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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Aug 22. 2023

핸드폰 없는 3시간, 이렇게 힘든 거였어?

부제) 자청의 욕망의북카페 방문기

근래에 서점에 한 번이라도 방문한 사람이라면 한동안 자청의 <역행자>가 자기계발서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었다는 것을 아마도 알고 것이다. 화제가 되고 있을 당시에는 읽지 않았었는데, 계속 눈에 밟혀 최근에 결국 읽게 되었다. 꽤 오랜 시간 화제가 되는 데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고.


예전엔 이런 류의 자기계발서를 밑줄 그어가며 읽었던 때가 있었다. 한창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고, 뭔가를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던 때였다. 하지만 이젠 소위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썼다는 자기계발서에 회의적인 입장이 돼버렸다. 정말 성공한 사람들이 '이렇게 하면 됩니다'라며 실천한 것처럼 하면 누구나 성공할 할 수 있을까. 꼭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누구나가 꿈꾸는 성공을 위해서는 꾸준함과 노력은 기본이 되어야 하되, 모든 일에는 우연과 운이 크게 작용한다. 외모나 성격, 환경, 무언가 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솟아나는 것조차도.


<역행자>의 저자인 자청은 이 부분을 인정하고 있다. '자유 의지는 없다.', '인간은 그저 생물학적 기계에 불과하다'라고 한다. 나 또한 반박할 수 없는 점이라 생각하기에, 이 책에서 말하는 22전략이나 완전한 자유를 얻는 7단계 모델을 실행한다면 분명 인생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할 것이라는 점에 공감했다.


*22전략 : 2년간, 매일 2시간씩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7단계 모델 : 돈, 시간, 운명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는 역행자의 7단계 인생 공략집


이미 무언가를 이뤄낸 사람이 얘기하는 자기계발서 특유의 '너도 할 수 있어'류의 내용일 거라는 지레짐작에 큰 기대 없이 읽은 책이었지만, 솔직하게 인간의 비합리성과 불완전함에 대해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해 주어 오히려 좋았다.


책을 읽으며 저자인 자청이 북카페를 운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남역 근처에 있는 <욕망의북카페>라는 곳이었다. 평소 도심의 숨어있는 북카페나 독립서점을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그것도 내가 가장 많이 오갔을 강남역 주변에 있었다니. 가까운 곳에 방앗간을 두고 맛집이나 바만 찾아다닌 스스로가 머쓱해졌다.


오늘 오전 삼성역 근처에서 일정이 있었고 때마침 강남역과 가까운 거리였다. 일정이 끝나자마자 <욕망의북카페>로 향했다. 평소 가보고 싶은 곳이 많진 않은데,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 한 두 개씩 생기면 바로 가보곤 하는 나는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지도에 목적지를 찍었다.



자청이 운영한다는 것 외에 북 카페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방문을 했다. 가서 보니 북 카페에 입장할 때 반드시 핸드폰을 반납해야 했다. e-book과 메모를 위한 한태블릿 사용은 가능하다고 안내되어 있었다. 아마 온전히 독서에 집중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북카페 이용 방법은 다음과 같다.


키오스크로 이용권을 구매한 후, 핸드폰은 무음으로 설정한다. 포스트잇에 '이름'을 작성하여 핸드폰에 부착한다. 수납함에 핸드폰을 보관하고 보관 번호를 확인한다. 핸드폰을 제출하면 중간에 가져갈 수 없으며 나갈 때 사용할 수 있다.


평소 핸드폰 없는 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던 나는 보관함에 핸드폰을 넣는 순간, 왠지 모를 허전함이 느껴졌다. 분명 핸드폰이 있을 때는 핸드폰을 자주 사용하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손에서 떨어지자마자 왜 허전한 걸까.   

나의 평소 나의 주된 사용 용도는 알람, 시간 확인, 카메라, 카톡, 전화, 지도, 검색 정도이며 하루에 많은 시간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느껴진 나의 감정에 흠칫 놀랐다.


에이, 아니다. 나는 오늘 평화롭고 조용하게, 온전히 책에 집중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책장엔 저자가 쓴 책부터 최근에 읽어보고 싶었던 책, 새로 나온 책들이 가득 꽂혀있지 않은가. 나는 단숨에 읽고 싶은 2권의 책을 골랐고 널찍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평일 낮 시간임에도 사람들로 가득 차 남은 자리가 1~2자리밖에 없었다. 저마다 책을 읽거나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평일에도 갓생 사는 현대인의 모습이라면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폈다. 최근 읽고 싶었던 책들 중 하나였는데 정신 의학자인 빅터 프랭클이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겪은 참혹한 고통을 건조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쓴 에세이다. 책에 몰입한 지 20분 정도가 지났을까. 나는 문득 시간을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찾았다. 아, 지금 나에겐 핸드폰이 없지. 혹시나 시계가 있을까 싶어 고개를 드니 카페 내 위쪽 벽에 시계가 걸려 있었다. 내가 앉은 테이블의 우측 벽에도 커다란 아날로그 시계가 있었다. 핸드폰을 제출하는 대신, 편하게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시계를 둔 것 같았다.


그리고는 다시 책에 집중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수감된 수용자들의 현실이 생생하게 그려지면서 몰입할 수 있었다. 책을 읽다 보니 당시 독일의 역사적 배경을 찾아보고 싶었다. 아, 네이버 검색하고 싶다. 책을 읽다 생소한 단어를 발견하거나 지금처럼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바로 검색을 하곤 했던 나는 이렇게 또 금방 핸드폰이 간절해졌다. 책 먼저 읽고 이따가 찾아보면 될 것을. 내가 이렇게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었던가.


살짝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은 전부 조금의 불편함도 느껴지지 않는 듯 저마다 열심히 책을 읽고 있거나 태블릿으로 일을 하는 사람도 보였다. 옆에 있던 커피를 한 모금하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번 몰입하기 시작하니 속도감 있게 책이 읽혔다. 그래, 이 느낌이지. 어떤 일에 몰입하는 느낌. 몰입 상태에 빠지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잘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에 도달하는 시점이 오는데 이 느낌이 꽤 좋다. 꼭 해내야만 하는 일을 할 때나 좋아하는 공부를 할 때, 지금처럼 책을 읽을 때 종종 이 '몰입의 상태'를 느낄 수 있는데 마치 나의 100% 효율을 발휘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한창 몰입이 안 깨진다 했더니 문득, 카톡이 확인하고 싶어진다. 아니, 연락 올 데도 없는데 왜 확인하고 싶어지는 거지. 청개구리 심보도 아니고 눈앞에 없으니 더 그런 마음이 든달까. 분명 평소에는 카메라나 지도 어플, 꼭 필요한 연락이 아니면 잘 보지도 않는 핸드폰인데..


아, 난 핸드폰 없이는 3시간도 힘겨운 사람이구나. 평소의 나를 떠올려 보니 어딜 가든 핸드폰 챙기기가 먼저고 일이다. 집 밖에 나가서 핸드폰이 안 보이면 당황스럽고 불안하다.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것이어서 핸드폰인지 하루 24시간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저녁 약속이 있어 카페에 들어간 지 3시간이 다 되어갈 때쯤 핸드폰을 돌려받고 카페 3층 루프탑에 올라갔다.

루프탑 의자에 앉아 야외 전경을 바라보았다. 평온했다. 게다가 핸드폰을 손에 쥐자 왜인지 안정감이 느껴졌다. 디지털 디톡스란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나.



나는 스크린 타임에서 지난주 일일 평균 이용시간을 확인했다. 4시간 52분. 하루에 이렇게 많은 시간 핸드폰을 했다니. 유튜브 이용 시간이 2시간 20분 정도였다. 이동 시간에 주로 유튜브 뮤직으로 음악을 듣긴 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핸드폰을 하는 데 쓰고 있었다.






핸드폰 없이 살 수 있을까. 삶의 많은 부분이 저장되어 있는 물건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한결같이 핸드폰을 보고 있고 밥을 먹을 때도 핸드폰을 놓지 못한다.

어디서 급한 전화가 올 일도 연락할 사람도 많지 않은데도 그렇다.

기사도 읽고, 구글과 네이버 검색을 하고, 유튜브도 보고, SNS도 하고. 핸드폰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다. 한번 빠지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습관적으로 확인하게 될 때도 있다.

핸드폰 없이는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이용 시간을 바로 줄이기보다 오늘처럼 몇 시간이라도 핸드폰 없이 살아보면 어떨까.

무언가에 집중할 때만이라도 핸드폰을 보지 않는 것이다.


목표를 정했다. 하루에 2시간, 내 핸드폰은 OFF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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