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진정한 친구란?
종종 습관적으로 카카오톡 친구들의 목록을 아래로 주욱 훑어내려 본다. 추억 가득한 대학 동기들, 한없이 익숙하고도 편안한 친구, 동아리 선후배들, 처음으로 혼자 간 해외여행에서 처음 만나 함께 여행한 언니, 필리핀 해외봉사를 떠났을 때 우리 팀원들, 지난 직장 동료들, 생각만으로 그리움이 물씬 느껴지는 사람, 중고등학교 시절 친했지만 성인이 되고서부턴 자연스레 연락이 끊긴 친구, 알듯 말 듯 낯설기도 친숙하기도 한 사람, 언제 어떻게 친구 추가를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람.. 네모난 작은 화면 속에 펼쳐지는 수많은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살펴보고 있노라면 내가 맺은 인연들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카카오톡 친구 수는 400명이 넘는데 정작 연락하는 사람은 십 분의 일도 되지 않는 것 같다. 성향상 평소 먼저 연락을 잘하지 않는 편이라(항상 연락해야지라고 다짐하지만 매번 실패하고 만다..) 거의 연락하는 사람들하고만 연락한다. 대부분은 기억 저 너머의 누군가일 뿐이며 서서히 아무런 감정도 없이 잊히고 있는 존재들이다. 막 대학교에 입학한 시점, 처음 스마트폰을 샀을 때 카카오톡을 깔고 설레는 맘으로 친구의 전화번호를 저장하던 순간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때는 한 명 두 명 친구의 번호를 저장하면서 인연을 고이 간직하고 소중히 이어가고 싶은 정성스러운 마음도 함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의 의미는 어느새 퇴색해 버리고 그동안의 수많은 인연들은 오래된 수첩처럼 켜켜이 쌓여 방대한 이름 사전이 되어 버렸다. 물론 지금도 새로 만난 인연들은 끊임없이 추가되지만 예전과 같은 설렘이나 따스함은 이제 미지근함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도 아쉽거나 씁쓸하다기보다는 큰 감정의 동요 없이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 자신을 인지했을 때가 오히려 더 웃픈 순간이었다.
내게 카카오톡 친구는 무슨 의미일까? 나는 얼마만큼의 인연들과 진실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스쳐 지나가려고 그토록 노력했음에도 끝내 더 처절히 아픈 후에야 흘려보낸 인연에게서 배운 것도 있고, 귀한 인연을 놓쳐버린 실수로부터 깨달은 것도 있고, 시간과 정성을 조금만 더 썼다면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인연도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 과정이 어떠했든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소중한 인연이었고, 그 시간들은 애틋한 추억이 되었다. 앞으로도 스쳐 지나갈 수많은 인연이 있을 것이고, 생각만으로도 뭉클하고 마음 따스해져 놓지 말아야 할 인연도 있을 것이다. 어떤 인연이든 나는 누군가를 마주하는 순간만큼은 그 상대에게 진실하려고 한다. 상처받을까봐, 그 상대는 나에게 진실되지 않을까봐 진심을 다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 스스로에게는 진심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보다 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다. 적어도 겉으로 표현하고 드러나는 것보다는.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던 올여름 어느 주말, 나는 친구와 난지한강공원에서 열린 뮤직 페스티벌에 갔다. 그 더운 날 넓은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햇볕을 가리기 위해 우산 아래서 공연을 관람해야 했는데, 잔디밭 전체가 사람들로 가득 찼었다. 정말 오랜만에 야외 페스티벌에 간 거라 터질 것 같은 음악 소리와 화창한 날씨, 그 속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있자니 더위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저 신나기만 했다. 한창 공연을 관람하고 있는데 나와 친구의 앞 쪽에 자리를 잡은, 우리 또래로 보이는 친구 두 명이서 나누는 이야기가 들렸다.
"사람 좋아. 근데 사람 싫어."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그 뒤로 다른 친구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 뒤의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저 짧은 두 마디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의미가 담긴 말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리를 좋아해서 꽤 자주 새로운 모임이나 커뮤니티에 참여하곤 했다. (나는 조금 내향적인 성향임에도) 그곳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하는 사람 자체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아마 그랬기 때문에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크고 작은 도움을 받았고 또 많이 성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을 나눴던 사람에게 실망을 하기도 했고,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기도 했으며, 큰 사건이나 아무런 이유 없이 자꾸만 나와 부딪히거나 어긋나는 사람과 마주해야 하는 시간을 보내야 하기도 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 예전보다 사람에 대한 기대가 점점 낮아지는 것을 느꼈다. 기대치가 낮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실망할 일도 많지 않기에 예전보다 감정의 소모가 적어진 것은 분명 확실하다. 그런데 이게 과연 긍정적인 신호인지는 모르겠다. 누군가로 인해 아파하거나,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얇은 막을 씌운 느낌이랄까. 가끔은 예전처럼 그저 산뜻하게 '나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해' 까지만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 내게 '진정한 친구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아래의 글귀가 내 생각을 대변해 준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친구건 연인이건 지인이건, 누가 내게 어떤 사람인가는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내 기분을 보면 알 수 있다. 누가 날 더 허탈하고, 씁쓸하고, 외롭게 하는지, 누가 날 진심으로 충만하게 해서 만남의 여운이 며칠을 가게 만드는지,
_이석원 산문집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中 알게 모르게
비로소 헤어지고 나서야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별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그 여운이 길어 나를 진심으로 '충만하게' 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진심으로 나를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였는지.
오늘 저녁, 용기 내서 안부 연락을 보내면 놓치고 있었던 인연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카카오톡을 훑어보는 행위가 우연이라면, 인연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은 멋쩍은 마음을 누르고 전송 버튼을 누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