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설명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말을 걸었다
나는 이 도시에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다.
가고시마라는 이름은 여행지 목록에서 고른 결과라기보다, 조건을 충족한 선택에 가까웠다. 직항이 있었고, 온천과 모래찜질을 할 수 있었고, 그 외에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이 도시에 대해 기대도 실망도 할 준비를 하지 않은 채 도착했다. 어쩌면 그 무방비한 상태가 가고시마를 있는 그대로 보게 만든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첫날밤, 숙소로 향하던 길에서 나는 조금 당황스러운 장면을 목격했다. 텐몬칸 근처, 2층에 위치한 술집의 큰 유리창 너머로 버니 복장을 한 여자 두 명이 서 있었고, 그 바로 앞에는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줄지어 앉아 있었다. 커튼이나 가림막은 없었고, 거리에서는 여자들의 뒷모습과 노출된 엉덩이, 그리고 그 앞에 앉은 남자들의 얼굴이 그대로 보였다. 놀라웠던 건 노출의 정도보다도, 그 장면이 숨김없이 전시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 급히 가리려 하거나, 시선을 의식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이건 접대인 걸까, 그렇다면 왜 이렇게 당당할까. 그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이후에야 알게 된 것은 일본의 유흥 문화가 한국처럼 은밀함이나 비공식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제도와 업종의 테두리 안에서 공개적으로 존재하는 쪽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법적 경계 안에서 ‘보여도 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이 명확하게 나뉘고, 그 선 안에서는 굳이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본 장면은 일탈이라기보다, 이 도시의 밤이 작동하는 방식 중 하나였다.
흥미로운 건, 그 장면이 도시 전체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음 날 같은 거리를 다시 걸었을 때, 학생들은 웃으며 지나갔고 노인들은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상점들은 평소처럼 문을 열었고, 도시의 리듬은 흔들리지 않았다. 밤의 유흥과 낮의 일상은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충돌하지 않았다. 가고시마는 특정한 얼굴만 골라서 내보이는 도시가 아니었다.
며칠 동안 도시를 오가며 느낀 인상은 점점 또렷해졌다. 가고시마는 일본의 중앙을 흉내 내려는 도시가 아니었다. 도쿄의 축소판도, 관광을 위해 과장된 무대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만의 리듬으로 이미 잘 돌아가고 있었다. 과시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주눅 들지도 않았다. 이 도시는 자기 규모에 맞는 밀도로, 자기 속도로 작동하고 있었다.
인프라도 마찬가지였다. 특별히 감탄할 만한 장치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불편함이 느껴지는 지점도 없었다. 교통은 직관적으로 이어졌고, 이동 동선은 자연스러웠으며, 생활 시설들은 필요한 자리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 ‘의외로 잘 되어 있네’라는 감탄이 떠오른 순간, 그 말이 도시가 아니라 내 안에 있던 소도시에 대한 편견에서 나온 것임을 알아차렸다.
이런 인식은 사쿠라지마 근처의 작은 식당에서 있었던 한 에피소드로 또 한 번 흔들렸다. 처음 일본, 그러니까 도쿄를 방문했을 때 생긴 편견 중 하나는 일본인들은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도쿄보다 훨씬 작은 도시인 가고시마에서는 소통이 더 어려울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실제로 나는 영어든 몸짓이든 적극적으로 소통하려 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말을 번역기로 보여주고 읽지 못하는 글자는 카메라 번역으로 해결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메뉴판을 카메라로 찍어 보고 주문을 마쳤다. 옆 테이블에서 그 모습이 신기해 보였던 모양이다. 식사를 기다리던 내게 한 손님이 다가와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다. 화면에는 “당신은 사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라는 문장이 떠 있었다. 번역이 너무 어설퍼서, 그 의도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뜻을 전하고, 대화를 포기했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참 뒤 다시 와서, 다른 방식으로 번역한 화면을 보여주었다. 여전히 어색했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나는 그가 묻고 싶었던 게 “이 일본어를 어떻게 읽었냐”는 뜻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히라가나인지 가타카나인지도 모르는 까막눈인 내가, 어떻게 메뉴를 읽어 주문했는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제야 대화가 이어졌다. 나는 구글 카메라로 메뉴를 찍어 번역했다고 설명했고, 그는 비슷한 앱을 찾으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다른 번역 앱을 띄워 보여주며 이것이 맞느냐고 물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예전 같지 않게 나도 조금 오지랖을 부리게 되었다. 구글 번역기 앱을 직접 찾아 설치하도록 도와줬고, 그제야 우리는 같은 화면을 보며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완벽한 소통은 아니었다. 번역은 여전히 엉성했고, 문장은 자주 어긋났다. 하지만 둘 다 포기하지는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는 시도는 계속되었다.
그 장면은 도쿄에서의 경험과 묘하게 대비되었다. 영어를 못한다며 손사래부터 치던 도쿄 사람들과 달리, 이곳의 사람들은 부족한 언어로라도 말을 걸었다. 순간적으로는 이곳 사람들이 도쿄보다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객관적인 수치로 보면 그럴 리 없겠지만, 완벽하지 않으면 말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부족해도 시도하는 태도 사이의 차이는 분명했다.
그래서 가고시마는 나에게 묘한 인상을 남겼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조용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중앙을 닮으려 애쓰지 않으면서도, 자기 기준으로 이미 충분히 안정된 도시. 그 균형이 이 도시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말일 것이다.
나는 이 도시를 다시 꼭 와야겠다고 다짐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쉽게 잊히지도 않을 것 같다. 가고시마는 인상을 남기려 애쓰지 않았고, 설명하거나 설득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