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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Mar 24. 2024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꿈과 사랑의 공통점 

여느 때처럼 유튜브를 새로고침하며 스크롤을 내렸다. 똑똑한 유튜브 알고리즘은 요즘 자주 보는 유형의 새로운 영상을 끊임없이 보여주었다. 최근엔 힙합 음악을 많이 들었다. 평소의 나의 음악 취향과는 전혀 다른 장르인데 취향이 바뀐 건지 요즘엔 R&B힙합을 자꾸만 틀게 되었다. 감성힙합이라고도 하는 그 장르 맞다. 이걸 감성힙합이라고 하는 것도 이제야 알았지만 듣다 보니 좋은 노래가 많았다.   


그러다 자동 알고리즘으로 처음 듣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평소 나는 유튜브 뮤직으로 노래를 듣는데 화면을 끄고 유튜브를 재생시켜 놓아서 가수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일단 멜로디와 가사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계속 듣다 보니 강렬하게 이 노래가 마음에 들었다. 멜로디라인이 귀에 쏙쏙 들어왔고 훅이 좋다는 게 이런 느낌을 보고 말하는 것인가 생각했다.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눈빛에 베일 듯 우린 날카로워

마침표를 찍고 난 조금 더 멀리 가려해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라는 가사가 노래 중간중간에 반복되었다. 3번 정도 반복 재생해서 들었을 때까지 사랑 노래라고 생각했다.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고, 서로 눈을 마주하고 있는 연인의 모습이 그려졌다. 만나는 건 쉽게 되었지만, 헤어질 땐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는 바로 그것. 이별이었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한 번쯤 있을 테다. 자신이 이별을 고했든, 상대가 이별을 통보했든 모든 이별엔 아픔이 동반되는 사실을 우린 알고 있지 않은가.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말로 에둘러 포장하지만 어떻게 이별이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이별은 곧 헤어짐이고, 연인 간의 헤어짐은 이제 앞으로는 사랑했던 사람을 볼 일이 없어진다는 말과 동일하다. 이별 후에도 종종 만나거나 친구로 지내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많은 경우에 헤어진 후에 전 연인을 만나는 일은 잘 없다.


'끝나도 괜찮아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

다음 페이지에 끝나도 좋아 그러나 거기에 너가 있다면 

이 얘기의 끝을 미룰거야 그게 내가 원하던 결말

아직도 어려워 이미 해봤던 이별이라도'


이 가사도 그랬다. 이별이 바로 눈앞에 있음을 너무나 잘 알면서 아직 감정의 잔여가 남았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기에 미련은 없다. 곧 관계가 끝난다 하더라도 마지막에 사랑하는 이가 서 있다면 이별을 미루는 게 내가 원하는 결말이다. 이미 해봤지만 이별은 항상 어렵다.


사랑과 미움, 그리움, 미련..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인 이별을 앞둔 사람의 심리를 절묘하게 묘사했다고 생각했다. 이 가사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사랑이라는 감정을 한 번이라도 겪어봤다면 무슨 감정일지 알 것이다.






한동안 훅의 여운에 빠져 있다가 몇 번 더 재생하니 다른 가사도 들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기억나 차 안의 공기가

처음 들었을 때 마음이 짜릿했던 뭔가가

6살이었지만 알았었지 뭔가 다르단 건

그렇게 쉽게 만나게 되는거야 꿈이란 건


시간이 흘러서 이제 음악은 내 놀이가 됐고

듣고 따라만 부르기엔 내게는 뭔가 부족했어

그래서 실행에 옮겼지 방에서 혼자 꿈만 꾸던 모습

가사를 쓰고 부를 때 사실 내가 생각했던 건


돌아가야 할까 나아가야 할까

환호와 박수 소리를 들을 때 떠나야 할 것 같지 왜

지금 떠나서 아름다운 기억으로만 간직해

다들 꿈이란 건 이루지 못한 채 꾸고만 사는데'

 

어라? 분명 이 가사들은 사랑 이야기가 아닌데..?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라는 제목만 봐선 뻔한 사랑 노래인 것 같은데 가사를 곱씹을수록 생각이 많아지는 노래다. 


그렇게 쉽게 만나게 되는거야 꿈이란 건. 시간이 흘러서 이제 음악은 놀이가 됐고

듣고 따라만 부르기엔 내게는 뭔가 부족했어. 그래서 실행에 옮겼지 방에서 혼자 꿈만 꾸던 모습

환호와 박수소리를 들을 때 떠나야 할 것 같지 왜. 다들 꿈이란 건 이루지 못한 채 꾸고만 사는데

It's okay 괜찮아 난 맛이라도 봤잖아. 다시 현실로 돌아가 취직하고 잘 살아.


이제야 알았다. 이 노래는 사랑에 관한 노래가 아니라 '꿈'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누군가는 '가수가 되어 노래하는 것'을 간절하게 바라고 꿈꿔왔던 것이다. 자신의 꿈을 사랑하는 사람과 동일시해 진심을 담았기에 진정성 있게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진정성이 담긴 노래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을 준다. 


6살 어린 시절부터 하나의 꿈을 키워오면서 느꼈던 여러 감정들과 심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더 좋았다. 처음 어떤 순간이나 계기로 꿈을 가지게 되는 건 쉽지만 그 꿈을 놓아버리는 건 어렵다는 게, 얼마나 뭔가를 하고 싶었는지가 담겨있다. 그리고 나는 이 정도로 간절한 꿈을 가진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마음을 짜릿하게 하는,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기에 미련 없이 끝나도 괜찮다고 할 수 있는 꿈을 꿔본 적이 있었나. 그리고 그 꿈이 나를 떠나지 않는다면 여전히 이 자리에서 기다리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을까.






솔직하게는 나는 그 정도의 간절한 꿈을 가져본 적 없는 것 같다. 그저 내 앞에 놓인 과제들을 해치우며 달려왔을 뿐이다. 한 과제를 해내고 잠시 앉으려 하면 이전보다 조금 더 큰 과제가 내 앞에 놓였다. 두 번째 과제를 끝내고 이제 앉으려 하면 또 세 번째 과제가 버티고 서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커다란 산을 올랐다. 이제 정상이 다 와가나 싶으면 아직 절반도 안 올라온 것처럼 내가 걷는 길은 끝없는 오르막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예고 없이 곤두박질칠 때도 있었다. 내가 절벽으로 간 것도 아닌데. 그리고 가끔은 완만한 눈썰매장에서 눈썰매를 타는 것처럼 천천히 내려가기도 했다. 평지면 걷기도 좋고 잠시 서서 바람도 쐬고 하늘도 볼 수 있을 텐데 어찌된 일인지 평지를 걷는 건 찰나다. 여유롭게 햇살을 받으며 걷고 있으면 어김없이 내 앞에는 또 산이다. 우리 삶은 산을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 


흙길을 걷고 바위를 딛고 올라가느라 엄청나게 무언가 하고 싶은 느낌이 무엇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나도 물론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 하고 싶은 일이란 시시때때로 바뀌어 오기도 했지만 이제는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윤곽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서 하고 싶은 일의 큰 틀은 아마도 바뀌지 않을 듯하다. 그 일을 할 때 즐겁고 가끔은 타임머신을 탄 듯 시간이 금세 지나있기도 했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나는 그만큼 몰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이 간절한 꿈이라기에는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느낌이 든다. 그 일을 안 하면 안 될 것만 같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일을 못하게 된다면 나는 아마 제2의, 제3의 대안을 찾을 것이다. 한 가지에 올인하는 성향이 아닌 데다 미리 다른 대안들을 생각이라도 해두어야 안심이 되는 나는 하나의 꿈을 향해 그것만 보고 달리기에는 겁이 많았다. 그런 점에서 하나의 길을 향해 우직하게 달려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심이 든다. 그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든 관계없이 인생에서 자신의 마음을 울리는 꿈에 미련 없이 도전해 봤던 사람의 삶은 멋있다. 적어도 '그때 해볼걸' 하는 후회는 안 할 테니까 말이다.  


이 노래는 쇼미더머니10에 나온 베이식이라는 래퍼의 곡이다. 그리고 릴러말즈가 피처링에 참여했다. 힙합이라는 장르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처음 들어본 래퍼였다. 그런데 찾아보니 그는 쇼미더머니4에서 우승했었고 쇼미더머니4 우승 이후 못다 한 얘기를 가사로 녹여낸 것이었다. 그는 한국 힙합 유망주들의 대란이 일어나고 있던 2007년 힙합씬에 등장한 슈퍼루키였다. 그는 우승 이후 잠깐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나 이후 음악적인 커리어는 지지부진했고 쇼미더머니10에 참가자로 다시 출연한다. 하지만 2차 심사에서 탈락하고 패자부활전을 통해 3차 진출, 본선에서 부른 노래가 바로 이 곡이었다. 이 곡이 차트 최상위권에 랭크되어 그동안 얻지 못했던 대중성을 얻었다. 어떻게 보면 그 긴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던 그의 노력과 근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가수라는 꿈을 꿔 본 적은 없지만 그의 고민의 무게엔 공감할 수 있었다. 그와 나,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누구나 인생의 서사는 완전히 다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스토리인 양 공감할 수 있다는 게 왠지 뭉클하다. 






항상 만남과 이별이라는 건 사랑이라는 주제만 떠올렸는데 자신의 꿈도 '만남'과 '이별'에 빗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즘도 나는 노래를 자주 듣는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계속 들을 같다. 


'그런데 자꾸 왜 난 또 가사를 끄적이는 걸까'


그는 음악과의 이별이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 동경하는 꿈, 그리운 장소, 추억 속에 지나간 사람들.. 모든 이별은 어렵다. 속상하고 아프게 하기도 한다. 진부한 말이지만 '이별이 있으면 만남도 있다.' 그렇기에 이별이 슬프다고만 할 수는 없다. 끝맺음을 잘해야 새로운 만남과 시작을 할 수 있다. 이제 이별에 슬퍼하고 있지만은 않기로 하자. 그 이별은 도약을 위한 잠깐의 내리막일 수도 있다. 분명 다시 완만한 기울기를 그리며 오르다 보면 다시 '만남'은 올 것이다. 그게 사랑이든 꿈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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