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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Sep 09. 2023

전국의 기업, 관공서의 급식소는 몇 개일까?

스타트업 근무일지 #3

새로 입사한 푸드테크 스타트업에서 일한 지 2주가 넘었다. 이곳에서 내가 하는 업무는 B2B 서비스 운영과 식약처와 진행하는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일이다. 업무와 회사 분위기, 사람들에 적응이 될 즈음에 우리 팀의 리드로부터 새로운 미션을 받았다.  


"해원님, 전국에 있는 학교를 제외한, 기업과 관공서의 급식소 개수를 알려주시겠어요?

최소한 BEP를 넘을 수 있는 급식 인원이 존재해야 해서 100명 이하 식수는 제외하고 부탁드립니다."


처음 이 요청을 받은 나는 살짝 당황스러웠다. 전국에 있는 급식소 개수?! 그걸 어떻게 찾을 수 있지? 구글링을 해야 되나? 제대로 나와 있는 데이터가 있을까?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이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조금 더 부연 설명을 덧붙여 주셨다.


"이게 필요한 이유는 저희가 이제 B2B 영업할 수 있는 곳의 대략적인 수를 파악하기 위해서예요.

아, 그리고 급식소마다 잔반 처리할 때 컨베이어 벨트가 있는 곳이 있고, 음식물 처리구가 있는 곳이 있어요.

저희가 급식소에 컨베이어 벨트를 설치한다고 했을 때, 식수가 몇 명 이상 나올 때 컨베이어 벨트 설치가 가능할지도 추산해 주세요. Estimation이라고 하죠."


친절히 덧붙여 주신 설명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파악이 되었지만,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은 여전히 잘 판단이 서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한번 해볼게요."

"내일 오전까지 부탁드릴게요, 오래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니에요."






나는 자리로 돌아와서는 가장 먼저 전국의 급식소 개수를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를 찾기 시작했다.

IT 스타트업에서 일했지만, 데이터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일은 하지 않았고 따로 공부하거나 관련 역량을 쌓기 위해 특별히 노력을 한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무작정 구글링을 시작했다. 검색어는 '전국 급식소 현황', '전국 급식소 개수'였다.


'전국 급식소 현황'으로 검색했을 때 위탁급식영업 업소명 목록, 서울시 송파구_집단급식소현황 등 꽤 쓸만한 데이터가 있을 것 같은 웹사이트들이 눈에 띄었다. 내가 필요한 것은 '특정 지역'이 아닌 '전국'의 급식소 현황이다. 위탁급식영업 관련 자료가 페이지 최상단에 노출되어 있었고 출처는 지방행정인허가데이터개방 이라는 홈페이지에서 게시한 자료였다.


한국지역정보개발원이라는 곳에서 운영하는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 정보가 총집합되어 있었다. 한국지역정보개발원은 지역정보화 촉진과 전자지방정부 구현을 위해 설립된 행정안전부 산하기관이라고 한다.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 개방의 정보는 17개 시도, 228개 시군구 전국 자치단체의 자료가 매일 자동으로 수집된다. 전국 지자체의 축적된 식품, 문화, 의료, 물류 등 196종의 인허가 데이터를 개방하고 있었다.


카테고리에서 데이터 찾기-그룹별 업종조회-급식으로 들어가니 위탁급식영업과 집단급식소 2가지로 구분되어 있었다. 나는 우선, 집단급식소 데이터를 확인하기로 했다. 위탁급식영업은 집단급식소를 설치, 운영하는 업체와 계약에 따라 해당 집단급식소에서 음식류를 조리하여 제공하는 업소를 말하는데, 우리 회사에서 컨택하려면 위탁 업체보다는 직접 급식소와 접점을 만드는 게 계약 성사율이 높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집단 급식소 : 병원, 학교, 어린이집 등 집단 급식소를 운영하는 업소 및 기관 정보                                 


집단 급식소는 총 46,752개소로 확인되었고 EXCEL로 데이터셋을 다운로드하였다. 그리고 필터를 이용해

'학교'에 해당하는 급식소는 모두 필터 선택에서 제거했다. 앗, 그런데 엑셀을 열어보니 급식 인원, 즉 식수는 항목에 나와 있지 않았다. 식수가 100명 이하인 급식소는 제외한 개수를 구해야 했기에 난감했다. 어떻게 이 급식소들의 식수를 알 수 있을까.


다시 한번 관련 키워드로 구글링을 시도해 봤지만 유의미한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데이터셋의 목록을 보니 '시설총규모'와 '소재지면적' 열이 눈에 띄었다. 시설총규모? 급식소 시설의 총규모로 추정되었다. (어디까지나 '추정'이기에 정확성의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구글링 하다가 찾은 자료 중 「숙박시설을 갖춘 학교교과교습학원 시설·설비 기준」에서 급식시설의 급식 인원별 면적 계산식이 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해당 자료는 강원도 학원의 설립 · 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조례 제6조 제2항과 관련된 별첨자료였기에 해당 지역에만 적용되는 부분이었지만 다른 어떤 근거도 찾지 못한 상황에선 충분한 참고 자료가 될 거라 생각했다.


시설총규모를 조리실과 식당 면적의 합으로 보고, 면적(㎡)을 기준으로 급식 인원을 역산해서 구하면 대략적인 인원 규모를 알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 섰다. 물론 이 또한 추정치이기에 아주 정확할 순 없겠지만, 어느 정도 문제를 풀 실마리가 보였다.


조리실과 식당의 면적을 구하는 산식에 기반하여, 급식 인원 100명 이하, 500명 이하, 1,000명 이하의 시설 규모를 구했다. 그 결과, 시설총규모는 식수 100명 이하부터 순서대로 78㎡, 309㎡, 580㎡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식수 100명 이상인 전국 급식소는 약 6,845개, 식수 500명 이상의 급식소는 약 1,592개, 식수 1,000명 이상의 급식소는 약 646개로 추정할 수 있었다. 만약 음식물 처리를 위한 컨베이어 벨트를 설치한다면 가용 가능한 리스소 등을 고려했을 때, 500명 이상의 급식 인원을 수용 가능한 급식소들이 실질적 타겟으로 잡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거의 대기업 등 식수가 많은 급식소가 될 것이다.


내가 추정치를 구한 방법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데이터셋 찾기
2. 구하고자 하는 값을 추정할 할 수 있는 기준 정하기
3. '기준점'을 토대로 값을 추정하기 (역산, 가정 등)
4. 추정 값을 기반으로 오름차순/내림차순 정렬하여 결과치 도출하기


다음 날 오전, 리드님께 내가 참고한 자료와 추정치를 산정한 근거, 결과를 말씀드렸더니 본인도 나와 같은 데이터셋을 보고 결과치를 구했다고 하셨다. 당연하게도 수치 결과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헛된 시간을 보내진 않은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리드님은 시장에서의 매출액을 기준으로 식단가를 나누어서 식수를 구했다고 하셨는데, 이보다는 내가 추정한 방식이 좀 더 실제 값에 근사한 값이 나올 것 같아서 더 맞는 방법인 것 같다고 하셨다.

다만 내가 놓친 부분은 식단가를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좀 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을 찾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식단가가 높고 식수가 많을수록 서비스를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답이 보이지 않는 질문이었지만, 서칭과 논리적 추론을 하다 보니 결과값의 범위가 좁혀지고 그럴싸한 추정치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묘한 쾌감이 들었다.






이런 과정을 게스티메이션(Guesstimation)이라고 한다고?


위에서 내가 했던 것들과 유사한 질문들이 컨설팅 펌의 채용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컨설팅 펌에서 인터뷰 시 게스티메이션(Guesstimation)을 통해 후보자의 비즈니스 상식 수준과 논리적 사고력을 판단한다. 게스티메이션이란 기초적인 지식과 논리적 추론만으로 가장 타당성 있는 추정치를 산출하여 표현하는 방법을 말한다. 다음은 아마 한번 정도는 들어봤을 질문 예시이다.


1. 보잉사의 비행기 1대를 칠하기 위해 페인트 몇 통이 필요할까요?

2. 강남역의 유동인구는 하루에 몇 명이나 될까요?


이러한 질문은 웹서치를 통해 나오는 자료도 아니고, 나온다고 정확하다는 보장이 없으며, 2번 질문은 강남역에 하루종일 서 있다고 파악할 수도 없다.


오로지 자신이 알고 있는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논리적 접근을 통해 어림숫자를 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질문자는 정답을 알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다만 접근 논리의 타당성을 판단할 수는 있을 것이다. 무슨 답을 하든 우선 강남역 인근의 범주를 어디까지 생각하는지 범위의 정의를 명확하게 한 후, 근처 건물의 수, 사무실의 수 등을 바탕으로 접근할 수도 있고, 지하철 통행량, 버스 노선 등을 바탕으로 접근할 수도 있으며, 그 외 또 다른 논리적 접근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So What?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런 게스티메이션을 잘하려면 기본적으로 어림숫자를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억지로 외우기보단 자연스럽게 터득하여 누가 '우리나라 1년 예산이 얼마지?'라고 하면 '지출 기준으로 약 600조 원 정도?'라고 바로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끝으로 게스티메이션 또는 어림 숫자는 컨설팅펌 면접 볼 때만 필요할까? 그렇지 않다.

이외로 직장 생활하면서 활용할 때가 많다. 특히 기획, 신사업, IR 준비부터 단순 재무 예측까지 다른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선 숫자로 된 백업을 많이 준비할수록 좋다.


게스티메이션은 숫자 질문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고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질문도 있다. 이를 준비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인데, 한 가지 팁은 나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많이 듣는 것이다.






나 또한 취업 준비생 때, 모 금융기관 채용 면접을 1박 2일로 실시한 적이 있었다. 직무 면접의 하나로 상황 PT면접을 했었는데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한 시간 내에 생각해서 PT로 발표하는 것이다. 기억나는 질문들은 '전국에 있는 주유소의 개수는?', '사람의 머리카락 개수는?'과 같은 것들이었다. 당시 진땀을 흘리며 대답하곤, 보기 좋게 떨어졌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이 면접 때문에 떨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만..)


평소에 이러한 전략적 사고/가설 수립의 논리를 연습한다면, 실무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최적의 방법론을 찾아 해결책을 도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현상에서 문제를 발견 및 정의하고 타당한 방법을 찾아 해결하는 것은 모든 사회인의 필수 스킬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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