

두 번째 퇴사, 나를 갉아먹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자발적 백수의 퇴사로그 #1

2023년 5월 31일. 기어이 인생에 두 번째 퇴사를 했다. 


두 번째 회사에 입사한 지 8개월 차에 퇴사를 감행하는 것은 내 예상 시나리오에 없는 일이었다. 회사는 안정보다는 성장을, 회사 내에서 조직의 체계나 업무의 급격한 변화가 매 순간 일어나는 스타트업이었다. 공기업에서의 근무와 달리 나는 스타트업이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불안정한 조직이라는 것을 표면적으로는 인지하고 있었으나 그 정도나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파장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겪어보지 않았으니 예측하지 못했다는 게 더 맞는 말일지도.


그럼에도 당시에는 커리어에 대한 목표가 명확했기에, 어떤 문제들에 부딪히거나 부정적인 상황이 오더라도 잘 극복해 나가야지 하는 각오로 입사했고 적어도 수년간은 근무하지 않을까 했었다. 이곳에서 실력 있는, 좋은 동료들에게 배우고 함께 성장해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 나가는 것이 일차적 목표였다.


하지만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더니 내 당찬 계획은 입사 8개월 만에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한 번이라도 퇴사를 해 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퇴사를 마음먹기까지 어떤 한 가지 이유만으로 쉽게 퇴사를 결정하진 않는다. 나 또한 감정적인 충동에 의해서라거나 일이 너무 힘들어서,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커서 등등 특정한 한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니라 여러 복합적인 이유들로 인해 두 번째 퇴사 카드를 내밀고 말았다.


결정적인 이유는 나 스스로의 몸과 마음에서 마치 빨간등이 켜지는 것처럼 위험 신호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우선은 나 자신을 돌보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직할 곳을 마련해두지 않고 퇴사를 감행했다. 다음 달 월세와 고정 지출 등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할 것이며,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에 대한 명확한 방향성을 정하지 못한 채 팀장님과 회사 동료들에게 퇴사 통보를 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선택으로 인생을 만들어 가는 거라며 내 의견을 온전히 존중해주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여러 현실적인 이유와 함께 팀 이동이라는 당근을 동시에 내밀며 설득을 시도했다.(내가 덥석 물길 기대해서가 맞았을까) 아, 순간 내가 현실을 모르고 너무 성급한 결정을 내린 건가. 그렇게 약 2주간 재고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2주라는 짧은 시간은 또 다시 버티다시피 흘러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결정은 변함이 없었다. 조직의 자그마한 변화에도 다시 그 속에 나를 욱여넣어 새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 도저히 상상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대부분의 회사 동료들은 이러한 나의 선택을 갑작스럽게 느꼈으며 당황해 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나는 회사에서 나의 기분과 감정선을 크게 표하지 않는 편이고 업무적인 공간에서 감정적인 대응은 프로답지 못하다는 생각을 은연 중에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과연 그게 스스로에게 또는 주변인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나의 퇴사 소식에 아쉬움을 표현하는 동료들도 종종 있었다. 이제서야 그들에게 내 선택에 대한 나름의 이유를 설명했고 이런 나에게 이해와 응원을 해주는 동료들에게 고마웠다. 어딜 가나 사람 덕분에 울고 웃는다는 말이 공감되는 또 하나의 순간이었다.  


사실 버티려면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1~2개월 더 근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과 지금의 상태로 계속 회사에 다니는 것은 나 스스로를 갉아먹는 일인 것과 동시에 업무에 쉽사리 집중하지 못하는 나로 인해 다른 동료들과 회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너무나 스스로를 힘들게 했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나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적인 문제, 커리어 단절에 대한 불안감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눈앞에서 아른거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서 처음 느껴보는 무서운 감정이었다. 그동안 내가 지나온 시간들에서도 결코 가시밭길은 아니었지만 잡초와 풀이 무성한 숲길을 이리저리 헤쳐온 느낌이었는데, 그 순간들에서도 단 한 번도 들지 않았던 생각이었다. 나 자신이 흔들린다는 느낌은 그 자체로 공포였고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이곳에서 남은 시간 전쟁을 견디고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면 그곳에서는 지금 느끼는 무수한 회의와 좌절, 분노와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나의 능력을 활용하여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일하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가치를 생산해 내는 일을 하는 낭만적인 직업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만의 망상일까?


혹자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으며 밥벌이를 하고 직장생활은 다 비슷하고, 힘들지 않은 일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버티며 살아가는 거라고.


역경을 피해 달아난 곳에 낙원이란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회생활 5년 차인 나 또한 이 말에 백번 공감하는 바다. 하지만 누구나 이야기할 수 있는 일반론적인 생각과 관습이 항상 모두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쓴소리로 각성시키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

좌절에 젖어 고개를 들기 힘든 사람이 그 메시지 넘어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

좌절에 젖었다면 젖은 그대로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

인정은 내가 결코 못난이는 아니었구나. 잠시 길을 잘못 들었을 뿐이구나.

확인하는 과정의 시작이다. 


나의 가슴과 직관을 믿어보자!

인생은 한 번이고, 매 순간의 선택들이 모여 인생이 된다.

스스로의 선택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자.


퇴사를 마음먹고 실행하기까지의 과정에서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기록해보려 한다. 자발적 백수의 퇴사로그랄까.


현재도 계속해서 적성과 진로, 앞으로 직업인으로서의 삶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고 어느 정도 방향성은 잡혀 가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남은 생에서 먹고사니즘에 대한 고민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일과 직업, 인간관계는 우리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들이다. 그 속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도 있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즐거움을 얻고 한편으론 적잖은 고통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어찌 됐건 온전히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영위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 또한 성장과 발전의 과정이리라 생각해 보려 한다. 혹여나 어딘가에서 나와 같은 고민과 불안으로 밤잠을 설치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힘과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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