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육아가 있을까
내 주변 사람들은 어느 순간 하나둘씩 결혼을 했고 육아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도 많아졌다. 고등학교 동창, 대학 선후배, 직장 동기 등등 언제나 내 옆에서 함께 수다 떨고 쇼핑하고 농담을 주고받을 것만 같던 그들이 한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된 것이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이렇게나 빨리 아이를 낳는다고? 아직 저들도 아이 같은데..'
라며 누가 들으면 욕을 들어도 싼 생각을 했다. 의식하지 않은 채 자동적으로 카톡 프로필 사진을 한 명씩 내릴 때도 그랬다. 이제 내 또래의 지인 중 50% 이상이 웨딩 사진이거나 임신한 사진, 아이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이들은 벌써 부모가 되었구나. '나는 아직도 아이처럼 궁금한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내가 아이를 키운다는 생각은 아직 해보지 못했는데'라고 생각하며 그들이 한편 대단하다고 여겨졌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어린 한 생명을 책임지는 보호자가 된 것이 아닌가. 나는 아직 부모가 될 준비도, 그만한 책임감도 가지지 못했지만 이것만큼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00아, 언제 한번 우리 집에 놀러 와.
00이 있는데 낮잠 자는 시간에 맞춰서 와~"
몇 주 전, 첫 취업 준비 때 함께 스터디를 했던 언니의 카톡을 받았다. 내가 26살 때 처음 만난 언니는 그 당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공기업 이직 준비를 했고 나는 한창 첫 취업 준비에 열심히일 때였다. 언니와 나는 공기업을 준비하며 회사나 시험 정보를 주고받았고, 모의 면접도 함께 했으며 둘 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어 종종 함께 밥을 먹거나 차를 마셨다. 다행히도 몇 개월 후 내가 먼저 취업을 했고 그로부터 또 몇 개월이 지나 언니도 목표하던 곳에 취업을 했다.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예전만큼 자주 보진 못했다. 언니는 얼마 안 가 오래 만난 남자친구와 결혼을 했고 나는 첫 직장과 업무에 적응하느라,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는 이직을 준비하고 새로운 회사로 출근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도 서로의 환경에 변화가 있거나 누구의 생일이거나 해가 바뀔 때, 그냥 소식이 궁금할 때 꼭 누구 한 명이 연락을 했다. 내가 첫 직장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될 무렵 언니는 결혼을 했다. 언니의 결혼식장에는 신랑신부를 축하해 주려는 하객들로 북적북적했고 그 하객들만 보아도 언니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느껴졌다. 나도 진심을 담아 언니의 결혼을 축하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와 달리, 나는 오래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진 상태였고 당시에 만나는 사람은 없었다. 결혼식 초반에 나오는 신랑신부의 앳된 모습과 사랑스러움이 가득 담긴 이미지 영상을 보면서도 너무 예쁘고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도 결혼을 하고 싶다거나 지금 곁에 누군가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후 몇 번 더 지인의 결혼식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나 10년을 연애하고 결혼을 한 친구의 결혼식을 간 적이 있다. 그들의 오랜 연애를 지켜본 입장으로서 마음 한편에 찡한 감동이 몰려왔으나 좀처럼 내 결혼에 대한 의지는 생기지 않았다. 조급함이라는 감정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다.
성향상 외로움을 덜 타는 편이기도 하고 혼자서도 무언가를 배우거나, 새로운 곳을 여행하거나, 책을 읽고 술을 마시는 등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지난 연애로 알게 된,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찾아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그 과정이 분명 지난할 거라는 지레짐작 때문일까. '규제 철폐가 시급하다'라고 놀리곤 하는 내 친구의 말대로 눈을 낮추지 못해서일까. 아님 정말 아직 결혼이 급하지 않아서일까.
내 생각엔 전부 다 틀렸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 결혼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아니, 더 솔직하게는 결혼을 해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고 그 가정을 1순위로 두고, 한 아이를 책임질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지금껏 나는 다양한 경험과 배움을 삶의 가장 큰 즐거움으로 여기는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새로운 경험은 즐거움과 깨달음을 주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처음 겪는 것들이기에 그저 맨땅에 헤딩을 해야만 할 때도 있었고 도저히 어찌할 할 방법을 몰라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기도 했다. 가끔은 밥을 지으려고 물을 얹었는데 나도 모르는 새 죽이 되어버려 허탈한 마음으로 바라보기만 했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눈물 나는 수난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간이 지나면 '그래도 좋은 경험이 되었다'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힘든 경험들에 주저앉기보다는 주저앉아 있다 툭툭 털고 다시 걸어가려는 특유의 긍정성이 나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좋았으면 추억이고 나빴으면 경험이다.'라는 말이 있다. 대개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편에 가까웠다. 그래서 지금도, 아마 앞으로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에 팔을 뻗고 한 걸음을 내딛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나 자신의 배움과 성장에 초점을 맞춘 삶을 살아와선지 결혼의 시기가 되었다고 해서 이러한 성향이 바뀌지는 않았다. 아마 결혼을 한다고 해도 조금은 약해질지언정 성향이 바뀌긴 어려울 거라 생각한다. 결혼이라는 건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와 서로 다른 성격과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의 세계가 만나 하나의 생활 공동체를 이루는 일인데 적어도 지금은 안정적인 울타리를 만들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아직 나는 그전에 해야 할 일이 좀 더 남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시간이 더 지나면서 자연스레 결혼과 아이에 대한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걸 너무 늦게 깨닫지만 않는다면, 결혼에 대한 생각이 진지해지고 한 가정을 책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결혼을 하고 싶다.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다. 다른 사람의 인생 경로를 무조건적으로 따라갈 필요도, 누군가의 권유나 추천에 동의할 필요도 없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언제 가장 행복한지를 잘 알고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면 충분하다 생각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급속도로 낮아지는 출생률과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현실 등 사회 문제를 차치하고 오로지 개인의 관점에서 생각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언니의 카톡을 받은 나는 그 주 금요일에 언니네 집에 방문했다. 오랜만에 간 언니네 집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있었다. 거실 벽면과 유리창에 한글과 알파벳, 공룡과 자동차 포스터가 가득 붙여져 있었다. 수납공간은 모두 아이의 장난감으로 가득 찼다. 장난감 자동차와 킥보드가 한 자리를 차지했고 안방에는 아기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는 00 이가 보였다. 00 이는 이제 막 두 돌이 지나 걷고 뛸 수 있었지만 말을 잘 하진 못 하는 상태. 갓난아기를 막 벗어난 아기였다.
어른이 되고선 이렇게 작은 아이를 처음으로 보았다.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작고 귀여운 몸이 앙증맞았다. 자는 아기를 보고 왜 천사 같다고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언니와 나는 점심으로 오므라이스를 먹으며 근황 토크에 정신이 없었다. 서로의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며 달라진 변화에 놀라기도, 응원하기도 했다. 1년이 넘게 못 보다가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대화가 편하고 자연스러웠다. 우리의 웃는 소리에 잠을 깼는지 안방에서 아기가 아장아장 걸어 나왔다. 언니가 '이모 안녕하세요~ 해야지'라고 말했다.
이모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 나는 '그래, 누나는 아니지.'라고 속으로 풉 웃으며 아기를 바라보고 인사를 했다. 아기는 처음 본 내가 낯선지 잠이 덜 깬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오밀조밀 작은 생김새와 볼록 나온 배,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너무 예뻐 나도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기는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엄마에게로 달려가 폭 안겼다. 언니는 우리가 먹고 있던 딸기를 00 이에게도 주었다. 딸기와 과자를 함께 먹으며 아기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눈에 익혔다.
간식을 다 먹은 00 이는 거실에 가 장난감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언니는 예삿일이라는 듯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혼자 조금 가지고 노는가 싶더니 어느새 아기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응? 같이 놀자고?"
"ㅋㅋㅋ 00 이가 너랑 놀고 싶은가 보다."
나는 어색했지만 아기의 손에 이끌려 장난감 곁으로 갔다. 공 던지기를 하고 공룡의 이름도 말해주었다. 창밖을 내다보며 '기차!'라고 외쳐대는 아기에게 뭐라고 얘기해줘야 할지 몰라 그저 하하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기는 보고만 있어도 안아주고 싶을 만큼 예뻤다. 나는 아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미래의 내가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아마도 더더욱 예뻐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기와 잠깐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피로감이 살짝 몰려왔다. 배려심 깊은 언니는
"너 벌써 힘들지?ㅋㅋㅋ 저기 식탁에서 좀 쉬어~"
라며 아기의 관심을 자기에게로 돌리려 애썼다. 나는 못 이기는 척하며 식탁에 가서 잠시 앉았다. 그러곤 뒤를 돌아보니 아기가 나를 따라와 또 손을 잡아 끄는 것이었다. 멈추지 않는 반복이 시작된 것인가. 계속 나를 찾는 아기가 예쁘고 고마웠지만 잠시만 쉬기로 했다.
"이모 조금만 쉴게~ 이따가 또 놀아줄게!"
그렇게 한두 시간을 더 놀다 00 이는 내 품에 와락 안겼다. 아기를 안는 느낌이 정말 좋았다. 작고 부드럽고 포근했다. 놀아주느라 잠깐 피곤했던 게 한 순간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아기를 낳는 걸까.
그날 나는 24시간 육아라는 중노동을 해야만 하는 언니에 비해 아주 잠깐 00 이와 시간을 함께 보냈을 뿐이었는데 많은 생각과 감정이 지나갔다. 어쩌면 내 인생에 결혼과 육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이 짧은 시간으로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순 없겠지만 더 분명해진 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든 '지금 단언하지 말자'라는 것이었다. 사람은 언제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생각이 바뀔 수 있는 유동적인 존재다. 신이 아닌 이상 어떤 것이든 '절대'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항상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유연하게 내 삶을 살아나가고 싶다.
나에게 다가오는 순간순간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자연스레, 운명처럼 내가 원하는 길로 인도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엔 우리 집에 언니와 00 이를 초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