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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Aug 26. 2023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명제의 진실

세상에 100%라는 건 없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것 아니다."


사람의 습관이나 성격, 성향 등이 쉽게 변하지 않음을 표현할 때 통상적으로 쓰는 말이다. 다소 체념한 듯한, 조금은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이 말은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자신이 기억하기 용이한 이미지로 만들어버림과 동시에 이젠 사람을 판단하는 하나의 명제처럼 쓰이게 되어 버린 것 같다.


고백하자면 나 또한 이 명제에 동의하는 입장이(었)다. 그 이유는 꽤나 많이 댈 수 있다. 먼저, 나 스스로부터가 내가 편하기 위해 나 자신을 위해서, 본성을 거슬러 변화를 위한 노력에 많은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인간은 누구를 위해서(그게 스스로를 위해서일지라도) 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타인의 강요와 훈계로 인해 사람은 변하기가 더욱 어렵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깨닫고 변하겠다고 결심해야 변할 수 있다. 결심했다고 그냥 변하는 것도 아니다. 뼈를 깎을 만큼 최선의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두 번째 이유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경험으로 체득한 결론이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가족, 친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과 함께 돕고, 의지하고, 다투기도 하며 살아간다. 예전 중,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을 회상하면 성격이나 행동의 특징적인 것이 한두 개씩 남아 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밥 먹고 수다를 떨다 보면 어렸을 때 느꼈던 그 친구의 습관, 태도, 생각이 시간과 장소만 옮겨졌을 뿐 현재에도 그대로 재생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특징적으로 남은 몇 안 되는 기억의 흔적들이 내 앞에서 그대로 재현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예전 추억이 떠올라 웃기기도 하다. 동시에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데에 타당한 근거를 더할 수 있었다.


마지막 이유는 두 번째와 비슷한 맥락으로, 누군가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경험의 실패 때문이다. 대개 그 누군가는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연애 상대에게 애정과 사랑이 커지는 만큼, 그 상대방에게서도 내가 주는 사랑의 일정 부분을 받고자 하는 보상 심리가 생긴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변화할 것을 바라게 된다. 겉으로는 그 사람을 위해서 변화를 요구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나를 위해서 그를 변화시키려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 노력은 실패했다. 잠깐 변화하는 듯 싶더니 조금씩 시간이 지나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곤 했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내 입장에서도 할 말이 없는 게 상대방도 마찬가지로 나에게 어떠한 변화와 노력을 요구했을 때, 변화했느냐? 하면 나 또한 그렇지 못했다. 그가 하는 말을 분명 이해했고 노력하겠다고 이야기했지만, 돌아서면 또 예전의 나로 돌아와 같은 말과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품어주기에는 이기적이었고, 방법이 서툴렀으며, 미성숙했다.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그렇게 각자가 원하는 퍼즐 모양 안에 상대의 퍼즐 조각을 만드는 것이 사랑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그러한 시간들을 보내고 나니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누군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변화시켜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닌, 서로가 가진 성격과 성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성숙한 사랑의 태도라는 것이다. 사람의 성향과 성격이 나와 다르고, 모든 것이 내 마음에 들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 자체를 존중하고 존중받으며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사랑을 나누는 바람직한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쨌거나 나는 위와 같은 이유들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명제의 '참'을 주장하는 사람 중 하나였던 것이다.






한동안 이러한 통념에, 나의 생각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명제가 완전한 '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최근에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찌는 듯한 더위가 무색하게 한바탕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날 저녁, 나는 친구 J와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우린 폭우 따위 문제 되지 않는다는 듯, 저녁으로 소고기대패등심과 볶음밥을 먹었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포장했다. (비와 맛있는 저녁은 상관관계가 없잖은가..)


신나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사람은 바뀔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당연히) '사람은 바뀌기 어렵다'라고 했고, 친구 J는 '사람은 바뀔 수 있다'라는 쪽이었다. 친구의 확신에 찬 말에 나는 내심 놀랐다. 경험적으로 내가 얻은 결론에 큰 의심을 하지 않은 채, 당연한 명제처럼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넌 정말 사람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럼.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많이 바뀌었거든.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바뀐 사람이 많아."

"아 정말?.. 맞아 넌 많이 옆에서 봐도 많이 바뀐 게 느껴져. 너무 좋은 방향으로.

너 주변 사람들도 많단 말이야?"

"응. 나는 예전에 했던 실수들이나 힘들게 보낸 시간들 덕분에 많이 바뀌었지.

훨씬 단단해졌고,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어. 앞으로도 잘 될 거란 확신? 같은 것도 있고.

내 주변 사람들 중에서도 일적으로나, 성격적으로도 많이 성장하고 바뀐 사람들 많거든."


친구 J의 말에 나는 순간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나의 짧은 경험에서 얻은 결과라는 이유로, 사회적인 통념이기 때문에 별다른 깊은 생각 없이 믿게 된 명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구나. 멋있다. 나는 사람은 바뀔 수 없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100%는 아닐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당연하지. 나는 사람에게 단 몇 %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포기하지 않는 편이거든.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이 바뀔 수 있으면 나는 내 노력과 에너지를 쓰고 싶어. 그리고 물론 사람이 변한다는 건 어렵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거든."


친구의 마지막 말을 듣고선, 나는 내 생각이 짧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100%가 어디 있겠는가.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스스로의 변화를 위해 혹은 다른 사람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노력으로 인해 언젠가 그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를 이루어 내 훨씬 발전된 모습으로 더 생산적인 인생을 살아나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나는 사람에 대한 판단에 드는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 혹은 내가 살아온 시간들의 경험에 의한 맹목적인 믿음에 의해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해 왔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고', '내가 경험적으로 알게 된 건데, 내 판단이 맞을 거야'라는 마치 꼰대 같은 오만한 생각으로. 이러한 위험한 생각이 사람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이나 선입견이 생길 수 있다는 오류는 의심없이 배제한 채로.


어떤 사람에게 쉽게 편견을 갖지 않고, 수용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로 사람을 대하는 친구 J를 보면서 큰 장점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자기 자신도 잘 모를 때가 많은데 내가 뭐라고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겠는가. 누군가가 바뀔 수 있다, 없다는 명제로 뭔가를 깨달은 양 이야기하는 것도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명제는 어떨까.

참일까, 거짓일까.


만약, 사람이 변한다면 어느 정도까지 변해야 그 사람은 변했다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

또 다른 생각과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습관의 힘>이라는 책에서는 개인을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사회까지 변화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직 책을 읽진 않았는데, 관련 내용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아 읽어볼 생각이다.)

<습관의 힘>에서는 "아무리 복잡한 습관도 변할 수 있다."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습관을 바꿀 수 있다고 깨닫는 순간부터 우리는 언제라도 습관을 바꿀 수 있고, 그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라는 문장으로 우리 삶에 대한 책임은 우리에게 있음을 밝힌다.


이 인용구를 읽고 나니 어떤 사람의 단면만을 보고, 혹은 짧은 내 경험과 불완전한 인지 능력에 근거하여 섣부르게 누군가를 판단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조금 부끄러워졌다.


결론적으로 나는, '사람은 바뀔 수 있다.'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뀌길 원하는 사람이 결심하고, 바꿀 행동과 그 신호를 알아내고 대안을 찾으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바뀌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던 말이 "사람 쉽게 안 바뀐다. 사람 고쳐 쓰는 것 아니다."라는 말로 오역되어 통상적으로 쓰인 게 아닐까.


스스로가 바뀌기를 원하고 있고 그 변화를 통해 삶을 더욱 긍정적인 방향성으로 이끌어 나가고, 우상향 곡선으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그 누구도 '사람은 바뀔 수 없다'라고 단언할 수 없을 것이다.


조금씩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작은 변화를 만들어 보자. 성숙한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의 출발선에 있는 느낌이다. 누가 뭐래도 변화는 나부터 먼저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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