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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비키 Sep 14. 2015

습작의 청춘, 그리고 현재

영화 '건축학개론'

몇 년 전부터 '첫사랑'을 소재로 한 문화 콘텐츠들이 많아졌다. 봄가을, 감성이 풍부해지는 계절에 주로 회자되곤 했던 '첫사랑'은 '해를 품은 달', '응답하라 시리즈', '건축학개론' 등 첫사랑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의 히트에 힘입어, 이제는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주요 소재이자 계절과 상관없이 대중들의 뇌리에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단어가 되었다.


첫사랑. 듣기만 해도 아련한 감정을 마구 일으키는 단어다.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 그 정도가 얼마나 깊었는지는 저마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첫사랑'이란 단어가 불러오는 감정은 대개 비슷하다.


아련함. 그리움. 아름다움.


물론 공통적인 감정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개인의 성격과 살아온 삶이 다르듯, 첫사랑 또한 저마다의 경험에 따라  다른 기억으로 존재한다.


어떤 이에겐 현실 (첫사랑을 하고 있거나 이루어진 경우). 다른 어떤 이에겐 아쉬움. 또 다른 어떤 이에겐 후회. 또 또 다른 어떤 이에겐 아직 먼 나라 이야기. 그리고 누군가에겐 철저히 잊고 싶은 과거.


생각보다 '첫사랑'에 대해 사람들이 공유하는 저마다의 기억은 다양할 수 있다. 사랑의 모습은 제각각인데다, 그 사랑을 하는 주체와 대상 또한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아련하고 그리운 추억만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이 첫사랑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첫사랑'에 대해 공통의 감정을 공유한다. 긴 머리의 청순한 소녀와 숙맥이지만 따뜻한 청년의 모습이 우리 모두의 첫사랑 대상자와 꼭 맞아 떨어진다는 보장도 없는데, 왜 우린 그들의 모습에서 과거의 내 모습을 찾고 있는 걸까.


내 첫사랑은 단발머리 발랄했던 소녀일 수도, 화통하고 유머러스한 청년이었을 수도 있다. 대상이 달라지면 사랑의 모습도 달라진다. 무엇보다 사랑을 했던 주체, 나 자신이 저마다 다르다.


고로 우리의 첫사랑은 모두 다르고 과정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공통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결말뿐.


이처럼 다양한데도 첫사랑은 우리에게 하나의 감정으로 통한다. 햇살이 화창한 봄날만큼 첫사랑을 떠올리기 좋은 계절도 없을 터. 저마다 따뜻한 태양 아래서, 첫사랑과 연관된 첫눈 오던 날을 기억하는 지금의 정서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건축학 개론'을 보는 내내 이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극 중 인물들인 서연과 승민에 나를 대입해보면서, 심지어 친구 승민의 친구 납득이와 승민의 약혼녀 은채에도 이입해보면서.



한 눈에 반해버린 그 아이. 따뜻함이 묻어있던 그 아이.


승민 is...                                                                                                                              

                          

1996년. 건축전공인 승민(이제훈 분)은 20살의 대학 새내기이다. 정릉의 낡은 한옥집에서 순대국밥을 하는 엄마와 사는 승민은 촌스런 외모, 묵묵히 공부만 하는 성실함에, 여자 앞에서는 완전 숙맥인 성격을 가진, 흔히 말하는 전형적인 '범생이'다.


그런 승민이 어느 날 사랑에 빠져버렸다. 건축학 개론 수업을 듣던 어느 날, 승민의 눈에 건축학과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청순한 외모의 서연이 들어온 것.


지각을 하고서도 당당한 모습부터가 자신과 달랐다. 그런데 마침 집도 같은 방향이다. 게다가 서연이 자신은 음대생이라며 건축학 숙제를 같이 하자고 먼저 제안한다.


모든 게 너무 급작스럽게 다가왔다. 아직 대학생활에 적응하지도 못했는데. 아직 이 청춘의 시기를 어떻게 살아갈지 감도 안 잡혔는데.



서연 is...


방송반 선배의 추천으로 건축학 수업을 듣게 되었다. 피아노 전공인데 왠 건축학일까 하는 마음은 없었다. 좋아하는 선배의 얼굴을 잠깐이라도 볼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토록 바랬던 서울에 왔지만 서울은 자신에게 냉랭하다. 같은 과 친구들은 자신을 시골뜨기 취급하며 왕따 시키기 바쁘고, 어디에 살아야 할지 거처도 아직 없다.  넓디넓은 서울은 황량한 겨울 같았다.


그런데 왠 남자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말주변도 없어 보이고 눈도 제대로 못 맞추는 아이. 촌스러운 외모에 집도 정릉이란다.


그런데 그 아이, 제주도를 닮았다. 시린 마음을 녹여주는 고향 제주도처럼, 이 아이는 포근한 온기를 전하는 재주가 있었다. 본인은 그걸 모르는 것 같지만.


그래서 먼저 그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처음엔 추운 내 맘을 녹이고픈 생존본능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수줍게 웃음을 지어 보인다.


이 감정을 어찌해야 할까. 아직 서울생활에 적응하지도 못했는데. 아직 외롭고 추운 마음을 완전히 해동시키지도 못했는데.                         


                                                   

20살, 갓 성년이 된 승민과 서연에게 사랑이 시작되고 있었다. 언제부터 두 사람의 마음이 같아졌는지는 두 사람도, 영화를 보는 관객도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한눈에 반한 것인지, 서서히 맘이 녹기 시작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제 막 시작한 이 낯설고 당황스러운 감정 앞에서 그들이 겪는 혼란이다.


"첫사랑이 원래 잘 안 되라고 첫사랑이지, 잘 되면 그게 첫사랑이냐? 마지막 사랑이지."라던 납득이의 말처럼, 첫사랑 앞에선 누구나 헤매기 마련이다. '처음'이니까.


무엇이든 처음 시작하는 것을 능숙하게 하기란 어렵다. 상대적인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나 자신 스스로를 비교해 봤을 때는 불가능하다. 그것도 '사랑'이라는 쌍방 교감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감정 앞에서는  더욱더.



처음이기에 헤맬 수밖에 없는, 서툰 사랑.  


승민은 정신없이 헤맨다. 어떤 헤어스타일을 해야 할지 몰라 무스를 잔뜩 발랐다가 다시 머리를 감고,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했다가 아침 등굣길 전에 급하게 티셔츠를 빨아달라고 엄마에게 조른다.


서연이 했던 사소한 말 하나하나가 무슨 뜻인지 몰라 납득이에게 물어보고 다음 스텝은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구한다. 고백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해야 한다면 언제 어떻게 해야 폼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이 모든 것에 능숙하게 대처할 수 없는 건 사실 납득이도 마찬가지다. 연애 박사인 마냥 이렇게 저렇게 조언을 해주지만, 납득이의 조언 자체도 웃음을 자아내는 풋풋함 그 자체다. 납득이의 조언 앞에서 관객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것은 납득이의 말 또한 어설프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어설픔을 우리 모두 겪어왔기에.


서연은 서연대로 헤맨다. 게스 짝퉁 티셔츠를 입은 승민이 꼭 제주 시골뜨기인 자신의 모습 같아서, 서연은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연다. 생일을 알려주고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함께 듣는다. 승민이 좋아하냐는 선배의 말에 애써 아니라고 얼버무리면서도 차에 내려서 황급히 걸어가는 승민의 뒷모습을 눈으로 간절하게 쫓는다.


잠을 핑계로 승민의 어깨에 살포시 기댔을 때 느껴지는 설렘. 하지만 자신이 깰까 봐  조심조심했던 승민의 첫 키스에 터질 것 같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어 화장실을 핑계 대는 모습은 건축학개론 시간의 당돌함과는 거리가 멀다.


술에 잔뜩 취한 상황에서도 한때 좋아했던 선배의 강제 입맞춤을 거절할 만큼 승민을 향한 마음이 확실해졌음에도. 첫눈을 함께 보자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먼저 말하는 용기를 가졌음에도. 서연은 자신을 떠나려는 승민을  붙잡기는커녕 허무하게 떠나보낸다.


그 순간 그토록 당당했던 그녀 자신은 없었다. 그것은 처음 찾아왔던, 그랬기에 서연 자신이 서투를  수밖에 없었던 사랑이에 그랬다.           

                                                                                                      

                                                                                                               

그래서 첫사랑은 실패하기 쉽다. 어쩌면 승민과 서연 둘 다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아이들은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그리도 열심히 들었는지도.


해피엔딩을 간절히 꿈꾸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미 깨달았을 것이다. 처음이기 때문에. 서툴기 때문에. 과정이 어떠했든 결단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에도, 사랑의 결단을 내리는 것에서 그들은 아직 미숙하니까 말이다.


이 사람이 두 번째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처음의 미숙함을 연습 삼아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았을 텐데.


왜 하필 너는 첫사랑이니. 왜 하필 내가 가장 미숙할 때 나타난 거니. 왜 내가 이 중대한 결단을 앞에 두고, 미숙함 때문에 모험과 도박을 하게 만드니. 하필 너에게. 간절히 해피엔딩을 바라는 대상인 너에게.


                                                                                                                                                                            

그들의 미숙했던 사랑은 결국 끝났다. 오해였는지 아닌지도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그들은 헤어졌다.


어이없는 오해와 지극히 사소한 착각에도 허무하리만치 쉽게 흔들리는 사랑이라... 그것은 서로에 대한 마음이 작아서가 아니라 '처음'이어서 서툴었던 탓이었음을, 당시의 그들이 전혀 몰랐다해서 어리석다고, 미련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직 단단한 껍질을 옷 입지 않은 어린 새싹처럼, 여린 풀잎 같던 승민과 서연의 첫사랑은 송송송 내리는 첫눈에 씻겨 가버렸다. 대신 그 자리엔 자신들의 첫사랑을 이어줬던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시디가 놓여있었다.



시, 소설, 그림 따위의 작법이나 기법을 익히기 위하여,
연습 삼아 짓거나 그려 봄. 또는 그런 작품.



국어사전에 정의되어 있는 '습작'의 뜻이다. 결국 첫사랑이란 사랑의 연습이었다. 진정한 사랑의 상대를 만나기 위해 연습했던 과정. 그 연습이 실전이기를 바랬지만 처음이기에 연습일  수밖에 없는 현실과 마음의 충돌 앞에서 아프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습작'이었던 그 사랑에 더 미안하고 아쉬워하는 것이 아닐까.


한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있었다. 아픈데 왜 청춘이라는 걸까. 왜 청춘은 아픈 걸까.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젊음의 시기에 우리 대다수가 아팠다고 기억하는 건, 그 시절에 겪은 대부분이 '처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랑도, 꿈도, 때로는 우정도 습작으로 가장 많이 남겨둔 시절이 그때였기 때문에, 우린 청춘을 아팠다고 말한다.


미완성이었기에 실패도 많았던 시절. 설령 사랑을 하지 못한 채 그 시절을 흘려보낸 사람들도, 바로 그 때문에 그 시절을 습작품으로 남겼두었을 것이다. "사랑을 왜 못했을까, 다시 오지 않을 청춘이었는데"라는 아쉬움이 묻어난 습작으로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청춘은 너 나할 것 없이 아팠다. 우리가 공유하는 '첫사랑'에 대한 감정은 아마도 이것일 테다.



그럼에도 습작은  계속된다.  


16년이 흘러 2012년. 풋풋했던 20살의 청춘은 더 이상 없다. 대신 부잣집 사모님이었다가 이혼한 서연과 이제 곧 결혼을 앞둔 승민이 서 있다. 16년이라는 세월을 지나오면서 늘어난 얼굴의 주름만큼, 이들 인생에서 능숙함이 차지하는 자리도 더 커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습작을 한다. 서연은 결혼을 습작으로 만들었고, 승민은 약혼녀냐 첫사랑이냐라는 초유의 선택을 직면하게 되었다. 대체 왜 아직도 삶은 습작인 건지.


         

첫사랑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때의 습작을 토대로 이젠 완성품을 만들고자 승민을 찾아왔던 서연의 선택은 또 다시 습작이 되었다. 첫사랑의 습작을 경험 삼아 결혼은 잘 하고 싶지만 그마저도 빡빡한 경제사정 때문에 승민의 결혼 또한 습작이 될 위기를 맞는다.


습작이었던 서연을 다시 붙잡아서 제대로 완성품을 내는 것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원래 계획대로 힘든 재정상황을 안고 은채와 결혼해야 할까.


무엇이 옳은 것인지 알 수 없기에 여전히 삶에서 습작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습작일지 아니면 완성품이 될지는 시간이 흘렀을 때만 알 수 있을 거다. 그래서 지금은 자신의 선택이 습작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묵묵히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건축학 개론'은 서연이 승민이 지어준 자신의 집에서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을 듣는 것으로 끝난다. 첫눈 오던 날 끝나버린 사랑을 아파하며 서연 자신이 놓고 갔던 전람회 CD와 시디플레이어는 승민을 통해 다시 그녀에게 돌아왔다.


'기억의 습작'을 다시 듣기까지 무려 16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승민은 혼자서 그 음악을 얼마나 들었을까. 엇갈리긴 했지만, 승민도 결국 첫눈 오던 날 약속 장소로 갔었다. 거기서 습작이 되어버린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며 아쉬워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때 어긋난 사랑을 복구하려고 시도하지 못했다. 어쩌면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것을, 승민은 첫사랑을 그냥 습작으로 남겨두었다.


정확한 이유야 승민만이 알 수 있겠지만, 우리는 추측할 수 있다. 습작으로 남았지만 그랬기에 그 사랑을 기준으로 둘 수 있는 것. 완성품이 완성품인 것은 습작과정을 거쳤기에 가능함을 우리는 안다.


비록 서툴렀고 그래서 아팠지만 그 결과물인 습작의 사랑을 기준 삼아, 앞으로 자신의 삶은 보다 완성품에 가까운 사랑을 하겠다는 승민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우리 모두 승민과 같은 바람을 품으며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그것이 사랑이 아닌 다른 것이라도. 인생에서 습작이 없는 분야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말이다.


많은 관객들처럼 나 또한 극장 문을 나설 때 맘이 싱숭생숭했었다. 내 인생의 과거 어느 순간에, 나도 누군가에게 싱숭이였고 생숭이였을려나.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도 싱숭이와 생숭이는 분명 있었다. 이젠 이름조차 희미한 사람도 있지만, 어쨌거나 그들 덕분에 나도 습작의 시간을 겪었다.


그리고 지금도 난 습작의 삶을 살고 있다. 언젠가 습작 단계를 지나  완성품을 보게 될 날이 올진 잘 모르겠지만, 승민과 서연처럼, 하루하루 지금 이 시간을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 내게 주어진 현재의 몫일 터. 이 시간이 습작이 될지 완성품이 될지는 훗 날이 되어봐야 알 일이다.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오랜만에 들으니 더 반가웠다. 제목과는 달리, 이 곡은 절대 습작이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최고의 완성품 중 하나라는 것이 더욱 명확해지는 명곡이다.


전람회 '기억의 습작' (건축학개론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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