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① 원래 이런 도시일까

by ChatBleu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고 며칠 동안, 나는 이 도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계속 망설였다. 더럽고, 황량하고, 어딘가 을씨년스러웠다. 그리고 그 인상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은 끊임없는 오르막이었는데, 가방을 끌고 언덕을 오르는 내내 가파르고 지저분했다. 거리 곳곳에서 올라오는 악취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이 도시의 일상처럼 느껴졌다. 노숙자들은 생각보다 많았고, 그들이 차지한 공간은 생각보다 넓었다. 불편했지만, 동시에 이 도시가 왜 이런 모습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도시마다 첫인상이 있다. 대개는 그 인상이 시간이 지나며 부드러워지거나, 내가 괜히 예민했다는 쪽으로 정리된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는 달랐다. 머무를수록 인상이 옅어지기보다는, 오히려 질문이 늘어났다. 이 도시는 원래 이런 걸까? 아니면, 지금이 유독 이런 시기인 걸까?


혼자서 이해하기에는 샌프란시스코는 설명이 많이 필요한 곳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여행 둘째 날 아침, 로컬 가이드가 진행하는 무료 워킹투어에 참여했다. 멜버른에서 비슷한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를 훨씬 입체적으로 이해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주의 금광이 역사적으로 가장 큰 금광 중 하나였고, 그 경제력을 바탕으로 도시가 발전했다는 이야기. 동식물 자원, 식품, 광물 모든 것이 풍부한 곳에서 살아온 호주 사람들이 왜 구김살 없는 느낌을 주는지, 유럽의 흔적은 있지만 역사가 짧아서 오히려 편견 없이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런 맥락들을 알고 나니 호주라는 나라를 이전과는 다르게 보게 되었다. 혼자 걷는 대신, 누군가의 설명을 곁들여 천천히 걷는 방식은 나에게 꽤 잘 맞는 선택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는 간척지가 많다. 지금의 금융지구 역시 대부분이 바다였던 땅 위에 만들어졌다. 그 아래에는, 한때 이곳에 정박했던 배들이 그대로 묻혀 있다고 한다. 금광이 있다는 소문 하나로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정작 금광 자체는 도시를 먹여 살릴 만큼 크지 않았다. 돈을 번 사람들은 광부가 아니라 상인이었다.


Levi's를 만든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금을 캐지 않았다. 그는 광부들에게 튼튼한 바지를 팔았다. Ghirardelli 초콜릿도 마찬가지였다. 골드 러시는 금이 아니라 사람을 불러 모았고, 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팔아서 돈을 번 사람들이 이 도시를 만들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사람들이 금을 캐고 떠나버리면, 이곳은 다시 텅 비게 될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시는 배를 붙잡았다. 배를 정박시키면 땅을 주었고, 돌아갈 배가 사라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 처음에는 배 위에 건물을 짓기도 했고, 그 위에 도시가 얹혔다. 지금의 금융지구는 그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다. 이 도시가 사람을 붙잡는 방식은 낭만보다는 계산이 앞섰고, 자연스러움보다는 의도가 먼저였다.


금문교 이야기도 그랬다. 샌프란시스코의 상징이 된 것은 단순히 '아름다워서' 혹은 '거대해서'가 아니었다. 건설 당시, 성공 확률은 높지 않았다고 한다. 강한 바람, 깊은 수심, 지진 가능성. 포기해야 할 조건이 충분히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이 계획을 끝까지 밀어붙였고, 여러 유능한 설계자들을 모아 결국 다리를 완성했다. 더 길고, 더 많은 차량이 오가는 베이 브리지가 있음에도 사람들이 샌프란시스코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여전히 금문교다. 이 다리는 금색이 아니다. 'Golden Gate'라는 이름도 금광을 찾아 사람들이 이곳으로 들어오던 관문이었기 때문에 붙었다고 한다. 금색으로 칠할 계획도 있었지만, 프라이머로 칠해져 있던 오렌지빛 붉은색이 안개와 녹에 강하다는 이유로 그대로 유지되었다. 완벽한 상징을 새로 만들기보다는, 이미 손에 쥔 조건을 받아들인 선택이었다.


그리고 노숙자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도착 첫날부터 느꼈던 불편함의 핵심이기도 했다. 가이드는 샌프란시스코에 노숙자가 많은 이유를 몇 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과거 샌프란시스코에는 여러 정신병동이 있었는데, 이들이 폐쇄되면서 환자들이 거리로 나왔다고 한다. 갈 곳이 없었던 사람들은 그대로 길거리에 남았다. 날씨도 한몫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연중 온화한 기후를 유지한다. 겨울에도 얼어 죽을 정도로 춥지 않고, 여름에도 견딜 만하다. 노숙 생활을 해야 한다면, 이곳은 미국에서 가장 살기 괜찮은 도시 중 하나였다. 샌프란시스코는 좌파적 색깔이 강한 도시다. 사람들을 쉽게 내치지 않는 쪽에 가깝고, 노숙자에 대한 단속도 다른 도시에 비해 느슨한 편이다. 그래서 다른 도시들에서는 노숙자들에게 편도 버스 티켓을 쥐어주고 샌프란시스코로 보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문제를 떠넘기는 방식을 택한 사람들로 인해 샌프란시스코는 다른 도시의 노숙자들까지 떠안게 되었다.


가이드는 자신의 집 앞에 살던 노숙자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 사람은 한때 잘 나가는 사업가였다고 한다. 오랜 기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이드는 그들도 똑같은 사람이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가 느낀 두려움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보이는 것처럼 위험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들을 기피하게끔 하는 요인은 결국 위생적인 문제였다. 공포가 아니라 불편함에 가까운 감정.


코로나 이후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팬데믹 동안 많은 테크 기업들이 샌프란시스코를 떠났다. 재택근무가 가능해지면서 굳이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도시는 더 황량해졌고, 상권은 위축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OpenAI를 시작으로 테크 기업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고 했다. 도시는 천천히 회복 중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렇게 여러 맥락을 듣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일찍 숙소로 들어갔다. 해가 빨리 지는 데다 가로등도 별로 없어서, 저녁 무렵이면 거리는 금세 어두워졌다. 근처 마트에서 저녁을 사서 숙소로 돌아가 씻고, 다음 날 계획을 짜거나 영화를 보거나 자료 조사를 했다. 평소보다 일찍 들어가는 편이었지만, 이곳에서는 그게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가이드의 이야기를 듣고 노숙자들이 덜 무섭게 느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이 없는 거리를 혼자 걷고 싶지는 않았다.


이 도시는 원래 이런 곳이었다. 코로나로 더 나빠졌다가, 지금은 천천히 나아지는 중이다. 하지만 맥락을 안다고 해서 거리가 덜 지저분해 보이는 것도, 노숙자들 사이를 걷는 게 덜 불편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저녁이면 서둘러 숙소로 들어갔고, 거리는 여전히 불편했다. 그럼에도 이 도시를 보는 시선은 조금 달라졌다. 사람을 붙잡기 위해 배를 묶어두고, 불가능해 보이는 다리를 끝까지 완성하고, 타 도시가 떠넘긴 문제까지 떠안으면서 천천히 회복하는 이 도시는, 불편하지만 단순하게 판단할 수 없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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