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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비키 Jul 09. 2017

문화수용자의 역할 변화  

[칼럼] 2008.6.20

본 글은 2008년 6월 20일에 썼던 글이라, 본문에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일부 담겨있습니다.




문화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진정한 문화창조의 주역을 꿈꾼다



21세기는 흔히들 ‘ 문화 전쟁’ 또는 ‘문화 경쟁의 시대’ 라고 한다. 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철기 시대를 지나 농경사회로 진입한 인류는, 산업혁명을 통해 본격적인 대량생산의 시대인 19~20세기를 거쳐, 20세기 중반부터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새천년과 함께 21세기 가 시작되 면서, 국가들은 ‘ 문화제패’를 꿈꾸는 문화강국 으로, 개인들은 다양한 ‘ 문화를 즐기는’ 문화인으로의 발전을 기대한다.


사실 요즘 ‘ 문화’라는 말처럼 자주 쓰이는 단어도 없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시작된 촛불 시위가 어느새 ‘문화제’ 로 불리기 시작하고,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스포츠 경기는 ‘응원’ 이라는 촉매제를 통해 스포츠를 뛰어넘는 ‘종합적인 문화 축제’로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옳고 그름을 떠나, 특정 계층/집단의 공유하는 사상이 행동으로 표출되면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문화’ 로 자리잡고, 나아가 때로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혁명 ’ 또는 ‘ 개혁’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사상의 변화도, 정치 및 경제 체제의 변화도, 그리고 세계 역사의 흐름마저도, 궁극적으로는 ‘ 문화’의 흐름이 그 토대를 구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문화는, 작게는 공연이나 전시를 보고 즐기는  관람’ 의 행위와, 공연을 만들고 직접 참가하는 ‘퍼포먼스 ’의 범위부터, 넓게는 그러한 다수들이 모여 새로운 트렌드와 사조를 만들어내고 , 개인들의 삶의 방식 및 정치/경제/생활 등 ‘사회 전반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 을 포함한다. 때문에 그 범위와 강도 의 차이와 상관없이, 문화를 향유하고 누리는 것에 소외되어 있는 개인은 없다. 다만, 바쁜 일상 속에서 작은 하나의 공연이라도 짬을 내어 ‘관람’ 하려는 의지와 노력을 생성하거나 , ‘나만의 새로운 것 ’ 또는 ‘ 기존의 것 중 마음에 드는 장르’를 선택하여 ‘직접 참여 ’하는 것에 따라, 능동적 문화인 과 수동적 문화인 으로 나눌 수는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필자의 임의적인 구분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


<문화충전>은 흔히들 생각하는 작은 의미의 문화, 즉, 공연, 전시 등 소위 “문화 콘텐츠” 라고 일컬어지는 ‘문화 ’를 향유하고 창조하는 네이버 최대의 ‘ 문화 카페’ 로 자리잡아왔다. 그 동안 문화충전을 통해 진행된 다양한 문화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졌고, 커뮤니티에서 기획/진행한 정기모임, 와인 콘서트, 글로리아 합창단 발표회 등 의 자체 문화행사들 또한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성공리에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의 <문화충전>은 문화인들에게 문화콘텐츠를 ‘전하고 알리는’, 즉 ‘문화 소비’ 를 활성화하는데에 주로 충실 했다. 하지만, 현재 가입 회원수 7만을 바라보며 대형카페로 성장한 상황에서, 이제는 좀더 ‘ 적극적인 문화생산자’ 를 양성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문화콘텐츠를 ‘소비 ’하는 것은 문화인의 가장 기본이자 중요한 자세이다. 그러나 , ‘문화 소비’만으로는 ‘문화’ 에 대한 주체적 자세를 형성하는데 훨씬 길고 힘든 시간이 소요 된다. 문화콘텐츠를 아무리 많이 소비해도, 자신이 소비하는 문화에 대한 애정과 신뢰 조차 형성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문충에서 진행하는 수많은 초대 이벤트에 참가한 사람들 중, 군중심리에 의해서 또는 시간 때우기로 오는 사람들도 있 을 것이다 . 문충이 공연 불참석자들이나 리뷰 비작성자들 에게 적용하고 있는 페널티제도는, 문화소비에만 익숙해졌을 때 그에 상응하는 문화 주체자로서의 ‘ 문화 책임’은 자칫 소홀해 질 수 있음을 간파한 동의적 전제이다.


때문에 이제는 지금까지 구축한 활발한 문화소비의 분위기 위에, 문화 콘텐츠를 ‘ 직접 만들어가는’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 문화콘텐츠가 반드시 프로들에 의해서만 구성될 필요는 없다. 비록 아마추어라도, 자신의 취미에 보다 깊은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사람들 , 프로 못지 않은 실력을 가진 자들이 7만 회원 중에 없지는 않을 것이다. 각자의 취미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소그룹을 활성화 시켜서, 그들의 취미를 직접 공연하고 전시하는 것을 장려하면 어떨까 . 현재의 개설방들을 문화소비, 문화창조, 문화비평의 섹션으로 크게 나누고, 그 중 문화창조 섹션을 같은 문화취미를 가진 회원들의 소그룹 공간으로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다. 이를 통해 문충 회원들로 구성된 피아노 연주회, 사진전, 영화제, 스포츠 경기, 소설, 여행단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개발될 수 있다. 이는 아마추어들에게도 문화공연의 주체가 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뿐만 아니라, 남의 공연을 즐기는 수동적 소비의 문화인이 아닌, 직접 참여하고 책임의식을 갖는 능동적 창조의 문화인으로 성장하는 핵심 루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문충은 이미 이러한 방향으로의 길을 가고 있다. 현재 문충 회원으로 구성된 <글로리아 합창단> 이 그 좋은 예다. <글로리아 합창단>은 문충 회원들이 구성하고 후원하는, 100% ‘ 문충표’ 문화콘텐츠이다. 함께 연습하면서 합창단원들은 다른 회원들보다 더 깊은 친목을 나눌 것이고, 정기공연을 통해 다른 회원들에게 자신들의 문화역량을 선보인다. 문충의 첫 자체 브랜드로서 성공적인 출발을 하고 있는 <글로리아 합창단>같은 문충표 문화브랜드가 지속적으로 생산되어야 한다 . 다양한 소그룹을 통해 회원들간의 연대를 강화하고 친목을 도모하면, 궁극적으로 카페 분위기 또한 아늑하고 편안한 곳, 자꾸 오고 싶은 곳으로 발전할 수 있을 거라 본다.


문화는 특정 일부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는 문화의 소비뿐만 아니라, 문화의 생산의 측면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평범한 소시민들, 다수의 아마추어들이 주연이 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이 직접 공연을 하 고 전시를 여는 것이다. 문화소비를 장려하는 곳은 많을 수 있지만, 문화창조의 기회를 제공하는 곳은 드물다. 진정한 문화인을 만드는 카페로서, 문충이 이러한 역할을 앞장서서 감당한다면, 우리사회의 문화역량이 조금이라도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문화 창조의 책임을 갖는 진정한 아마추어 문화인들이 문충을 통해 많이 양성되길 기대한다.




2008.6.20

문화콘텐츠 관련 커뮤니티에 요청받아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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