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아이러니
나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노트북이나 책을 들고 카페에 가서 일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나에겐 집이 가장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이지만 카페에서 뭔가를 하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집에서 입는 똑같은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머리를 질끈 묶고 가도 카페에서 뭔가를 하면 나만 느끼는 '있어 보임'이 +1이 되는 것 같다. 대개 공간이 넓고 푹신한 소파가 있으며 좌석 간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 좋다. 2시간 이상 자리를 지켜도 눈치 보이지 않고 오래 앉아있어도 편안할 뿐 아니라 옆 테이블의 이야기소리가 그리 크게 들리지 않아 어떤 일에 집중하기에 최적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프랜차이즈 카페와 트렌디한 카페를 여러 곳 다녀봤지만 역시 가장 자주 찾게 되는 곳은 별다방이다. 일단 커피가 맛있고 어느 지점을 가도 표준화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패 확률이 없는 것이다. 공부를 하거나 일하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어 괜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아도 되는 것도 좋다.
몇 개월 전, 어느 일요일 오후 그날도 노트북을 들고 집에서 가까운 별다방에 갔다. 뭘 하러 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아마 그즈음에 이직 준비를 하던 때라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글을 쓰러 갔을 것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소파가 있는 원형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은 일자형의 소파가 놓여있고 원형 테이블이 일정 간격으로 떨어져 있었는데 테이블 간격이 좁은 편이어서 옆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말이 선명히 들릴 정도였다. 나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주위가 조금 산만해도 잘 듣지 못할 정도로 빠지는 편인데 그날따라 옆 테이블에서 하는 이야기가 잘 들렸다.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마주 보고 앉은 남녀는 20대 중후반쯤으로 보였다. 그리고 서로에게 존댓말을 했다. ~씨는 어때요?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와 같은 말투였다. 그들이 서로에게 하는 존댓말에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과 배려하는 태도가 느껴졌다. 보통은 서로 친하면 편하게 말을 하기 마련인데 존댓말을 하면서도 꽤나 친밀한 사이처럼 보여 신선했다. 나는 저들은 어떤 관계일까 궁금해졌다. 학교 선후배? 애매한 지인? 소개팅 자리인가? 그들의 대화 초반에는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친구 사이라면 반말을 할 거고, 학교 선후배라기엔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묻어났다. 소개팅이라면 서로를 오늘 처음 만난 것 같지도 않았다.
몇 분 정도가 더 흐른 후에야 나는 알았다. 그들이 연인사이라는 것을. 연상연하 커플이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로 미루어보아 남자는 대학생, 여자는 취업준비생인 것 같았다. 얼마 전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각자가 느낀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는 것을 듣고 나서야 알아챘다. 이런 쪽으로 나는 어지간히 둔감한가 보다고 생각하며 잠시 그들의 흥미진진한 대화에 집중하기로 했다.
여자는 최근에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일로 인해 남자에게 느낀 서운한 감정을 토로했다. 보통의 연인들이 주고받는 대화이자 투정이었다. 다만, 여자는 감정에 치우치거나 짜증을 내지 않고 꽤 이성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존댓말로 이야기하니 내용과 상반되게 부드럽게 들렸다. 여자가 말을 하는 동안 남자는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거나 '아~ 그랬어요?' 정도의 리액션을 했다. 여자는 남자에게 꽤나 서운한 것 같았다. 연인 사이엔 작고 사소한 일이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말과 행동, 반응에 따라 섭섭함이 커지고 감정이 요동치게 마련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 순간 여자가 남자를 많이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자의 말이 끝나자 남자는 진지한 태도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연신 사과를 거듭하고는 그때 자신이 왜 그렇게 말했고 행동했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차분히 이야기했다. 제삼자인 내가 얼핏 듣기엔 누구 하나가 잘못한 상황이라기보단 서로의 입장이 달라서, 서로 사랑해서 생길 수 있는 감정의 회오리였다. 그럼에도 남자는 여자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서로가 앞으로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만난 지 오래되지 않은 커플 같았지만 서로가 그들의 관계를 진지하게, 또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쌓인 오해를 대화로 푸는 것, 연인이지만 존댓말을 하는 것,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고 합리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선 그들이 현명한 커플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부럽기도 했다. 내 경우에는 편안한 연애를 추구하는 편이어서 많지 않은 연애사에서 상대에게 항상 편하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존댓말을 하는 건 상상으로도 오그라드는 느낌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커플을 보니 그 모습이 예뻤다.
어느새 그들의 대화 주제는 가치관과 돈, 삶에 대한 것들로 옮겨갔다. 시간이 좀 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들의 말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다. 앞뒤 맥락은 잘 모르겠지만 여자는 '똑똑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남자가 물었다.
"똑똑함이라는 걸 어떻게 정의해요?"
여자가 뭐라고 대답하자 남자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똑똑한 사람들은 '가치관이 뚜렷하고 휩쓸리지 않는다'라고 했다. '깨어있는 사람들은 어쨌든 자기 고집이 있어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남자의 말에 동의했다. 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똑똑한 사람들이 있을 테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뚜렷한 가치관과 흔들리지 않는 의지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그런 신념이 있기에 원하는 바를 이루어내고 타인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극단으로 치우쳐 '아집'으로 나타나면 안 되겠지만, 어떤 일을 시작했다면 끝까지 해나갈 끈기와 줏대는 필요하다.
"00 씨 또래에 ~살 중에서 얼마나 똑똑해요?"
그리고 남자는 여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보면 도발적인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질문을 도발이나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태도가 흥미로우면서도 사뭇 놀라기도 했다. 나는 저들의 나이였을 때 저런 대화를 할 수 있었는지 되돌려보니 전혀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아 머쓱해졌다. 그때는 나름대로 성숙한 연애를 하고 있고 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세상을 넓게 보지 못한 나의 착각이었으며 상대의 배려 덕분에 오히려 내가 배운 게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대화는 공을 주고받듯 이어지더니 이번엔 '돈'에 대한 주제가 나왔다. 나는 '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게 언제였는지 떠올려보니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도 한참 뒤였던 것 같다. 경제적 독립과는 별개로 나는 '돈'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여러 가치관들 중 어느 정도의 우선순위를 가지는지에 대해 생각을 정립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었다.
"결국 다 돈이라는 생각을 해요.
인내를 안 하고 이해만 하고 살려면 돈이 많아야 해요."
남자의 말은 너무나 사실적이고 현실적이어서 뭐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한마디로 '웃프다'. 바야흐로 자본주의의 시대다. 자본주의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돈'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세상의 모든 문제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돈은 일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다. 예를 들어 교육, 건강, 복지와 같은 문제는 적극적인 자금 지원으로 개선할 수 있으며, 기술 발전과 연구에 대한 투자도 돈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돈은 문제의 성격과 해결 방법에 따라 손쉬운 해결책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만 보자면 '돈'은 '자유'를 가져다준다. 내가 일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언제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으며, 사고 싶은 것을 사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다. 심지어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의무감에 짓눌리지 않은 채 24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도 있다. 남자가 말했듯 인내하지 않고 이해만 하고 살기 위해서는 돈이 많아야 한다. 인내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그만큼 누릴 수 있는 자유가 크다는 의미이겠고 타인과 세상을 머릿속으로 이해만 한다 해도 개인의 삶을 사는 데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싶어 하고 더 많은 돈을 소유하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자유'라고 생각한다. 공동체와 사회적 관점으로 넓힌다면 조금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돈이 100%는 아니었어요."
여자는 말했다. 이 또한 맞는 말이다. 돈이 어떻게 100%이며, 항상 1순위일 수 있겠는가. 역사와 이념, 사람과 사랑, 인류와 같은 물질적인 것 외의 가치를 가벼이 여긴다면 결코 돈은 세상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발전시켜 온 자본주의는 균형잡지 못한 채 위태롭게 걷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의 아이러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확실히 우리에게 기쁨과 성취를 맛보게 하지만, 괴로움과 공허감을 주기도 한다.
"돈, 참 무서우면서도 고맙지."
간결한 남자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그들의 흥미로운 논쟁은 종지부를 찍었다. 정답이 없는 쟁점으로 한참을 핑퐁을 주고받은 남녀는 숨을 돌렸고 여자는 자리를 옮겨 나란히 앉았다. 다시 여느 연인과 다름없이 가벼운 애정표현을 했고 오늘 저녁 메뉴는 뭘 먹을지 얘기했다.
본의 아니게 그들의 짧고도 긴 대화를 엿듣게 된 나는 예상보다 더 늦게 일을 마쳤다. 하지만 인상적이었던 그들의 관계와 흥미로운 대화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도 그들의 이야기가 생각난다면 지금처럼 기억을 더듬어 이렇게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는 우리들을 더 바쁘게 만드는 것만은 분명하다. 더 많은 일을 하면 더 많은 성취를 얻게 되고 그 성취로 얻게 된 많은 유익들 때문에 또 계속 일하게 만든다. 그게 돈이든, 명예든, 성취든 행위로 얻어지는 어떤 것에 취하기는 쉽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살아갈 때 자각하게 되는 건 시간이 굉장히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이다. 시간이 빠르다는 건 그 순간을 충분히 음미하지 못하고 무언가에 쫓겨 다니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 사실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시간을 온전히 소유할 수 없지만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있는 것과 시간에 쫓기는 것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우리는 대부분 일에 빠져서 시간에 쫓기는 인생을 살아가지만, 때로 자기가 속한 어떤 시스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시간의 소중함과 발견하지 못한 가치들과 인간이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된다. 하루하루 매 순간마다 삶의 작은 기쁨들을 누리면서 살아간다면 인생은 꽤 살만한 것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