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철없는 어른이의 반성의 기록
이 글은 철없는 40대의 반성의 기록이다. 그러나 두서없이 페북에 폰으로 쓴 글을 살짝 가다듬은 거라, 내용은 중구난방이다. 평소 딱딱한 글만 쓰던 내 브런치에서는 드물게 블로그형 글이기도 하고.
여튼, 그냥 수다떨듯 썼다고 봐 주시면 좋겠다.^^
일 년 반 된 아이폰11의 후면 카메라가 나갔다. 2주 전 폰을 떨어뜨렸으나 괜찮아 보였는데, 일주일 후에야 카메라가 망가진 것을 발견했다. 평소 기기는 거의 고장을 안 내는 편이라, 아이폰은 후면카메라가 자주 나간다는 것도 이번에야 알았다.
돌아오는 주말에 공식 센터 예약을 해둔 관계로, 카메라 없이 일주일을 더 버텨볼 예정이다. 이상한 게, 평소에 잘 안찍다가도 이럴때면 꼭 찍을 일이 많아진다. 업무나 정보 기록을 위해, 풍경이 예뻐서, 조카들이 귀여워서 등등.
어제는 어버이날이었다. 하지만 망가진 카메라 때문에 어제 내 폰으로 찍은 사진은 없었다. 이건 사실 며칠 전 어린이날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동안 모아둔 조카들 사진들이 많은 덕분에 어린이날 기념으로 SNS에 발췌해서 올렸더랬다. ㅠㅠ
생각해보니 조카들이 태어나고 내 폰으로 어린이날 사진을 안 찍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물론 다른 가족들이 워낙 많이 찍었으나, 호구 이모답게 나도 연신 카메라앱을 열곤 했었다.
그런데, 어버이날에는 매년 사진을 찍었던가? 회상하면 할수록 알쏭달쏭하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몇 번은 기념 사진을 빼먹은 것 같기도 하고.
일단 확실한 건 내 사진첩의 90프로는 조카들 사진으로 채워져있다. 심지어 조카들 각각의 폴더도 있다. (사실 나는, 21세기 우리 나라 키즈산업 시장과 우리 사회 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차지하는 '호구이모' 그룹에 속한다!) .
그런데 부모님 사진은 상대적으로 너무 적다. 조카들 사진이 많아지면서 부모님 사진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새삼 피부로 와 닿았다. 엄마 폴더, 아빠 폴더는 당연히 없다. 그나마 비공개 블로그에는 가족 폴더가 있지만, 거기도 점점 조카들 사진이 늘고 있어서, 부모님 사진은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ㅠㅠ
어버이 주일이었던 오늘의 설교 말씀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하나님이 인간 사회에서 주신 첫째 계명"이었다. "대체 왜 하나님께서 이토록 부모 공경을 강력하게 명령하셨는지를 묵상해보라"는 목사님의 말씀이 울림으로 다가왔다.
자녀 사랑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런데 부모공경은 그렇지 않다. 내리사랑이라는 말처럼, 부모는 늘 자식 생각을 하지만, 자식은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게 일반적이다. 반면, 부모공경은 자녀들이 철이 들고 나서야 비로소 필요성을 깨닫고, 자녀들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행동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요즘은 아예 부모 공경을 무시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공산주의를 혐오하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젊은이들에게, 이념 앞에 부모도 스승도 자발적으로 고발하도록 하는, 관계의 파괴를 조장했던 역사 때문이었다. (이러한 가치관은 공산주의 사회에서 지금도 진행형이다.)
비단 공산주의가 아니더라도, 요즘의 시대를 보면, 이와 비슷한 '관계의 파괴 현상'이 자주 보인다. 작게는 '예의의 실종', 크게는 인간일 수 없는 '극도의 패륜'을 우리는 심심찮게 목도하지 않은가.
인간이 개/돼지화 되어가는 시대를 살고 있는 때문인가. 성경이 강조하는 부모 공경의 계명이 더더욱 절실하게 와 닿는다. 성경은 말한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도의적인 게 아니라, "마땅히 그리 해야 하는, 옳은 것". 여기에는 마음 씀씀이는 물론이고, 본인의 여력이 허락하는 한 '물질적으로도' 부모님을 섬기라는 뜻이 내재되어 있다.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 당연해진 시대.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의 도움을 당연시하지만,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은 사라진 시대. 원하는 만큼 지원을 받지 못하면 도리어 원망하는 것이 일반화 된 시대.
몇 년 전 '욜로(YOLO)'가 화두였더랬다. 그 때, 자신에게 투자한 비용과 비교하여 부모를 섬긴 비중은 얼마였을까. 부모를 위해 물질적으로 투자한 평균 비용이 상대적으로 너무 낮게 나온 통계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혹시 우리 모두는, 나 자신에겐 부유하고, 부모님껜 인색하지는 않았는가. 부모에게 인색할 수록 그 인색함은 이웃과 동료, 타인에게로 확장된다. 그리고 인색함이 배어버린 이들은 타인들에게 사랑과 정을 받지 못하는 고립된 삶을 산다. 자신만 모를 뿐.
그래서 베품을 실천하는 첫 번째 단계가 일단 내 부모부터 공경하는 것이다. 부모를 섬길 줄 아는 사람은 이웃과 타인들도 품을 줄 안다.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를 '유지'하며, 스스로에겐 인색할지언정 부모님께는 필요를 채울 수 있는 물질로 섬기고, 외롭지 않게 사소한 것에도 마음을 써드리고.
이렇게 쓰고 보니 더 부끄럽고 찔린다. 난 왜 아직도 어린 아이 수준에 머물고 있는지. 하다 못해 사진첩 속 부모님 사진이 조카들 사진보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도 부끄럽고, 죄송할 따름이다 ㅠㅠ
지난 달 갑자기 편찮으셨던 아빠를 위해 만년필과 노트 선물을 해드렸다. 젊어서부터 워낙 필체가 유려했었고, 은퇴 후에는 서예 공부를 하시더니 상도 몇 개 타오실만큼 아버지는 뛰어난 필체로 유명했다.
덕분에 난 초딩시절엔 이 세상 모든 아빠들은 글씨를 잘 쓰는 줄 일았다. 엄마가 매번 아빠 글씨보고 감탄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아직도 아빠 필체는 다른 이들에 비하면 괜찮은 편이긴 하다. 그러나 지금은 확실히 젊을 때보다 글씨체가 많이 못해지셨다.
아빠는 글도 잘 쓰셨던 편인데, 우리 자매가 약간 그 피를 닮았던 것 같다. 초중고 시절, 나는 글짓기나 논술 대회 등이 있을 때마다 99%는 학교 대표 1명에 뽑히곤 했다. 신문에 글이 나온 적도 꽤 있었고, 대학에선 논술 선생 알바 요청도 많이 왔었더랬다. 동생은 대학가서 글발이 트였고.
그런데 30줄 후반부터는 이상하게 글쓰기가 부담됐다. 그 전에는 얼마나 뭣도 모르고 글을 쓴다고 까불었던 건가 싶어 밤중에 혼자 이불킥한 적도 제법 있다. 또는 나이들면서 자신감이 떨어진 건가 싶어 자괴감에 빠진 적도 자주였다. 석사 끝학기, 아니면 협회시절부터였나. 정확한 시기는 헷갈리지만, 여튼 5-6년 전부터 글쓰는 게 점점 자신없고, 그런데 써야하니 부담스럽고 하는 감정의 요동이 반복되고 있다.
글과 글씨체가 무슨 상관이냐 하겠지만, 아빠의 최근 필체를 보면거 아빠도 나이가 들수록 자신있어했던 많은 것 들에 대해 두려움이 점점 커졌겠구나 싶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시절,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는 미래를 보면서 얼마나 두려우셨을지,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나이든 자기 자신을 보면서 두려움을 넘어 체념과 씁쓸함을 느끼셨겠구나 싶어 괜히 시큰해졌다.
이 글의 초고를 페북에 쓸 때 10분 걸렸다. 사진 넣고 다시 읽어보고 일부 오타 수정한 것까지 넉넉히 30분? 여하튼 폰으로 후다닥 썼다 (물론 브런치에 옮기면서는 조금 가다듬고 있다).
그만큼 생각나는대로 타이핑 하면서 썼으니 글이 중구난방인 건 당연하다. '아이폰 카메라'로 시작해서 '부모님 사진'과 '부모 공경의 당연함', 그리고 세월의 흐름 속에서 맞닥뜨리는 '두려움'과 '씁쓸함'까지, 이 일관적이지 않은 글의 흐름이 웃기다고 생각할 이들이 많을 걸 안다. 나 스스로도 아무리 의식의 흐름대로 쓴다고 해도 그렇지,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거냐" 라고 자문해 볼 정도니까.
굳이 대답하다면,
한 때 자신있다고 했던 글쓰기가 이처럼 어이없게 산만함으로 흐르는 걸 보며,
유려했던 필체가 시들해진 걸 보는 아빠의 씁쓸했을 마음을 일부는 알 것 같다는 것이라고 해야 겠다, 싶다.
부모님 사진이 부족한 것을 반성하는 것으로, 그나마 기특한(?) 깨달음을 얻었다는 사실도 기록하고 말이다.
PS.
어쩌다보니 아버지 얘기만 썼는데, 상대적으로 대화가 적어서 더 죄송한 마음에서다 ㅠㅠ
어릴 때 오마니는 그리 호랑이 선생님처럼 굴었으나, 우리가 성인된 후로는 그저 놀림 대상이셔서 말이다. 여러 작전을 쓰고 있지만, 손주들에게 과자 사주는 할아버지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종이 호랑이 여사님인데, 그만큼 대화도 많이 한다.
아빠랑은 자주 얘기를 못해서 이렇게라도 기록해두어야지 싶었다.
20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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