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여행자가 되고 싶은가

삶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며

by ChatBleu

오래 망설였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여행에 대해, 그리고 여행을 둘러싼 나의 생각들에 대해. 하지만 막상 첫 문장을 쓰려하면 손이 멈췄다. 내가 하는 생각이 너무 사적인 건 아닐지, 혹은 너무 방어적으로 읽히지는 않을지, 괜히 누군가를 설득하려 드는 글이 되지는 않을지 계속해서 스스로를 검열했다. 그렇게 생각만 쌓아두다 보니, 정작 글은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최근에 와서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풀어볼 수 있었다. 혼자서 머릿속에서 맴돌던 질문들을, 대화라는 형식으로 천천히 꺼내보면서였다. 그 과정에서 내 생각이 틀렸는지 맞았는지를 가리기보다는, 내가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조금 더 또렷하게 보게 되었다. 이 글은 그 정리의 첫 기록이다.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면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과 ‘이동하는 시간’을 포함한 여행 전체를 좋아한다. 공항에 가기 전 짐을 싸는 일, 어떤 가방을 들고 갈지 고르는 일, 이동 중에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 되는지를 관찰하는 일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여행 가방에 대한 애착도 커졌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캐리어는 1년에 몇 번 쓰지도 않는데 왜 그렇게 돈을 쓰느냐고.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기준은 조금 다르다. 캐리어는 일반적인 가방과 달리, 소재 자체가 기능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고, 부피와 사용량이 크며, 한 번 등장할 때의 임팩트가 분명하다. 무엇보다 잘 고른 캐리어는 10년, 20년을 함께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 낡아지는 것이 곧 가치의 하락을 의미하지 않는 물건이다.


여행용 가방에 돈을 쓰는 것이 일상 명품 가방에 돈을 쓰는 것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행의 속도가 빠른 물건보다는, 시간을 견디는 물건에 마음이 간다. 수선하며 계속 쓸 수 있는 가방, 흔적이 쌓일수록 이야기가 생기는 물건이 나에게는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물론 나는 스스로를 냉정하게 바라본다. 내 벌이에 비해 소비 수준이 높은 편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기준 없이 쓰지는 않는다. 내가 쓰는 소비가 나의 감각, 나의 경험, 나의 언어를 조금씩 확장시켜 왔다는 점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최고 수준은 아닐지라도, 분명히 어떤 결과는 남아 있다고 느낀다.


이 지점에서 늘 마음이 복잡해진다. 절제된 소비와 성실한 저축으로 안정적인 기반을 쌓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고, 부럽기도 하다. 현재 사회의 기준에서 보면 그런 삶이 훨씬 환영받는 선택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것은 나의 성향과는 다른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비교와 갈등이 있다. 안정적인 길을 선택한 사람들보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취향과 견문, 감각의 밀도라는 영역에서는 내가 더 많은 시간을 들여왔다는 자각은 있다. 동시에 나는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큰길 위에 서 있다는 것도 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도 있지만, 아무 성과 없이 무너질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혹시 이건 나의 불안을 가리기 위한 정신승리는 아닐까, 타인을 은근히 폄하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더 조심하게 된다. 가능한 한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마음속에서도 쉽게 결론 내리지 않으려 한다.


그럼에도 불편함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특정한 개인들 때문이라기보다 사회적인 시선 때문이다. 소비를 절제하고 자산을 쌓아가는 인물상이 ‘정답’처럼 취급되는 분위기 속에서, 다른 선택을 한 나는 연애나 결혼의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감각. 그 구조가 불편하다.


최근의 대화를 통해 한 가지를 분명히 하게 되었다. 이 감정은 피해의식이라기보다는, 사회가 허용하는 삶의 형태가 너무 단선적일 때 생기는 저항에 가깝다는 분석이었다. 이는 누군가의 삶을 깎아내리기 위한 감정이 아니라, 나의 선택 역시 동일한 존중을 받고 싶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는 해석이었다. 이 관점은 나에게 꽤 큰 안도감을 주었다.


이 글을 여행 카테고리의 첫 글로 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에게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내가 어떤 기준으로 소비하고,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어떤 가방을 들고 공항을 걷는지, 어떤 풍경 앞에서 멈춰 서는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남기는지. 그 모든 선택은 결국 나의 철학과 연결된다.


앞으로 이 공간에는 여행 이야기뿐 아니라, 그 여행을 가능하게 만든 생각들, 영화와 책에서 만난 문장들, 그리고 그때그때의 고민들이 함께 놓일 것이다. 솔직하지만 과장하지 않고, 겸손하지만 지나치게 방어적이지 않은 태도로. 이 글은 그 시작을 알리는 작은 선언에 가깝다.


아직 완성된 생각은 없다. 다만 생각을 멈추지 않고, 기록을 시작해보려 한다. 오래 망설인 끝에, 이제야 첫 관문을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