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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아비키 Apr 09. 2018

안 될 것 같은 것을 '상상'하는 재미

학창 시절의 스타들, 그리고 21세기 일반인 유튜브 스타의 탄생


아침에 포털 메인에서 스타 유튜버 관련 기사를 봤다. 그리고 밤에 이 기사가 다시 생각났다. 

(스타 유튜버 '화면 밖으로'…팬 미팅 '아이돌 버금'



3년 전이라면 모를까. 2018년에 이런 기사는 10번은 족히 우려냈을 사골국물처럼 진부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MCN 시장은 이미 3년전에도 바뀌고 있었고, 2년전에는 신규 비즈니스 발굴에 한창이었고, 작년에는 한 두개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고, 올해는 그동안 쌓은 데이터를 가지고 저마다 속도를 달리하며 분화하는 중이지 않나. 그 과정에서 크리에이터 중심의 비즈니스는 전체에서 일부로, 여러 옵션 중 하나로 중요성이 살짝 덜해진 감이 있고. 


물론 이는 바꿔 말하면, 그만큼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 다시 말해, 이 시장에 뛰어든 이들이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각자의 필살기를 장착하기 시작했다는 뜻과도 통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론 긍정적인 의미와 통한다. 그리고 다양한 시도가 가능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업계 각 종사자들이 희망하고 꿈꿨던 저마다의 '상상'을 힘든 현실 속에서도 도태시키지 않고 잘 지켜낸 데에 있다. 


각자의 상상이 잘 분화하여 현재진행형의 발전적인 시장을 만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스타'들의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이유는, 이들 덕분에 우리가 지속적으로 '상상'하도록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버거운 현실을 돌파하는 힘이 상상이라고 한다면 어린아이와 같은 망상이라고 할 지 모르나, 실제로 우리는 '상상'이 '현실'로 되는 것을 수없이 보며 살아왔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상상과 현실의 전환(switching)을 얼마나 빨리 진행시킬 수 있는가가 혁신의 척도가 될 것이고, 그래서 혁신가들은 상상과 현실을 놓고 누가 더 빨리 전환시키나,하는 경쟁을 벌일지도 모른다. (물론 뻘소리다. 밤에 머리가 아닌, 손이 제멋대로 치는 것이니 넘어가자.)




학창시절의 글로벌 스타들과 그 때의 기억들.


아침에 기사를 읽었을 때, 어릴 적 스타들이 생각났다. 내가 최초로 접했던 '글로벌' 스타들은 초딩시절(엄밀히는 국딩시절)의 홍콩 영화배우들이었다. 남자애들은 주윤발, 여자애들은 장국영과 유덕화로 갈리던 그 시절, 나 또한 장국영을 좋아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우리나라 배우들도 홍콩애들이 좋아할까?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 배우들 사진들도 홍콩애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초딩 3-4학년때의 생각이다. 어쩌면 내가 대중문화콘텐츠의 '한류' 또는 문화수출을 고민하던 건 그때부터 싹텄는지도 모른다. 당시 <사랑이 꽃피는 나무>, <우리들의 천국> 등 대학물의 흥행으로 청춘스타들이 인기를 구사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말쯤, 중학생 언니오빠가 있는 친구들이 팝송테이프를 가져와서 들려줬다. 맏이인 나는 순진하게도(?) 그때까지 주구장창 동요랑 클래식(!!)만 듣던 '의외로 착한(!)' 어린이였다. 원래부터 가수보다 배우를 좋아했던 것도 있고(아마도 나는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캐릭터를 좋아하는 성향을 지닌 것 같다), 클래식은 개인적인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 거니까 그건 패스하자. 물론 소방차, 박남정, 김완선 등 80년대 가수들 노래를 일부 알기는 했지만 열심히 듣던 팬은 아니었다. 사실 이들 노래는 당시 어딜기나 흘러나왔으니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던 곡이었다.


여하튼 그래서 친구들 덕분에 가요보다 팝을 먼저 접한 나는 그때부터 팝 덕후가 되었다. 정확히는 보이그룹, 더 정확히는 '뉴키즈 온 더 블럭' 오빠들 덕후로. 세상에! 이런 오빠들이 있다니!!!

그들 노래 뜻은 몰랐다.  하지만 그들 노래에는 전체적으로 세련됨이 철철 넘쳐 흘렀다 ! 스텝 바이 스텝을 부르면서 앳된 5명이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에 당시 나는 상당히 심한 문화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중딩 시절에 서태지가 나올때도 무덤덤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겐 뉴키즈 오빠들의 임팩트가 너무 컸다. )
 
겉모습은 앳된 편이었지만 정신적으론 상당히 조숙했는지, 나는 초딩 4-5학년 즈음 '정신적 사춘기'에 접어들어 있었다. 그 근거는 반 남자아이들이 너무 유치해보여서 같이 놀 수가 없었고,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 몇몇 여자아이들과 뉴키즈 오빠들의 책받침 브로마이드를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던 것을 들 수 있다. (물론 여전히 장국영도 좋긴 했지만, 그가 우리 엄마와 같은 나이라는 것이 너무 충격이어서 한동안 힘들었다.) 


(참고로 뉴키즈 온 더 블럭은 당시 세계 최고의 인기를 구사했던 그룹으로, 이미 우리나라는 80년대에 가요 시장이 자리잡아가고 있었음에도 예외적으로 해외 아티스트이면서 국내 음반판매량 순위를 휩쓸었다. 1992년 내한공연 당시, 압사사고로 여고생 1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10대 아이돌 문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대두되기도 했다. 


당시 여고생 사망사건으로 전 사회에서 연예인에 빠지는 청소년 심리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일어났으나, 60년대 이화여대에서 해외 록그룹 스타의 공연에서 여대생이 속옷을 던지는 사건이 발생했던 사례와 비교되면서 청소년들 특유의 심리 내지 문화적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결국 설득력을 얻게 되면서, 이를 계기로 조금씩 사회가 청소년 문화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분위기가 싹트기 시작했다. 


뉴키즈 온 더 블록은 93년 '서태지와 아이돌', 96년 'H.O.T.' 등장으로 이어지는 국내 '팬덤 문화'의 시조격이었으며, 일본의 SMAP, 한국의 H.O.T., 미국의 Back Streetboys, N'Sync 등 후대의 대표 보이그룹들이 주로 5인조로 결성되는 기준을 세운 그룹이기도 하다.  --> 글쓴이의 기억으로 붙인 주석이므로 틀린 부분도 있을 수 있음.)


장국영에 이어, 내가 두 번째로 좋아했던 글로벌 스타. 

그때 또 난 그런 생각을 했었다. 


"우리나라 가수들도 외국에서 좋아할까? 우리나라도 뉴키즈같은 그룹이 나오면 좋겠는데. 소방차는 너무 나이가 많잖아. 근데 우리나라는 뉴키즈같은 그룹이 나오려면 학생들이 가수해야 하는데, 학교다녀야 하니까 안되겠지? 슬프네. 하긴 백인도 아니니 외국에서 인기얻는 건 어렵겠다." 


글로벌 최초의 보이그룹 5인조 <뉴키즈 온더 그룹>.


시간이 흘러 고딩 3학년 수능을 앞두고, 야자시간에 우리는 신문을 돌려보며 쑥덕거렸다. 한반에 여고생 50명이 넘게 모여있는 장소는 상큼하고 우아할 거라는 상상은 우주로 던져버려라. 세상에서 가장 우악스럽고 무서울 것 없는 괴팍한 집단 2위가 여고생 집단이다.  1위는 여중생 집단. 난 그런 여중, 여고 출신이다.


당시는 신문에 신작영화 개봉광고가 나오던 시절이었다. 2017년, <옥자> 개봉으로 넷플릭스와 멀티플렉스 3사가 갈등했을 당시, 독립극장들이 개봉하자 오랜만에 신문에 옥자개봉 광고가 등장했었다.  30대 후반만 되도 이런 광고는 한 번쯤 봤을 거다. 

<옥자> 신문광고. 그런데 꼭 이런 신문광고방식이 옛날방식만은 아닌 것 같다.  
나니아연대기(2005) 개봉때도 신문광고를 했었다니! 생각보다 영화의 신문광고 역사가 길다는 걸 알았다. 
2016년 미국에서도 비슷한 신문광고 사례가 있었다. 그것도 그 유명한 <왕좌의 게임>이다. 물론 영화는 아니지만, 방송채널이  신문광고를 하는 건 더 신선하다.  


고딩 시절, 그 괄괄하던 여고생들, 더구나 수능을 앞두고 스트레스가 절정으로 오르던 모두의 마음을 흔들던 "죄많은 남자"는 "미의 기준이 절대적일 수 있음"을 보여주던 영원한 나의 오빠, 디카프리오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티저이미지 한 컷에 우리 모두는 신문을 돌려가며 광분했고, 한 번씩 그 신문을 가슴에 품으며 오빠를 외쳤다. 그 때 난 이렇게 생각했다.

"우리나라 배우들을 외국에서 이렇게 좋아한다해도, 미의 기준을 레오 오빠처럼 완벽하게 바꿀 수는 없을 거야. 적어도 비주얼은 이 정도여야 세계적 배우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


사실 이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비주얼도, 연기도, 난 여전히 디카프리오가 제일 멋있다. 물론 연기는 잘하는 사람들은 워낙 많지만. 

그런데 디카프리오를 보며 상상하던 사이, 어릴 적 뉴키즈를 보며 생각했던 상상이 가수 쪽에서는 현실화되어가고 있었다. H.O.T.의 등장! 당시는 글로벌 스타는 아니었지만, 우리나라에도 뉴키즈같은 보이그룹이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시도였고, 십대들은 열광했다. 갓 20대에 접어든 나도 열광했다. (그리고 이들은 2018년 3월에 TV프로그램 <무한도전 토토가3>을 통해 무려 17년만에 공연을 했다. 처음에 우려가 더 컸던 이들의 무대는 현역 때의 모습과 거의 비슷한 완성도를 선보여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 여파로 H.O.T는 2018년 10월에 '정식 콘서트'를 한다고 발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배우들이 아시아권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우리나라 가수들과 배우들이 경쟁이라도 하듯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으며 한꺼번에 '글로벌 스타'로 쑥쑥 퍼져갔다. 


초딩시절의 홍콩스타들, 중딩시절의 뉴키즈, 고딩시절 디카프리오를 보며 상상했던  것들--  우리나라의 스타들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스타가 될 수 있을까,  국력이 작아도,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은 동양인이라도, 영어를 쓰지 않는 변방의 작은 나라 한국의 언어를 쓰는 사람이라도, 과연 글로벌 스타가 될 수 있을까, 라고 상상했던 것들은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조금씩 현실로 되어가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아마도 미디어/콘텐츠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던 것 같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제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교차하는 시기.

지금이 상상할 때.


어릴 때 내가 했던 생각은 '의심'이 아니라 즐거움이 수반된 '상상'이었다. 당장 나와는 상관없을 거 같은 망상처럼 보였어도, 그냥 생각만으로도 즐거웠던 상상. 


많이 생략했지만 학창시절에 나는 무수히도 많은 상상들을 하곤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상상들은 그 당시엔 언감생심이었던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이 실재화되어 진행중이다. 개인적인 삶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미디어/콘텐츠 산업에서도, 글로벌 환경에서도. (물론 아닌 것도 많다.)  


그런데 정작 미디어 업계로 들어오고 나서는 많은 상상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최대한 현실가능성을 고려하다보니 즐거운 상상은 사라졌고, 그래서 상상 이상의 일들이 발생하면 먼저 놀라는 것부터 시작한다. 


"일반인이 톱스타로 성장하고, 나아가 글로벌 스타로 우뚝 선다!"

그것도 SM, YG, JYP 같은, 아니 이들이 아니어도 좋다. 마이너 소속사라도 있어서 특별 관리를 받은 거라면 모를까. MCN이라 불리는 매니지먼트 기업이 있다해도, 이들 기업은 연예기획사처럼 크리에이터들을 처음부터 전략적으로 띄우는 곳이 아니다. 기업은 이들에게 일부 조언을 해줄 뿐, 기본적으로 파트너쉽을 맺고 비즈니스를 함께 한다. 스타로 뜨는 것은 각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헤이지니는 조금 다른 케이스지만).

2010년 이후부터 미디어의 영향력을 논할 때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제는 TV 시대는 갔고, 디지털 미디어 시대"라는 것이 모두의 공통된 전제가 되곤 한다. 하지만 TV 시대가 갔다고? 천만에! TV와 스타가 만나면, 디지털과 스타가 만났을 때의 파급력과는 비교할 수 없다.  H.O.T의 콘서트, 젝스키스의 재결합 등 1세대 아이돌 그룹들이 재 활동하는 데에는 TV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활동 당시의 인기도, 그리고 재결합을 이끌어낸 현재의 인기도, 모두 TV였다. TV의 영향력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그리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사라진 시장을 '재건'하는 부분에서도 탁월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여기에 위의 '신문광고' 사례까지 더하면, 레거시 미디어는 아무리 이빨빠진 호랑이 같아보여도 호랑이는 호랑이다.


물론 예전처럼 중심축이 '미디어'에 있지 않고, '스타'에 있긴 하다. '스타'가 어디에 나타나느냐에 따라 그 미디어의 영향력은 달라진다. TV 시대에는 'TV'에 나오면 스타가 되는 구조였다. 즉, 엄밀히는 TV 시대가 간 게 아니라, '미디어 중심 시대'가 간 것이다. MCN 시장의 부상이 이를 증명하지 않나?  TV만큼은 아니더라도, 디지털 세상에서 새로운 문화와 신규 시장을 만들어낸 건 MCN 채널들이었으니 말이다.


철저히 개인의 역량에 기대서 스타가 탄생할 수 있는 시대?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는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 이후 거대 산업으로 발전한 상황이었기에, 이런 시대가 도래할 거라는 상상은 쉽지 않았다. 시스템과 자본을 배제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기에 그랬다. 


그런데 기술을 간과했다. 기술이 접목되면 시스템과 자본이 기술 뒤에 숨을 수 있고, 그래서 온전히 '개인'(1인)의 역량이 돋보이는 시대가 올 거라는 걸 상상해 보지 않았었다.

그 사이 디지털 기술은 발전했고, 동영상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보다시피, 옆집에 사는 이웃들이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 스타로 뜨는 시대가 됐다. BTS, EXO에 비해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그게 뭐 어떠랴. 어차피 인기라는 건, 각자의 팬들에게 얼마나 깊고 오래 소구하느냐에 달린 것인데.

그래서 진부하다고 느껴질 수 있었던 기사는, 오히려 지난 20-30대 상상을 접고 살던 시간들을 반성하게 만든다. 그리고 다시 상상해보고 싶게도 만든다. 그래서 아침에 슬쩍 훑어봤던 기사가 이 밤에 다시 생각났는지도 모르겠다. 잠을 청하려다가 갑자기 기사를 검색해서 본 것의 이유는 이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실제론 나도 그 이유를 모르니까.)


마침 지금은 새로운 기술, 새로운 제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물밀듯 들어오는 시기다. 지금은 안된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몇 년 후에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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