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아비키 Apr 12. 2021

우주와 블랙홀, '상상'이라는 변수

상상의 힘, 인간에게 부여된 감사한 특권

어느덧 2021년의 4월 중순이 되어간다. 시간이 빠르다는 것은 하루 이틀 느끼는 부분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늘 시간의 빠름 앞에 감탄과 허탈의 경계를 넘나드는 추임새를 뱉지 않을 수 없다. "시간 참 빠르네!" 라는.


2년 전이던 2019년 4월 10일을 기억하는가. 어떤 이들에게는 특별한 날이었을테고, 어떤 이들에게는 잊고 싶은 날, 그리고 대다수인들에게는 그저 그런 평범한 날이었을 거다.


인류사적으로는 2년 전 이 날, 매우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던 날이다. 인류가 드디어 블랙홀 촬영에 성공한 것이다.

출처: 동아사이언스 (http://m.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27994)

이 소식을 접했을 때 과학도가 아님에도 굉장히 설렜던 것은 8살 때 만화잡지(!)에서 '블랙홀의 신비'를 읽고 강렬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 때문이었다.


호기심이 많은 성격 덕분에 어릴 때 닥치는대로 책을 읽었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야 중 하나는 '우주 과학 서적들'이었다. (어린 아이의 특성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우주과학 책을 읽으면서 공상, 망상 가릴 것없이 다양한 상상의 나래를 자연스럽게 펼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블랙홀은 만화잡지에서 읽었다는 거! ㅋㅋ)


당시 봤던 애니메이션들(그 시절엔 다들 '만화영화'라고 불렀다)이 <은하철도 999>, <독수리 오형제>, <우주 소년 아톰> , <메칸더 브이>, <2020 원더키디> 등 우주 여행과 관련된 내용들이 많았던 것도 있겠고.

그 중에서도 기억나는 건, 초등학교 1학년 생일선물로 막내 이모가 사준 월간만화잡지 <보물섬> 이었다. 만화잡지이지만, 당시 <보물섬>은 과학, 우주, 고고학 등과 관련된 기사들도 제법 실렸던, 나름의 교육적 효과도 지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받은 <보물섬>에 이 '블랙홀'에 대한 내용이 실렸더랬다. 8살 인생에 처음 들어본 단어였으나, 지금도 생생하게 그때의 감정이 기억날 정도로 나는 당시 '블랙홀'에 강렬히 빠져들어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었다. (<보물섬>으로 시작했던 이 경험은 초딩 고학년이 되던 4-6학년 때 정기구독했던 <새벗>에서 과학-상식-호기심으로 연결됐고, 고3-대1 시절에 <과학동아> 구독으로 이어졌다. 이들 잡지들은 매 월호가 재밌었으나, 나는 블랙홀을 다룰 때가 특히 재미있었다. 이래서 첫 경험이 중요한 가보다.ㅋ)


초딩 시절, 인생의 첫 월간지 <보물섬>
엄마를 졸라서 구독했던 <새벗>, 정기구독은 아니었으나 2년간 매월 샀던 고딩시절의 <과학동아>. "그 잡지들을 모아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미지 출처는 구글.



다들 비슷하겠지만, 어릴 때는 우주선을 타고 돌아다니는 상상을 수도 없이 하곤 했다. 그러나 그 때마다 항상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블랙홀'이었다. 허공처럼 보이는 공간의 어느 부분은 블랙홀일 것이라는 상상에 빠져, 어느 순간에는 '우주하면 블랙홀'이 자동 연상되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어린 시절 내가 접한 블랙홀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영화 <인테스텔라>에서처럼 '시간의 상대적 효과가 존재하는 곳'으로 받아들였더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8살 아이에게 블랙홀은 '글자 모양'이나 '발음 소리'만으로도 뭔가 무시무시했다.


"블랙홀은 색깔도 없을 테니 깜깜한 우주 공간에 있어도 구분이 안 되겠지? 그러면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비행하다가 보이지도 않는(우주 공간처럼 보이는) 블랙홀을 만나면 영영 그곳으로 빨려들어가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당시 나는 "무엇이든 빨아들인다"는 개념과 "빛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곳"이라는 개념이 너무도 무서웠다. 물론 빛도 빨아들인다는 것이 대체 무슨 개념인지 이해했을리는 만무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다. 위험한 것에 끌리는 인간의 심리 때문이었을까.


그 중에서도 나는 특히 '보이지 않는다'는 부분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이 내용 때문에 나는 블랙홀을 생각할 때면  '공포심'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호기심'이라는 상반된 감정 때문에 내적 갈등을 겪어야 했다. (만화영화 광이었던데다가, 당시 우주 만화들이 인기였던 시절의 영향 덕분이었겠지만, 나는 그 시절 내가 크면 '우주선을 타고 다니는 과학자' 또는 '우주 괴물로 부터 지구를 지키는 정의의 사도'가 될 줄 알았다.)


별을 흡수하는 블랙홀 (출처: ESO. 유럽남방천문대)



다행히도, 블랙홀에 빠질 가능성은 커녕,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갈 일은 내 평생에 거의 (실제로는 100%) 불가능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나이가 되자, '블랙홀'에 대한 나의 공포심은 사라졌다. 하지만 '호기심'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도 상당히 강렬하게.


"한 번 쯤 사진으로라도 보고 싶다"는 열망이 내 안에 있다는 건 천체과학 관련 사진이나 자료, 기사, 영화 등을 접할 때 마다 알 수 있었다. 우주사진, 하다 못해 일식/월식 등이 발생할 때면, 이상하게 '블랙홀'이 자동적으로 생각났으니까.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블랙홀이냐고 말할 정도로, 그냥 자동적이다.)


우주하면 블랙홀.

천체과학하면 블랙홀.

은하계하면 블랙홀 등.


그냥 지구 바깥의 공간을 생각할 때면 이놈의 '블랙홀'이 떠올라서 모든 천체들을 '블랙홀처럼' 집어 삼켰다. 가끔씩은 블랙홀을 블랙홀하고 싶을 정도로.


그런 블랙홀이 드디어(!!!!!!!!!!!!!!!), 공개됐을 때 심정이란 차마 글로 표현하기 힘들다. 2년 전 나는 전 세계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이 사실에 도취되어, 몇 날 며칠을 내적 흥분 상태로 보냈었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당시 왜 그리 혼자 설레어했을까. 내 안에, 어린 시절 <보물섬>을 보던 어린 아이의 마음이 여전히 크게 남아 있다는 것을 그때 한 번 더 확인했던 것 같다.^^


2019년 4월에 공개된 블랙홀 사진. 당연히 흥분을 넘어 광분했던 기억이 있다. 며칠동안 잠을 못자고 관련 자료를 찾을 정도로.


"너무 멀리 떨어진 거리라 촬영이 불가능한 것을, 8개 장소의 대형 망원경을 연결한 '지구크기(!)'의 가상망원경을 활용해서 촬영/보정한 것". 


이 한 줄의 기사만으로도 놀랄 포인트가 몇 개인지 모른다. 사진은 실체를 확인한 거라 놀라웠지만, 촬영방법을 설명한 그 한 줄의 텍스트는 놀라움+상상력을 자극하는 강렬한 문구로 다가왔다.


"지구 크기만한" 가상의 망원경.

8개 장소의 망원경을 '연결'하는 것.

5천5백만 광년 거리.

그리고  태양질량의 65억배 무게와,
지름 160억 km의 크기.


텍스트로 받아들인 이 내용들이 만약 실제 비주얼로 구현된다면 어떤 느낌일지 가늠도 안되지만, 그래서 무한 상상이 가능해지는 부분도 있다.  


4월 11일 첫 관측된 M87 블랙홀과 태양계와 크기 비교 (출처 EHT)


개인적으로 "우주만물은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래서 조물주의 창조가 너무도 경이롭고, 또 절대 인간으로서는 광활한 우주공간을 다 알 수 없음을 확인하면서 인간이라면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 겸손해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이기에 부여받은 '생각하는 능력'과 '상상력'의 선물을 활용하여 블랙홀을 촬영해 낸 전세계 과학자들의 연구 소식에 괜히 가슴이 벅찬다.


그런데 덧붙여, 40년전 상상으로 블랙홀을 그렸는데 그 그림이 실제 블랙홀과 비슷하고, 그 그림을 만들기까지 손으로 수천개의 점을 '직접' 찍어서 만들었다는 한 줄 설명을 읽고 또 한번 놀랐다.


상상의 힘이란 참 놀랍지 않나!

우리는 허황된 생각을 '공상'이라고 하며,

잘못된 생각을 '망상'이라고 한다.


공상과 망상이 부정적 의미만을 지칭하는 것과 달리, 상상은 긍정적 부분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새로움을 추구하고 발전을 가져오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상상은 즐겁고, 상상의 힘은 무궁무진하며, 상상이 가져오는 결과는  대체적으로 발전적이다.


상상을 공상이나 망상으로 만드느냐, 현실 속 발전으로 만드느냐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하신 특권이다. 상상을 할 수 있는 덕에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달리 끊임없는 발전을  이루어왔으니까 말이다. (반면 이러한 상상의 힘을 망상의 결과로 만드는 사례가 많은 것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 탓이다.)


40년전 작성된 블랙홀 상상도. 밤에 보면 살짝 무섭다. 블랙홀은 어쩌면 여전히 공포를 주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40년 전에 상상으로 그린 블랙홀의 그림을 보면, 인간의 상상력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작업을 했을 과학자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부터 해서, 40년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작업과정 현장을 실제로 본다면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본다.


블랙홀 사진이 공개된  밤부터 며칠동안, 블랙홀 때문에 별별 상상을  했더랬다. 과학은  모르는 문과출신이지만, 우주, 천체, 행성, 그리고 블랙홀은 언제나 나를 흥분시키는 단어다. ^^



#블랙홀 #blackhole #우주 #기록 #천체물리학 #과학 #상상의힘




PS)
당시 저 블랙홀 사진을 활용한 로고나 캐릭터 디자인은 앞으로 많이 나오겠다 싶었다. 그 이후 찾아봤더니 역시나 많은 로고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예쁘진 않더라. 바람개비도 아니고, 무슨 사이비종교 같은 느낌의 로고들만 가득했다. 하긴, 블랙홀 로고가 예쁜 것도 이상하겠다 싶다. ㅋㅋㅋ (궁금하다면 블랙홀 로고로 구글링해보기를!)




**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라이크/ 공유/ 구독을 눌러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지상파채널의 지상파로서의 역할과 가치 상실에 대한 비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