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이다. 2025년에는 해외여행만 다섯 번을 했고,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비행기를 많이 탄 해가 되었다. 장거리 여행 두 번, 중단거리 여행 세 번. 전문 여행가나 출장이 잦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비하면 특별할 것 없는 횟수지만, 내 삶의 조건 안에서는 조금 잦은 이동이었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이동의 횟수를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이야기할 때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사치’라는 단어가, 나의 경험과는 조금 다른 결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2025년에 내가 쓴 여행 비용을 가만히 되짚어보면, 스스로도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튀르키예와 샌프란시스코는 각각 일주일이 넘는 일정이었지만, 한 번의 여행에 약 250만 원 정도를 썼다. 싱가포르는 3박 4일에 100만 원 남짓, 가고시마는 같은 일정에 80만 원 선이었다. 홍콩은 60만 원대에 머물렀다. 해외여행이 곧바로 과도한 지출로 이어진다는 인식과는, 내 기록은 조금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물론 여기에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 항공권은 보통 대형 항공사의 이코노미석을 선택한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마일리지 적립을 신경 쓰고, 무리해서 최저가를 쫓기보다는 안정적인 선택을 한다. 반대로 단거리의 경우에는 마일리지 적립 효율이 낮아, 저가항공이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경우가 많다. 홍콩 여행에서는 편도는 저가항공을 이용하고, 다른 한 편도는 소멸 직전의 마일리지를 사용했다. 이동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여행의 총액은 생각보다 크게 달라진다.
숙소에서는 기준이 더 명확하다. 청결, 그리고 위치. 이 두 가지는 거의 포기하지 않는다. 혼자 여행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비용을 나눌 수 없고, 그래서 캡슐호텔이나 도미토리를 자주 선택한다. 모르는 사람과 방을 써야 하고 공용 욕실을 이용해야 한다는 불편함만 감수하면, 오히려 더 쾌적하고 관리가 잘 된 공간을 훨씬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나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과 공간을 공유하는 일에 대해서는 이상할 만큼 거부감이 없다. 그건 친밀함이 아니라, 일시적인 공존에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내 여행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궁상’은 먹거리와 교통비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6박 8일 동안 단 한 끼를 제외하고는 식당에 가지 않았다. 마트에서 샌드위치나 따뜻한 가정식 메뉴를 골라 담아 먹거나, 간단히 끼니를 해결했다. 몇 해 전 호주에서는 3주 동안 밥을 해 먹었고, 심지어 점심 도시락까지 싸서 다녔다. 싱가포르에서는 물가가 부담스러워 드립백 커피를 챙겨 갔다. 교통비를 아끼겠다는 이유로 하루에 2만 5천 보, 많을 때는 3만 보까지 걸었던 날들도 있었다.
이쯤 되면 스스로도 안다. 이렇게까지 궁상일 필요는 없다는 걸. 예산을 조금 넘는다고 해서 여행이 망가지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종 걷는 쪽을 선택한다. 홍콩에서 3만 보를 걸었던 날도 그런 선택의 결과였다. 그 여행의 마지막 날 쯤에는 다리에 경련이 와서 더 이상 걷기 힘들 정도였다. 그제야 이건 분명히 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선택을 후회하느냐고 묻는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 그건 절약이라기보다, 내가 세운 기준을 끝까지 지켜보려는 일종의 미련한 자기 테스트에 가까웠다.
다만 이 이야기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명품이나 고급 호텔을 배척해서 이런 여행을 하는 것도 아니고, 검소함을 어떤 미덕처럼 내세우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내가 불편해하는 건 비용의 크기가 아니라, 겪어보지도 않은 세계를 말로만 꾸미거나 남의 선택을 기준 삼아 자기 삶을 과장하는 태도에 더 가깝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travel'의 어원이 'travail', 즉 노동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본래 여행은 휴식이 아니라 고된 일이었고,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편안한 여행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말이다. 나는 그 설명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여행을 떠나면서도 일부러 불편함을 남겨두고, 몸을 쓰고, 예상치 못한 변수를 통과하려는 나의 태도가 그 말과 어딘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선호하는 여행은 쉽고 평탄하게 흘러가는 쪽이 아니다. 하루에 2만 보, 많게는 3만 보를 걷고, 계획하지 않은 이동을 감수하고,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정들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맥시멀리스트인 나의 성향은 여행지에서 고스란히 고난으로 돌아온다. 짐을 끌고 이동할 때마다, 이건 내가 선택한 카르마라는 생각이 든다.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까지 포함해서 이 여행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된다.
흥미로운 건, 이런 궁상과 달리 쇼핑에는 비교적 관대하다는 점이다. 다만 홍콩에서는 예외였다. 쇼핑의 도시라는 이미지와 달리, 그 여행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반대로 그 지역에서만 살 수 있는 상징성이 있거나, 합리적인 가격과 퀄리티를 갖춘 물건이라면 다른 여행에서는 기꺼이 지갑을 연다. 먹고 이동하는 비용은 흘러가지만, 물건은 여행의 일부를 일상으로 회수해 오는 방식처럼 느껴진다.
내가 여행에서만 일부러 P처럼 행동하는 이유도 이쯤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계획이 틀어지거나 준비되지 않은 상황을 잘 견디지 못하는, 극단적인 J에 가깝다. 어릴 때는 거의 모든 상황을 예상하고 대비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썼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인생에는 아무리 준비해도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훨씬 많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여행은 그걸 연습하기에 가장 덜 가혹한 일종의 샌드박스였다.
대학 졸업 직후에 갔던 보름간의 뉴욕 여행이 계기였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자, 이상하게도 여행이 재미없어졌다. 준비하는 과정은 그렇게 즐거웠는데, 막상 현장에서는 감흥이 옅었다. 그 이후로는 영화 스포일러를 피하듯, 여행에서도 일부러 모르는 상태를 남겨두고 떠난다. 기본적인 예약과 조사만 하고, 나머지는 현장에서 부딪히기로 한다.
여행이 끝나고 나면 늘 비슷한 생각이 든다. 다음에는 또 언제 가지, 역시 나는 한국을 벗어나야 하나. 그러다가 곧 고양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끼어든다. 회복과 소모가 동시에 일어나는 상태. 아마도 그 균형이 내가 계속 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