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하나로 떠난 도시에서 가장 먼저 배운 것
이번 여행은 유난히 급하게 시작되었다. 역대 가장 충동적인 선택이었다. 담이 걸려 며칠 동안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집에만 있기에는 생각이 너무 많아지는 상태였다. 멀리는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완전히 쉬기만 하기도 싫었다. 무엇보다 온천이 하고 싶었다.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조건은 단순했다. 너무 멀지 않을 것, 이동이 복잡하지 않을 것, 가능하면 직항일 것.
그 상태로 챗지피티와 대화를 시작했다. 온천이 있는 도시 몇 곳을 추천받다가, 문득 “직항 있는 곳”을 물었다. 그 질문 하나로 후보지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그때 화면에 낯선 지명이 하나 떴다. 가고시마였다.
이름만 놓고 보면 일본이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일본의 여행지 목록 어디에도 가고시마는 들어 있지 않았다. 익숙한 도시도 아니었고, 막연한 이미지조차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직항이라는 조건 하나가 그 도시를 갑자기 현실로 끌어내렸다. 지도를 확대해보지도 않고, 검색을 깊게 해보지도 않은 채 항공권을 예약했다. 출발 전주였다. 목적지는 이렇게 결정되었다. 추천 알고리즘과 내 귀찮음이 만들어낸 선택이었다.
이 여행에서 말하고 싶은 미숙함은, 흔히 말하는 초행길의 서툼과는 조금 다르다.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하고, 읽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맞닥뜨린 종류의 미숙함이다. 나는 일본어를 말할 줄도 모르고, 히라가나나 가타카나도 읽지 못한다. 다만 그 사실이 여행에서 큰 문제가 된 적은 거의 없었다. 지금까지는 영어가 통하는 지역을 주로 다녔거나, 설령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시스템과 안내가 잘 정비된 대도시를 여행해 왔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를 학습이 빠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설명서나 UX가 제대로 되어 있다면, 처음 보는 기계나 시스템도 금방 이해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배움이 느리거나, 반복해서 질문하는 사람들에 대해 솔직히 공감이 부족한 편이었다. 단순히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보다는,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남에게 의존하는 상태를 특히 불편해했다. “처음이라서 그렇다”는 말도 잘 와닿지 않았다. 처음이라도 구조를 보면 대충 감이 오지 않나, 그렇게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가고시마에 도착한 다음 날,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그 믿음은 깨졌다.
중앙역 근처, 공항버스와 온천 셔틀이 함께 서는 곳이었다. 이미 30분 간격의 버스를 한 번 놓친 뒤였다. 버스 정류장은 분명히 보이는데, 어디서 타야 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표지판은 일본어뿐이었고, 번역기를 켜면 글자는 나오지만 상황은 설명되지 않았다. 이 버스가 목적지로 가는 건지, 반대 방향인지,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정차 구역인지, 그냥 서 있으면 안 되는 공간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이해하지 못한 것은 단지 일본어가 아니라, 이 공간의 규칙이었다.
결정적으로 상황을 블랙코미디로 만든 건 버스 기사였다. 내가 도로 쪽에서 조심스럽게 손짓을 하자, 그는 마치 “여기서 뭐 하냐”는 얼굴로 짜증 섞인 말을 쏟아냈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톤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내가 잘못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나는 황급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가, 사람들이 내리는 것을 보고 이제 타면 되겠구나 싶어 다시 나왔다. 그때 그는 더 큰 짜증으로 무언가를 설명했다.
나는 그 설명을 단 한 단어도 이해하지 못했다. 대신 표정과 제스처로 요지를 추측했다. 아마도 ‘여기서 기다려라’, ‘나오라고 하면 나와라’, ‘왜 네 멋대로 움직이냐’ 같은 내용이었을 것이다. 내가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가, 버스가 떠날까 봐 걱정되어 또 나오자, 그는 거의 화를 내다시피 했다. 그제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전략을 선택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완전히 모르는 얼굴로 서 있었다. 그 태도가 효과가 있었는지, 그는 갑자기 톤을 낮추더니 이제 나오라는 제스처를 했다. 그제야 나는 버스에 탈 수 있었다.
그날의 나는 규칙을 이해하지 못한 어린애에 가까웠다. 평소의 나라면 표지판을 읽고, 구조를 파악하고, 최소한 질문이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번역기를 들여다보며 눈치만 살피는 사람이었다.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든 쪽도, 결국은 나였다.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미숙함은 단순히 ‘처음이라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시스템 안에 있을 때만, 우리는 빠르게 배우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그 바깥으로 밀려나는 순간, 누구나 설명을 못 듣고, 규칙을 오해하고, 남의 지시에 의존하는 사람이 된다. 나는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마자, 내가 평소에 가장 싫어하던 상태에 가장 가까워져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갑자기 모든 미숙함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전만큼 쉽게 판단하지는 않게 되었다. 누군가가 서툴게 질문하고, 규칙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고, 남에게 확인하는 모습을 볼 때, 그걸 의지 부족으로만 치부하지는 않게 되었다. 추천 알고리즘 하나로 떠난 도시에서, 내가 가장 먼저 배운 건 온천도, 풍경도 아니었다.
이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챗지피티의 추천, 직항이라는 조건, 준비되지 않은 선택. 가고시마는 아직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고, 나는 그곳을 굳이 앞당겨 해석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